지나간 지산밸리락페스티벌, 그 마지막 밤의 어느 언저리에서, 나는 언어중추의 절반쯤을 알콜의 통제에 맞긴 채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다시 브로콜리를 듣다가 그 이야기를 문득 다시 떠올린다.
이 밴드가 쓰는 가사에는 소통불가의 상황을 관조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앵콜요청금지>는 제목부터가 그러하다. 어느 순간 소통을 멈춘 마음들이, 제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봐야 나아질 게 있을 리 없다는 담담함.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하지만 꼭 거기서 그쳐버린다면 아마 이 가사의 매력은 반감됐을게다. 그 뒤를 관통하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백미다. 아무래도 니가 없인 안되겠어 / 이런 말 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이 냉소가 절반쯤 함유된 일종의 체념, 이른바 "시크" 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어떤 태도라면, 이 태도를 말과 상황과 멜로디로 설명하는 수많은 문화적 현상, 혹은 컨텐츠들은 그야말로 소통불가에 대한 범 사회적 "믿음" 이 형성되어 있음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깊은 곳에서부터 믿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든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모순적인 욕구불만이 들끓고 있음을 증거한다.
범죄영화는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진화하기 시작해, <추격자>에 이르러 형사가 범인을 잡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거의 완전히 폐기처분했다. 그야말로, 이제는 홈즈가 부활해도 악당을 붙잡기가 어려운 시대다. 재난영화는? 전통적인 재난영화의 내러티브는 선각적인 주인공들이 미리 재난을 파악해, '불신자' 들의 방해를 뚫고 온갖 재난을 막아내거나, 적어도 그 피해를 반감시키는 구조였다. 그 과정에서 <딥 임팩트> <아마게돈>에서 그러했듯 영웅적인 희생도 있고 수난도 있고 종교적인 순교도 생겨났다. 적어도 이 시대의 재난은, 인간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스케일이었음에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대략 <투모로우> 이후로 이 구조도 무너진다. 미리 알아봐야 어쩔 방도가 없는 재난들이 지구에 닥치기 시작하고, 심지어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닥치고 도망가다 보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데, 산 자의 삶이건 죽은 자의 죽음이건 비루하기는 결국 매한가지다. 괴수영화, 혹은 좀비물의 공식에서도 이런 변화는 그대로 이어진다. 재작년을 강타한 <클로버 필드> 혹은 <나는 전설이다> 의 충격은 범 지구적 충격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혹은 소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서 터져나온다.
니가 어디서 뭘 먹고 누굴 만나서 어떻게 살든 아 돈 케에에에에에 라는 노래가 공공연하게 흐르는 시대, 사랑한다는 말은 대부분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하고 지지지지 거리거나 텔미텔미 거리다가 끝끝내 입안을 맴도는 자기선언으로 그친다. 2인칭과 3인칭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시대, "너" 나 "그들" 이나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선언들, 고립된 자기애 안에 갇힌 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시대. 아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은 폐허 위에서도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제는 인간들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들을 힘으로 제압해서 미래를 일구는 것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았으니까, 슬슬 타협과 토론을 통해 모든 일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그들이 꿈꿨던 인류 진화의 장은 자유로운 소통과 끊임없는 담론형성을 통한 전 인류적 정신문화의 획기적 발달이었겠지만, 글쎄, 이제 인류는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들은 "그냥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두고" 나는 나대로 사는 방식의 진화를 택한 것 같다. 타자는 점점 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괴물로, 두려움과 고통과 온갖 상처들의 근원지로 자리매김한다. 이게 과도기적 현상인지, 정말 세월이 가면 토론과 상생의 문화가 형성되어 이 갑갑한 소통불가의 믿음이 깨질 날이 올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여기 내가 인간이 설득될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 믿음이 깨지길 바라고 있는 건 물론이고.
...생각이 너무 멀리 기어나왔나. 아무튼 브로콜리는 참 좋다. 진짜 너무 좋다. 아흐흐
이 밴드가 쓰는 가사에는 소통불가의 상황을 관조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앵콜요청금지>는 제목부터가 그러하다. 어느 순간 소통을 멈춘 마음들이, 제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봐야 나아질 게 있을 리 없다는 담담함.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하지만 꼭 거기서 그쳐버린다면 아마 이 가사의 매력은 반감됐을게다. 그 뒤를 관통하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백미다. 아무래도 니가 없인 안되겠어 / 이런 말 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이 냉소가 절반쯤 함유된 일종의 체념, 이른바 "시크" 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어떤 태도라면, 이 태도를 말과 상황과 멜로디로 설명하는 수많은 문화적 현상, 혹은 컨텐츠들은 그야말로 소통불가에 대한 범 사회적 "믿음" 이 형성되어 있음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깊은 곳에서부터 믿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든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모순적인 욕구불만이 들끓고 있음을 증거한다.
범죄영화는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진화하기 시작해, <추격자>에 이르러 형사가 범인을 잡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거의 완전히 폐기처분했다. 그야말로, 이제는 홈즈가 부활해도 악당을 붙잡기가 어려운 시대다. 재난영화는? 전통적인 재난영화의 내러티브는 선각적인 주인공들이 미리 재난을 파악해, '불신자' 들의 방해를 뚫고 온갖 재난을 막아내거나, 적어도 그 피해를 반감시키는 구조였다. 그 과정에서 <딥 임팩트> <아마게돈>에서 그러했듯 영웅적인 희생도 있고 수난도 있고 종교적인 순교도 생겨났다. 적어도 이 시대의 재난은, 인간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스케일이었음에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대략 <투모로우> 이후로 이 구조도 무너진다. 미리 알아봐야 어쩔 방도가 없는 재난들이 지구에 닥치기 시작하고, 심지어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닥치고 도망가다 보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데, 산 자의 삶이건 죽은 자의 죽음이건 비루하기는 결국 매한가지다. 괴수영화, 혹은 좀비물의 공식에서도 이런 변화는 그대로 이어진다. 재작년을 강타한 <클로버 필드> 혹은 <나는 전설이다> 의 충격은 범 지구적 충격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혹은 소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서 터져나온다.
니가 어디서 뭘 먹고 누굴 만나서 어떻게 살든 아 돈 케에에에에에 라는 노래가 공공연하게 흐르는 시대, 사랑한다는 말은 대부분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하고 지지지지 거리거나 텔미텔미 거리다가 끝끝내 입안을 맴도는 자기선언으로 그친다. 2인칭과 3인칭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시대, "너" 나 "그들" 이나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선언들, 고립된 자기애 안에 갇힌 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시대. 아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은 폐허 위에서도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제는 인간들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들을 힘으로 제압해서 미래를 일구는 것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았으니까, 슬슬 타협과 토론을 통해 모든 일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그들이 꿈꿨던 인류 진화의 장은 자유로운 소통과 끊임없는 담론형성을 통한 전 인류적 정신문화의 획기적 발달이었겠지만, 글쎄, 이제 인류는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들은 "그냥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두고" 나는 나대로 사는 방식의 진화를 택한 것 같다. 타자는 점점 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괴물로, 두려움과 고통과 온갖 상처들의 근원지로 자리매김한다. 이게 과도기적 현상인지, 정말 세월이 가면 토론과 상생의 문화가 형성되어 이 갑갑한 소통불가의 믿음이 깨질 날이 올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여기 내가 인간이 설득될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 믿음이 깨지길 바라고 있는 건 물론이고.
...생각이 너무 멀리 기어나왔나. 아무튼 브로콜리는 참 좋다. 진짜 너무 좋다. 아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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