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설중에 솔까말 100% 리얼리즘 소설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적당한 부분에서 타협하고 환상으로 수렴하는 구조가 아예 일반적으로 되어버렸으니까. 예전같으면 "치열하지 못하다" 고 욕부터 먹었을 방법들이 참신한 시도라는 평을 받아가며 소설판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도" 에 목말라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는 것이 문학적 변증법의 진행이었다면 이젠 "부수는" 시기가 본격적으로 진행중이라고나 할까. 다만 환상으로의 수렴이 그 자체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일종의 메타포 혹은 맥거핀으로서, 도피기제의 하나로밖에 작용하지 않는 현실은 결국 아직 이 "참신한" 시도가 만들어낸 새 국면이란 것도 기존 소설판의 악세사리정도로 밖에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나라에서 소설을 읽고 평하는 사람들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의미를 갈구한다. 이게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이게 무슨 뜻이냐, 이 상징은 무엇을 가리키는 거냐, 등등. 밑줄치고 주제부터 파악하던 시절의 습관이 쉬이 몸을 떠나지 않는 걸까.
요컨대, 간만에 박민규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나라에도 찐한 에픽 판타지 하나쯤은 등장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박민규 소설을 읽다보면 좀 더 많은 것을 이룩할 수도 있는 환상들이 너무 답답한 곳에 매여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물론 이 사람의 글쓰기 스타일이 창조보다는 파괴쪽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뭐 이렇게 말해버리면 이건 장르적인 방법론이 되어버리나. 내가 말한 "찐한 에픽 판타지" 란 것도 결국 이영도씨가 시도하고 있는 작업이란 점에서 별반 새로울 건 없다. 다만 그간 타자의 소설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문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다. 몇몇 "주류" 비평가가 시도한 이영도, 혹은 대한민국 에픽 판타지 비평은 그저 익숙한 의미구조 위에 서서 이 황당한 소설들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하다가 끝나버린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의미있는 파괴나 참신한 시도, 뭐 다 맞는 말이지만 그건 이 나라 소설판에 떠돌고 있는 환상성이란 유령을 발견하고 깜짝놀랐을 때 지르는 외마디 비명에나 어울리는 평일 뿐이다. 고로 만국의 환상소설가여 단결하라... 는 아니고, 아무튼 읽는 태도나, 쓰는 방법론 전부에 좀 근원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다는 것. 어쩌면 이 전환은 예술 전반을 둘러싸고 있는 고고함의 벽을 허물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술이 쓰고 있는 두터운 학문의 탈을 난 쫌 허물고 싶다. 특히 문학이란 것은, 뭐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대체 사회 현상학 이외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소설은 고고할 거라곤 개뿔도 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이야기는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라 들어줘야 하는 대상일 뿐이고!
...이상은 올해 이상문학상 소설집을 다 읽고도 만날 사람이 오질 않아서 지루한 나머지 끄적인 글이었다. 쓰고보니 꽤 기네. 근데 이 양반은 왜이리 안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요컨대, 간만에 박민규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나라에도 찐한 에픽 판타지 하나쯤은 등장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박민규 소설을 읽다보면 좀 더 많은 것을 이룩할 수도 있는 환상들이 너무 답답한 곳에 매여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물론 이 사람의 글쓰기 스타일이 창조보다는 파괴쪽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뭐 이렇게 말해버리면 이건 장르적인 방법론이 되어버리나. 내가 말한 "찐한 에픽 판타지" 란 것도 결국 이영도씨가 시도하고 있는 작업이란 점에서 별반 새로울 건 없다. 다만 그간 타자의 소설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문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다. 몇몇 "주류" 비평가가 시도한 이영도, 혹은 대한민국 에픽 판타지 비평은 그저 익숙한 의미구조 위에 서서 이 황당한 소설들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하다가 끝나버린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의미있는 파괴나 참신한 시도, 뭐 다 맞는 말이지만 그건 이 나라 소설판에 떠돌고 있는 환상성이란 유령을 발견하고 깜짝놀랐을 때 지르는 외마디 비명에나 어울리는 평일 뿐이다. 고로 만국의 환상소설가여 단결하라... 는 아니고, 아무튼 읽는 태도나, 쓰는 방법론 전부에 좀 근원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다는 것. 어쩌면 이 전환은 예술 전반을 둘러싸고 있는 고고함의 벽을 허물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술이 쓰고 있는 두터운 학문의 탈을 난 쫌 허물고 싶다. 특히 문학이란 것은, 뭐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대체 사회 현상학 이외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소설은 고고할 거라곤 개뿔도 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이야기는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라 들어줘야 하는 대상일 뿐이고!
...이상은 올해 이상문학상 소설집을 다 읽고도 만날 사람이 오질 않아서 지루한 나머지 끄적인 글이었다. 쓰고보니 꽤 기네. 근데 이 양반은 왜이리 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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