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한 일이 무엇일까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석가모니, 공자와 함께 흔히 세계 3대 성인으로 꼽히지만 (솔직히 이 말 좀 우습다; 성인이 무슨 시험봐서 되는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나 공자의 가르침에 비하면 예수의 그것은 훨씬 공중에 붕 떠 있다는 느낌이다.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렇다 해서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보편적이지도 못하다. 다만 거기에 있는 건 뭔가 원형적인 이야기이다. 신의 아들이 평범한 이들을 구원하러 왔다가 그들에게 박해당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못박혀 죽는 비극. <시학>에서 이야기하는 효과와는 정 반대로, 예수의 일대기는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의식과,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 그리고 이런 감정들에서 도망치고자 만들어내는 환상 - 즉, "거대한 사랑" 을 선사한다. 내가 그를 죽인 건 정말 아무리 돌이켜봐도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실수였지만, 그는 나를 너무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다, 라는 정도의. 내가 그에게 가한 가혹한 처분은 오히려 그가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 는 증거가 된다. 이는 상대방이 절대적인 지위 - 사람의 아들로 임하신 신의 아들 - 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심리적 막장도피라고 볼 수 있다. 아니라면, 보통 타인을 그렇게 괴롭히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수순은 그 타인을 천하의 나쁜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먼저다. 저 놈은 알고보면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되는 쓰레기니까 내가 하는 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솔까말 말이 되냐? 내가 이렇게 죽도록 패는데도 묵묵히 날 사랑해주다니 정말 감동이야! 라니; 실로 변태적이지만 - 이 변태적인 도피가 만들어 내는 환상은 실로 엄청난 에너지로, 적어도 지난 몇 세기 동안 지구를 지배했다. 원형적 이야기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석 달 전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를 보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을 많이 떠올렸다. 자연사와 자살이라는 방법의 극단적 차이도 있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을 더 격렬히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사실 그걸 누군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읽은 게 내 실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흘려보내던 눈물은 결국 진심으로 흘리는 악어의 눈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악어도 감동은 받고 살아야지.
노무현씨 이야기 안하기로 했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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