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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1 유럽

유럽여행기, 일곱번째 : 파리 - 루브르와 몽마르뜨, 그리고 야경


* 오늘은 상당히 깁니다...


사실 이 날쯤에는 육체적 피로는 제법 가신 상태였고
정신적인 피로만 적잖게 남아있었다. 말뜻을 풀이하자면 만사 다 귀찮았다는 것...
전날 어지간한 포인트들엔 다 눈도장을 찍고 온지라 그게 쫌 심했는지도?;;
일단은 휴관인 관계로 입장을 못했던 루브르로 출발.


루브르가 휴관인지 아닌지는 한눈에 판가름이 난다. 줄을 서거등.
영국에서는 어떤 관광지에서도 줄을 선 적이 없었던지라 적잖게 당황했지만
루브르의 줄은 단순 검색을 위한 것이라서 생각보다 빨리 줄어드는 편이다.


입장하고 나면 티켓을 사야 한다. 부스가 많아서 여기서도 오래 기다릴 일은 별로 없는 편.
부스 바로 근처에 오디오가이드 대여하는 곳이 있다.
헌데 내 경우엔 좀 늦게 간 탓인지 한국어 가이드 구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빌리긴 빌렸음

영국박물관이나 내셔널 갤러리가 특유의 개방성 때문에 마치 조각공원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면
루브르는 좀 더 클래식한 박물관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관람동선을 짜는 게 어쩐지 좀 더 부담스러웠다는 말씀. 맘대로 다니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공부하자니 피곤하기도 하고...
이렇게 만사 귀찮아진 관객들을 위해 오디오가이드에는 "루브르 걸작선" 코스가 있다
이 가이드만 쫓아다니면 약 두 시간 코스로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흐흐

영국박물관에 유물이 많다지만 정작 로제타석을 빼고 나면 두루 알려진 특급 유물은 없듯이
작품당 30초만 소모해도 일주일이 걸린다는 루브르에도 누구나 이름을 알만한 작품은 세네개 뿐이다.
공부를 하고 보면 좋겠지만 솔직히 나같은 문외한은 그런 것만 봐도 충분하다.
일정도 촉박하고... 체력도 부족한 장기 여행중에는 별 수가 없다.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모나리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여기에 나폴레옹 대관식까지 보기로 하고 일단 출발.


오디오가이드에서 처음으로 안내하는 유물은 "밀로의 비너스" 이다. 가는 길목에 있는 스핑크스. 요것도 유명한 물건.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




뒷편엔 사람이 좀 없는 편. 가이드 들으면서 뒤에 앉아있었다.


사실 비너스 자체보다는 이 주변에만 구름같이 몰려든 관광객들이 더 구경거리 같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주변의 다른 작품들에 워낙들 관심이 없어서...

루브르의 다른 "걸작" 들에는 대체로 걸작이 된 사이드 스토리가 있는 반면에
밀로의 비너스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그냥 인체비례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나중에 로마까지 가서 해 본 생각이지만 그리스 시대 조각상은
중세시대, 그리고 르네상스의 조각과 비교해서 봐야 의미가 살아나는 것 같다
과거에 천착하는 유럽문화 특유의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보러 가는 길... 의 마이너한;; 작품들
이름은 다 모르고 주제는 알겠더라. 프로메테우스, 에로스, 아르테미스, 헤라클레스... 사실 뻔하다;


그리고 니케.


니케상은 사실 작품 자체의 역동성보다는
이 작품이 전시된 공간의 덕을 많이 보고 있는 작품이다. 덕택에 유명해지기도 했고
거의 루브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독립적인 전시실이 아니라
이렇듯 길거리(?)에 나와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보는 바와 같이 니케상 주변에 위치한 계단과 복도들이
한결같이 니케상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 위로 유난히 높은 곳에 있는 채광창도
적당히 위엄있는 자연조명과 더불어 조각상이 역동성을 확보할 만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 니케상은 이 곳으로 전시공간을 옮긴 후에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과 전시공간의 어우러짐, 그리고 언론이 불후의 명작을 만드는 장면이 되겠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관람하러 온 관객의 시선은 대체로 요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마치 무대 위에 선 배우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느낌이랄까. 흠.

자, 이제 모나리자로 가 봅시다


루브르의 이태리 미술품들은 거의 다 나폴레옹시대에 훔쳐온 것들.
이태리 애들은 자기들도 그리스, 이집트에서 훔쳐온 게 있으니 돌려달란 말도 못하고 있다고...
그러게 왜 그리 약탈들을 하니


앞으로 지겹게 보게 될; 성 세바스찬.
성자들은 대체로 상징물로 표현되는데 그 중에도 세바스찬은 유독 눈에 밟히는 편이다
대체로 중세, 르네상스 화가들이 이 양반을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데 써먹었기 때문에...
실제 화살 맞고 죽는데 표정이 좀 야릇하다잉. 나 요 양반 언젠가 소설에 써먹을거다.


다른 다빈치 그림으로 몸부터 풀고... 암굴의 성모.
요건 똑같은 게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데 모조품이라 한다. 모조품도 천년 지나면 예술품이지 뭐...
다빈치는 르네상스 작가들 중에도 유독 작품 보기가 힘든 편이다. 상대적으로 기억에 잘 남지도 않고?
일단 작품이 적고... 또 다른 르네상스 작가인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처럼 대작을 남긴 것도 아닌데
카라바조처럼 작품색이 강한 것도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흠. 하지만 그는 프리메이슨...


그리고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접견하려면 이 정도 인파는 뚫어줘야...


작다.

모나리자는 명실상부 동, 서양 회화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이 이리 유명세를 탄 것은 1) 우선 워낙 귀한 다빈치의 작품인데다가 2)한 번 도난당했던 전력이 큰 몫을 했다.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대해선 <사라진 미소>란 책에 상세히 나와 있다. 뭐 크게 재미는 없었는데...;;
저 자그마한 모나리자에 무섭도록 몰려든 사람들을 보면 예술품의 가치를 정하는 잣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명작의 아우라란 작품 외부의 힘으로 형성되는 부분이 많지 않나 싶다.
예술이 고등사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아마도 루브르에서 가장 외면받을 수도 있었던 작품...;;; 모나리자 뒷편에 있는 가나의 결혼식.
참 루브르 관계자들도 고민 많이 했을거다. 모나리자 근처에는 뭘 전시해야 '묻히지' 않을까?
결국 선택된 가나의 결혼식은 루브르에서 가장 거대한 그림이다. 저렇게 거대한 그림을 가져다 놓으니 시선이 갈수밖에 ㅋㅋ
다만 이 두 그림의 포스에 밀려 이 방의 다른 그림들은 그저 아오안... 애도를.


근처에 있는 들라쿠르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난 이 그림 좋아한다. 필터효과 줘야지...



근데 의외로 이 그림에 집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정치적 의도가 가득한 작품.
모나리자 방에 있는 가나의 결혼식 이전까지 가장 큰 회화작품이었다 한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면 같은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대강 이 정도만 봤다. 그래도 기억나는 게 어디야.; 괜히 힘만 뺀 내셔널 갤러리보다 훨씬 갚지잖아.
그래도 세 시간은 지났다 (흐미) 루브르 뒷편에 있는 라면집에서 라면먹고 노트르담으로.


라면 먹은 골목. 이 근처에 일식, 중식, 한식집도 있다.
굳이 파리까지 와서 라면을 먹을 이유가 있나 하겠지만... 이 라면집엔 한국어 메뉴도 있다능.


다시 들른 노트르담. 날씨가 좀 좋으니 아름답구나.


내부를 보고... 좀 잤다 (...)


벽면장식은 가만 보면 좀 징그럽다.

노트르담까지 간 건 생루이 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참 입가심 멀리서도 합네다...
입가심 후에는 원래 목적지인 몽마르뜨로 향했다.


근데 몽마르뜨는 진짜 "언덕" 이드라. 아 힘든데.
몽마르뜨의 치안에 대해서도 안좋은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좀 긴장한 채로 움직였다
내가 간 날은 날씨가 별로라서 그런지 사람 자체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라 한다면... 골목골목이 이쁘긴 하지만 이런 골목은 청주 수암동에도 있는데 (...)


거리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 이라곤 하는데
뭐랄까 초상화 작가들이 많긴 하되 너무나도 장사꾼 소굴같은 느낌이라... 예상 밖이었다.
헌데 파리에 대한 내 솔직한 감상이 몽마르뜨 감상기와도 비슷하다. 장사꾼 소굴...
안 그럴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이 너무나도 장사꾼이다보니 실망한 것도 좀 있지.


여기쯤에서는 이미 약간 실망하고 있었음


몽마르뜨의 메인무대... 라 할만한 사크레쾨흐 성당으로 가는 길


성당은... 솔직히 좀 뜬금없긴 한데; 이쁘다


성당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파리. 아 날씨만 좀 좋았으면...
요 앞의 청년들이 놀고 있었는데 가끔 제이슨 므라즈 노래도 들렸더랬다.
당장 듣기에는 좋았지만 뭔가 그렇게 뻔한 팝이라니 실망스럽다, 파리!
그래도 프랑스라면 에뛰드 피아프 뭐 이런 거 해줘야 되는거 아냐?


인증샷. 루마니아 커플이 찍어줬음. 비교적 성의있었다ㅋ



성당 앞에서 축구공으로 묘기부리던 흑인.



알고보니 유명한 사람이란다. 트랜스포머 3에도 나왔다고...
하긴 전세계 관광객이 다 모이는 곳에서 저러고 있는데 유명할수밖에;


뭐... 실망했다곤 하지만 몽마르뜨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다. 사진도 많네.
밥도 먹고 음악도 듣고 사람들 구경도 하며 한참 있다가 걸어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을 일부러 살짝 돌아왔는데 골목 풍경도 괜찮긴 하더라
대강 해가 지기 시작해서, 야경 보러 에펠탑으로 이동.

그리고 이때부터 시련이 시작됐으니... 난 아직도 이 밤의 기억때문에 파리가 싫다.
도대체 파리에는 왜 공중화장실이 없는 건가?

내가 좀 이상한 곳을 돌아다녔다 할 수도 있다. 트로카데로역에서 내려서는,
눈앞에 에펠탑을 두고 화장실을 찾아 개선문까지 걸었다. 금방 나올줄 알았다. 유료라도 쓸 작정이었으니
없었다. 샹젤리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쓰고 나오게.
없다. 이쯤 되니 해는 다 지고 주변엔 남들은 일부러 구경한다는 샹젤리제의 야경이 펼쳐졌다.
죽을 것 같았지만 일단 사진은 찍고 봐야 했다.


의무감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콩코르드 광장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공원이 나온다
화장실 따위 있을 리가 없는 분위기 (...)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문득 어제 낮에 퇼르리 공원에서 목격한 유료 화장실!!


그리하여 콩코르드 광장까지 걸어 (!) 왔다
좀 미련할 수도 있지만서두 오히려 뭘 기다릴 상태가 아니었다 도무지...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오벨리스크는 이쁘고...




동영상도 찍었다. 덜급했던게지;;

허나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화장실은 밤이 늦어서 문을 닫았다 (...)
서둘러 가이드북을 뒤지다가 마들렌성당 근방에 공중화장실이 있단 글귀를 보았다!!


성모님 절 살리소서


마들렌 성당 다섯시 방향에 화장실이 있긴 하다. 헌데
아무래도 쓰라고 열어둔 것 같진 않았다.. 지하에 있었는데 입구까지 쓰레기가 수북히
급하다지만 그래도 소심한 이방인인 나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때가 화장실을 찾아 헤맨지 한시간 반쯤 됐을 땐데 (헐)
결국 루브르 근방까지 가서 스타벅스를 발견
...했지만 밤이 늦어서 문을 닫고 있었다. 주여...
날 구원한 것은 그 전방에 있던 맥도날드였다 (ㅠㅠ) 여기도 맥도날드엔 화장실이 없고
함께 있는 맥까페에만 화장실이 있는데 문을 닫는 중이었더랬다.
조금 망설였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얼굴에 철벽을 깔고 스윽 들어가서 스윽 쓰고 나왔다.
종업원이 날 째려보긴 했는데 뭐라 하진 않더라 (;;;)

유럽 전역에 화장실이 귀한 편이지만, 파리가 유독 심하다
모르겠다 이 밤이 너무 끔찍했던 탓에 편견이 생긴건지도...-_-;;;
그래도 다른 도시는 보통 조금만 헤매면 유료화장실이 있는데
두 시간을 (세상에) 주요 관광지만 헤맸는데도 화장실 표지조차 보지 못했다는 건 좀 심하잖아.

여하튼 루브르 야경부터 제대로 다시 보기 시작.


사람이 많다? 싶었는데 야간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더 걸어다니기가 피곤해서... (그리고 어지간한 데는 벌써 갔다와서) 그냥 지하철 타고 에펠탑으로.

어쨌건 파리 야경의 꽃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해가 지면 매 정각마다 레이져쇼를 벌인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광경이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멋있다고 하던데
직접 찍어왔으니 어디 평가해 보시라. (음악은 일부러 깐 게 아니라 주변에 울리던 거임)



내 앞에는 한국 여자분들이 있었는데
끝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야경은 한강이 낫네."

...내 감상은 뭐 여기까지만.
여하튼 사진빨은 극강이라고 생각한다.

자리를 좀 옮겨서, 야경 구경 계속.




나른했다.

장소는 알렉상드르 3세교 인근이다.
이때가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유난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환.
거의 12시간을 돌아다녔으니 어찌 다음날이 온전했으리오?


오늘 너무 길었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