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만난 학생 네 명이랑 길을 나섰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이때가 9월 24일이었으니... 방학 시즌이 아니라서 학생들 만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직장인, 학생들이라면 학업을 포기 (...) 하고 온 사람들;
이 학생들도 일주일 수업을 빼먹고 파리랑 맨체스터를 찍고 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유럽은 성행중인 저가항공이 워낙 많다보니 이런식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퍽이나 부러웠다. 저 나이 때 교환학생도 안가고 뭐했지. 미국 이런데 생각말고 유럽으로 알아 볼걸...
...라고 생각했더니 뜬금없이 동갑도 한명 있드라. 복무대체 연구원으로 대학원 다니는 중이라고.
참 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세상은 넓고 길은 많은 것 같다. 좀체 보이질 않아서 그렇지
맞다. 네 명 다 카이스트 학생이라고 했다.
다 이과여서 그런지 그닥 맘이 잘 맞은 편은 아니다-_-;;;
베르사유까지는 RER C선을 타고 갈 수 있다. 6.4유로. 뭐 서울서 의정부쯤 가는 느낌이랄까...
헌데 아침부터 지하철이 괴이한 말썽을 일으킴. 우리가 갈아타야 할 역을 한 정거장 앞에 두고
뜬금없이 멈추더니 뒤로 (!!!) 가는거다.;; 뒤로 가다가 멈추더니 뭐라 방송이... 나오고 다들 내림.
그리고 플랫폼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뭔가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이런 써글.
문제라면 이 열차가 플랫폼에 서 있으니 다음 열차도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
결국 경로를 바꿔서 돌아가고 앞서가고 헤매다가 베르사유행 열차 타는 데에만 한시간이 걸렸다-_-;
파리 지하철에 이런 일이 흔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워낙에 더럽고 덜컹거려서 문제스럽게 생긴 지하철인만큼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곡절 끝에 베르사유역에 내림.
점심시간이었는데 역 앞에서 맥도날드 직원이 빅맥세트 6유로 쿠폰을 나눠주며 호객 중이었다.
땡큐. 점심도 떼우고 곧바로 베르사유로 ㄱㄱ씽
베르사유를 못찾을리는 없다. 정말 크니까.
가로수길 저편에서 베르사유가 등장할때의 위압감이란, 참 가슴떨린다.
베르사유의 건립자 루이 14세.
킹왕짱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사람이 아닐까...
아 진짜 큰데.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네. 안타깝다. 이걸 어떻게 보여주지
입장하려면 표를 사야 한다.
베르사유의 입장방식에 대해 약술하자면, 일단 정원은 무료개방이고 건물은 돈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건물은 박물관이라 보면 되고, 궁전 본관(?)과 정원 저편에 있는 쁘띠 뜨레아뇽 등 별관 두개가 있다.
티켓은 사람한테 끊어도 되고 자동판매기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줄은 길게 서야 한다.
그리고 European Student는 무료다. 이 말인 즉슨 유럽 학교에 적을 둔 사람...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중인 사람들도 무료라는 뜻.
나이제한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 여하튼 나만 빼고 나머지 넷은 무료입장했다-_- 부러워...
아, 뮤지엄패스도 적용된다. 난 그걸 안끊어서
전망 좋은 곳에는 높은 사람이 사는 법.
궁전 본관에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다. 근데 워낙 뻘소리를 많이해서 그닥 추천하고 싶진 않다
가이드북이 있다면 그걸 보면서 다니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설명도 충실할 거다.
들어가자마자 있는 것이 왕의 개인 예배당
개인 예배당인데 뭐 이렇게 넓게 지어놨댜...
복도에는 프랑스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 석상이 세워져 있다.
이 양반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 필립이었나...
이분은 한눈에 알아봤다. 잔다르크!
날씨가 좋다면 문득 바깥 풍경에 당장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 것이다.
궁전은 쫌 지루하고 볼 것도 생각보다 많진 않다
다만 이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편이다.
루이 14세 부조.
대부분이 왕의 개인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박물관..
그 왕의 개인 컬렉션이란 것들도 왕이나 왕족의 초상이라 그닥 재미는 없다 -.-
아까 봤던 예배당. 2층에서
위 그림의 주제는 헤라클레스의 승천이다. 그렇다면 문제 : 헤라클레스는 어디 있을까?
가이드 듣고 설명 보면서 다 찍을만하니까 찍었는데... 생각이 안나;
루이 14세
일부러 위엄쩌는 로마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제작 지시를 시켰다는데
참 요즘 센스로는 이해가 안간다. 상상조각이라... 그딴걸 왜;
요것도 14세.
거의 모든 작품의 주제가 킹왕짱 루이 14세에게 맞춰져 있다. 저것도 14세.
직접 요모조모 만들라고 지시했으면 미친 사람일테고, 알아서 긴 거겠지...
베르사유의 화려함이 궁극에 달한 곳인데. 역시나 사진으로는 잘...
저 샹들리에에 걸린 촛불들이 다 진짜라고 상상해 보면 도움이 된다.
베르사유는 상상력이 필요한 곳이다. 늦은 밤, 무수한 촛불, 화려한 드레스, 귀족들의 연회, 앙드레와 마리 (응?)
인증ㅅㅅ
근데 다들 가이드를 듣는 속도차가 나다보니... 거의 혼자봤다;;
베르사유 궁전은 보불전쟁과 1차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이 조인된 장소이기도 하다.
거울의 방에서 도장을 찍었다고 전해진다. 요렇게 표시해 놓고 있는데 글씨가 없어서 그런지 그다지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음
그리고 왕과 왕비의 침실로 가는 길, 인데
여기는 왕의 침실 앞에서 비서(?)쯤 되는 신하들이 머물던 곳
침실 앞에 신하들 와 있고... 주거 프라이버시는 우리나라 궁전이 쫌 나은듯?
왕의 침실. 사람이 많아서 쓸려가는 중;
왕비의 침실. 마리 앙뜨와네뜨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편이다.
근데 뭐 침대는 그냥 침대일 뿐... 화려한가? 난 이런 취향 아니라 잘 모르겠다.
왕비들이 여기서 출산을 했다 한다. 사람들 많이 보는 앞에서.
침실에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
베르사유궁전은 프랑스 대혁명때 시민군에게 점령당하는데
그 때 왕비가 이 창문을 열어보고 몰려온 시민군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식당과 응접실.
요 앞에 의자에는 왕손들이 앉았다고 전해진다
대혁명때 근위병들이 시민군과 결투를 벌였다고 전해지는 방.
루브르에서 본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전시되어 있다. 음. 나폴레옹은 이 궁전을 국가 홍보기념관 쯤으로 사용했다 한다.
같은 작가가 두 번 그린 거니까 모조품은 아니고... 이것도 진품이다.
독수리기의 배분. 근데 언뜻 볼때는 꼭 반란진압처럼 그려놨단 생각이;
요기쯤에서 좀 다리가 아팠더랬다.
하이라이트가 끝났으니 끝이겠거니 싶었는데 아래층으로 가면 그림이 더 있다;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그려놓은 곳이다.
다리가 아프긴 했으나 날씨가 너무 좋았음
본격적으로 정원 탐방을 시작했다.
내 기준에서 이 정원은 화려하다기보다는 황량한 느낌.
모래바닥이 너무 많다. 게다가 궁전 벽도 그냥 하얀색...
어떤 심리적 위압 효과를 노렸는지는 알겠는데 내 눈엔 경복궁이 더 이쁘다. 넓어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가용공간도 경복궁이 더 넓지 않았을까? 베르사유는 정원과 생활공간이 너무 분리된 느낌이다.
남들 다하는 호들갑 빼고 말하자면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 좀 넓긴 한데 진짜 걷지 못할 정도로 넓은 건 아니다.
자전거, 꼬마기차, 카트 등등 대여용 운송수단이 많은데
좀 걷다가 다리아프면 기차타는 방법을 추천. 왜냐하면 자전거랑 카트는 대여 시간이 있어서
정원 저쪽편에 있는 쁘띠트리아뇽이랑 그랑트리아뇽이란 구경거리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나처럼...
우리는 인원이 많아서 카트를 빌렸다. 진짜 편하게 다닌게지;
서양 건축미 특유의 "압도감" 이랄까.
궁전 건물과 일직선으로 놓인 호수와 운하 (...운하도 있다. 음) 를 보면
이 궁전 설계시에는 정말 눈속임이나 꼼수 없는 공간 그 자체로 인간을 압도할 작정이었던 것 같다.
실제 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감탄이 가장 길고 확실하게 나오는 편.
쁘띠트리아뇽 가는 길.
쁘띠트리아뇽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소꿉놀이하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 "서민풍" 으로 농가주택을 지어놓고 전원생활을 하는 게 유행이라
왕비도 궁전에 그런거 하나 짓고 놀았던 건데
근데 사진이 없다...-_-;;
대여시간이 1시간인가 그랬는데 시간이 없었던데다가
이 트리아뇽도 부담되게 넓다. 좀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정원이긴 한데
서민풍이라 하기엔 어림없는 크기... 랄까. 거의 반쯤은 포기했다.
여기는 근방에 있는 그랑트리아뇽
뭐 비슷하네. 대충 봤다. (...)
날씨 좋고...
실제 공원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한 편이다. 너무 넓어서 정원사는 고생좀 하겠드라
헌데 그늘이랄 게 없는 곳이라 여름에는 책임 못짐
한바퀴 돌고 돌아와서 카트 반납. 하늘이 참 이뻤다
같은 위치에서 정면을 향해. 참 공들인 좌우대칭이로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운하인데 끝까지 걸어가려면 한시간은 걸릴 거다.
셀카질. 요즘 트위터 공개사진이다
누군가 운하까지 걸어가고 싶다 해서 걸어가기 시작.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걸 이 때 깨달았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진짜.
나 우리나라 공원에도 이런 조각상좀 세워놨음 좋겠다
좀 다른 각도에서 본관
드디어 다다른 운하
동행 네명이 상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
교묘하게 전부 다 얼굴이 가려졌다 ㅋㅋㅋㅋ
뭐 이후로 연락한 적은 없지만... 고마웠다. 역시나 동행 없었음 그리 힘을 내진 못했을거다
별로 본 게 없는 듯 하면서 하루가 다 가버렸다. 베르사유가 원래 좀 그런 편이다.
네 명은 파리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먹기로 했단다. 빠이빠이하고 숙소로 들어와서
...술마셨음. 나름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쩐지 민박 매니저님이 신나 있었음. 내일 쉬는 날이라고
프랑스는 이걸로 마지막 (앗싸)
근데 한국 와서 알아보니 은근 가야할 곳은 안가고 시간낭비를 많이 한 편이라;
지금은 좀 후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피곤한 탓이 컸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좁고 더럽고 냄새나고 불친절하고 화장실없는 도시로만 기억하자니 내가 손해보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건 나는 파리보다는 숙소에서 밤마다 술먹던 사람들에게 정이 들었다 (...)
파리에 왔으면서 계속 바르셀로나 자랑만 하던 여자분도 있었고
너무나도 민박 스텝인줄 알았더니 손님이었던 (근데 이런 사람은 많더라) 사람도 있었고
아일랜드 어학연수 중에 잠시 놀러온 시크한 학생도 있었고...
나는 그저 국어선생님하면 잘 어울릴거라고 결론이 났더랬다 ㅋㅋ
참 몇 살 어렸을 때는 이런 거 싫어했는데. 나이가 들긴 했나봐
정이 든 탓인지 파리에는 청바지를 두고 비행기를 타버렸다.
덕택에 이후 그리스까지 거의 바지 한 벌만 입고 다녔...;
내일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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