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써갈긴 소설들에 대한 진솔한 반응이 전무했던 관계로 가까운 이들을 들볶아서 얻어낸 이런저런 반응들과, 이와는 별개로 몇군데에서 받아본 조금 포멀한 평들을 종합해 본 결과 결국 나는 "대중적인" 글쓰기와도 거리가 있는 인간형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문맥에 따라서는 굳이 욕으로 쓰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상당히 치명적인 속성이 되겠다. 그러니까, 글 자체가 개인적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대중적이지 않은 내용을 대중적으로 말하는 게 오히려 글쟁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순간순간의 아이디어나 빛나는 지점 같은 것들은 눈여겨볼만 하지만 글 전체를 관통하는 구성의 힘이랄까, 뭐 누군가의 표현으로는 삶의 무게랄까, 또다른 이의 표현으로는 전반적인 카타르시스랄까, 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다만 인내심과 고민의 정도랄까- 여하간 자간과 행간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의 정도가 희박하다는 것이 결국엔 문제다. 이것이 결국엔 대중성 (이란 말은 좀 거창하니 소통의 가능성, 이란 말로 하려고 했지만 이것조차 거창하다) 을 저해시키는 요소가 되고 만다. 애초에 특정한 상황의 아이러니를 뿌리로 삼는 나 자신의 글쓰기 방법을 돌이켜 보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만큼 고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나란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 의 기저에 깔려 있는 어떤 치명적이고 필수적인 어리숙함과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런 충고를 받아들여서 그럴싸한 소설을 쓰는 날이 도래한다면 나는 내가 너무 많이 싫어했던 인간형 중 하나로 변해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시오노 나나미 책을 뒤적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더라. 걸출한 예술가의 기본 능력은 공존할 수 없는 두 인간형을 하나의 정체성 안에 공존시킬 수 있는 능력. 이라나.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절절한 고통들을 머릿속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이 땅에서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머릿속으론 온갖 거대담론들을 포석하면서도 결국 오늘도 내일도 배고프고 졸린 채 살아가야 하는 비루한 인생이란 걸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 의 입장에서 그럴싸한 글을 그럴싸하게 써내는 일은 너무 어렵기만 해서, 나는 늘 이야기를 하다 말기도 하고 글을 쓰다 말기도 한다. 그래 뭐, 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만큼 솔직한 사람인지라 하나를 감춰놓고 둘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아직도 알지 못하니, 정말 삶의 무게나 고민의 종착점을 글 따위로 풀어내다간 글이 완성되기에 앞서 혀를 깨물거나 천장에 신발끈을 걸게 될지도 모르고, 여자처자 글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이후의 삶이 너무나 판이하게 재미없어질 것만 같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런 글을 꾸준히 써 내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라고는 하지만 글쓰기마저 포기하기란... 포기는 좀 그만하자;; 일단 X까지는 쓰기로 한 거니까 해 봐야지. 처음부터 목적 자체가 그게 가능할지 판단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조금만 더 진지하게, 라기보다는 신중하게, 라기보다는 끈질기게. 뭐 그런 방식으로.
살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