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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우울

우울할 때도 이젠 무작정 늦게 자거나 추운 밤거리를 서성이지 않는다.
고작 이런 것이 삼사년 더 나이먹었다는 징표일까 싶어서 나는 퍽이나 씁쓸하다.

누구도 자신의 우울을 객관화해서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견뎌내고 있는 이 견딜 수 없이 특별한 슬픔들이 사실 알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보편적이고 허술한 감정의 하찮은 격량일 뿐이란 사실을, 똑바로 들여다 봤을 때 유쾌해질 사람이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대체로 특별하게 대접받길 원한다. 하찮은 이해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인 즉슨 우울이란 것의 해결방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이역만리쯤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다. 예컨데 Affection 과 Medicine 만큼이나. 그런 걸 생각하고 나니, 괜히 이런저런 사람한테 짜증을 부려봐야 부질없는 관계 (나는 이걸 관계-마일리지라고 부르고 싶지만) 만 남게 될 뿐 문제해결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냥 알게 되었더랬다. 한마디로 풀이하자면 그냥 원래 세상 다 그렇지, 라는 거랄까. 헌데 따지고 보자면 되지도 않는 일에 짜증부리고 사과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또 사람 사는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새 사람을 만나든 헌 사람을 만나든 뭔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게 아주 싫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하나의 만남Meeting 이 끝나는 순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고. 그러면서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날 때가 되면 괜히 뭔가를 기대하곤 한다. 내가 도대체 뭘 기대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Affection인지 Medicine인지. 이게 우울인지 아닌지. 세 사람 이상이 함께 만날 때면 나는 습관처럼 제일 앞이나 뒤쪽에 대열을 벗어나서 걷곤 하는데, 그런 시간 내내 오고가고 흩어지는 시간들을 초조하게 세어가면서 대체 뭘 더 해야 좋을지 미치도록 걱정하곤 한다... 는 것도 한 1년 전 얘기인 거 같고, 이제는 그런 것들도 그냥 무덤덤해졌다. ; 아 요사이의 나는 거의 허물벗는 뱀 같이 감정을 벗어버리고 있다.

일찍이 자우림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처방은 A F F E C T I O N, I L O V E Y O U ! 만일 난 다정한 말 같은 건 필요없는데, 라고 대답한다면 그 중딩스러운 쉬크함에 감동받은 나머지 정말 몇대쯤 패주고 싶을 것만 같다. 고작 이런 예의를 차리는 게 삼사년쯤 더 나이먹었다는 징표일까 싶어서 (그리고 어쩌면 실제의 나는 그냥 그런 예의같은 건 몰라라 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한층 더 씁쓸해진다. 삶은 대체로 우울하다. 사람들로는 치유가 쉽지 않다. 내가 얻은 해답은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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