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저녁에 자다 일어났다. 꿈이 사람을 집어삼키려 들고 있다. 감정에 성실한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이제는 내 무의식도 나름의 자제력을 갖추기를 은연중에 바랐는지도 모른다. 바라던 바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문득 떠올랐고 그리하여 꽤나 씁쓸해지고 말았다. 단언컨대 현실이 아닌 곳에서 현실을 습격하는 모든 종류의 욕망과 환상과 바람같은 것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할 계획도 세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나 역시 사소한 실마리 하나조차 놓아버리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게 싫다.
- 삶에는 거대한 흐름이 있겠지만 일상에는 그날그날의 토막난 토픽이 있을 뿐이다. 머리털 나고 이지경으로 일상의 토픽이 제멋대로 헝크러진데다가 거대한 흐름이란 것과 이렇게나 어긋나 있는 건 처음있는 일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신경써야 할 일이 적어도 다섯 가지는 된다. 하나 하나를 성실히 해결하고자 한다면 나는 분신술이라도 써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손오공이라면 이 상황에서 머리털을 뽑는 대신 근두운을 부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고작 두 달 뒤 내 미래의 일상에 털끝만치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토픽들 따위, 어떻게든 성실히 도망가 보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니까 내가 도망을 갔을 경우 나 대신 신경을 쓸 인간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근본문제. 아악, 이 나라의 공직이란 어쩌면 하나같이 이토록이나 무책임하고 무기력한지. 2년간 논의되었던 사안이 고작 5분만에 '해치워' 지는 걸 보고 어떤 의미에선 진심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절대적인 귀찮음에 오전 내내 밍기적대며 생각해 보질 않았다면 말 그대로 묻혀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 여하간 일상에 정말 이가 갈리도록 짜증나는 일들 투성이, 폭발하기 일보직전. 하기 싫어.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하던 일만 시켜도 하기 싫은게 말년인데 왜 하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모르는 일들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자꾸만 시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하기싫다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으아아악 안해 안한다고 모른다니까 모르는 것좀 자꾸 물어보지좀 말라고 아는 걸 좀 물어봐 언제는 뭘 알려줬어야 뭘 알거아냐 니들이 쫌 알아서 해 진짜 죽겠네 나좀살려줘... 속병이 도지고 피곤이 쌓이고 부정교합이 더 어긋나는 소리가 들린다; 요새는 턱이 수시로 빠진다고...
- 책을 봐도 만화를 봐도 영화를 봐도 글을 써도 음악을 들어도 TV를 봐도 소리를 질러도 꿈에 집어삼켜져도 스트레스가 털끝만치도 풀리질 않는다. 이해해줄 사람도 없으니 얘기할 사람도 없고 일방적으로 얘기를 해 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으며 그래서 자꾸만 핀이 나간채 내던지듯 해대던 농담도 하기 싫다. 시간은 가겠지만 도망칠 곳도 없고 그렇다고 맞서서 해결할 역량은 없으며 저마다의 일에 바쁜 인간들은 털끝만치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 나름 자제는 하겠지만 좀 예민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그런 소박한 취지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겠지. 절망적이다. 남은 건 6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