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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주절주절

- 몇 년 전만 해도 봄을 많이 탔는데, 올해는 어쩐지 잠잠하다. 뭐... 제대가 가까워지니 더더욱 영원한 것만 같은 군생활의 지겨움이 사사로운 감정을 집어삼켜 버린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일단 여기가 아직도 영하 1~2도를 오락가락 할 만큼 추운데다가, 봄나들이랍시고 서울이며 청주며 돌아다니자면 봄보다는 오히려 여름에 가까운 햇살이 작열해서 좀처럼 제대로 된 계절감각을 느끼기 어려운 탓도 있다. 이 나라는 이제 여름 / 아주 더운 여름 / 겨울 / 아주 추운 겨울만 남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아놔 더워지면 어떻게 살지. 벌써 걱정이다.

- 어제 별 생각없이 찍어온 동영상을 돌려봤는데; 아니 이건 업로드를 위해 인코딩을 다시 하는게 죄책감이 들 정도로 고화질이다; 혹시나 싶어서 2008년 석모도 여행 당시 퍽이나 돈을 주고 녹화한 영상이랑 비교를 해 봤는데... P300의 완승. 장난감처럼 생긴 주제에 풀HD를 찍는다길래 우습게 봤거늘,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구나. (심지어 그렇게 대충 찍었는데 포커스도 안나갔어 OTL)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 컴퓨터가 1920*1080p 해상도를 소화할 만큼 에너제틱하지가 못하다는 거... 그러고보니 내 모니터 해상도도 아직 1680*1050인데. 얼렁 HDMI 케이블을 사다가 집 TV에서 돌려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겠고나.

- 애정을 접는다, 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일반적으로는 다시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겠지만 어차피 인맥 없는 세상, 어떻게든 다시 봐야 할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불씨조차 타오르지 못하도록 자근자근 밟아대지 않고서는 애초에 정리가 될 턱이 없다. 이건 남보다는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작업이고 그러므로 일종의 자가최면을 끊임없이 걸어대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애초에 좋아할만한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어! 라고 말이지. 이게 맘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도대체 왜 자연스런 마음들을 억지로 짓눌러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요컨대 세상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넘어가버릴 유혹들이 너무 많은데, 어디쯤에서 못이기는 척 넘어가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맞나) 나날이 건조해지는 봄날이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자나깨나 불조심.

- 사실 그러므로 애초의 장담처럼 좋은 친구는 못 될 것 같다. 산불이 무서워서 봄이 오는 걸 막으면 꽃이 피는 것도 못 보는 법이니까. 내가 원래 그렇게나 차가운 사람은 아닌 것도 같으니, 어느 누굴 위해서나 슬픈 일이다.

- 형수님 될 분을 만났다. 약 사흘 전부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을 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금이며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란 점 같지만서두. 세 시간 가량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쓸만한 정보들이 단 하나도 오가지 않아서...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게 사실은 굉장히 싱거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쩜쩜.

- 요새는 주말마다 차원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사람이며 사건이며 모든 걸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차원이동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 순간에야 기억이 떠오른다. 도대체 이곳과 저곳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런 의문 때문에 각 차원에서의 삶을 공들여 일구기가 싫어지는 것 같기도.

- 정말인지 거둬지지가 않는 피곤. 요새는 간때문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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