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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여름은 가고... + 펜타포트 후기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잘도 간다. 특히나 올여름은 비나 그치면 본격적으로 뭐라도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더만 어느덧 어제는 입추였으며 이번 주말이면 말복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추가적으로 주말에 또 비가 온다는 소식도) 어쩐지 간만에 시내 옷가게를 둘러보니 벌써 가을 옷들을 내놨더라. 썬크림 하나 제대로 바를 사이 없이 여름이 간다. 하나의 계절이 이처럼 가볍게 가버리는 풍경도 참 드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어쩐지 씁쓸하다. 그러고보면 작년 겨울은 정말 몸서리나게 추워서, 이번 여름도 그에 걸맞게 더웠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쩝.

지난 일요일엔 어머니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종일 병원에 있으니 나만 할 일이 없어서 죽을 지경;;) 양해를 구하고 펜타포트에 다녀왔다. 공연 퀄리티가 이러니 저러니, 페스티벌 운영이 이러니 저러니 따지기 이전에, 사실 내가 구한 표가 3만원대에 풀린 초대권이었으니만큼 이 놀라운 저렴함에 감탄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게다가 서울서도 생각보다 꽤나 가까웠다. 정말 지하철 타고 딱 두시간만에 정문에 도착했으니... 진짜 서울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혜택을 받는 곳에 살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긴 그러니까 집값이 그 지경인건가;

세 시 조금 넘어 도착해서 제대로 본 공연은 장재인, 검정치마, 부활, 팅팅스, 심플플랜.

장재인 양은 아직 무대를 휘어잡는 존재감이 심히 미약한 느낌. 선곡한 센스를 보니 나름 관객 반응을 의식한 모양인데, 솔직히 너바나 곡들 - 스멜스라잌틴스피릿이나 리튬같은 건 듣기가 좀 괴로웠고; 나머지 솔로 앨범에 있는 곡들도 어쩐지 손발이 안맞는 기분이었달까? 음. 솔로앨범을 들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처음 슈스케2로 접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그런 뮤지션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검정치마. 1집 당시 활동하던 밴드맨 중에는 작은사슴이라 불리던 (맞나?ㅋㅋ) 드러머만 남아 있드라. 사실 1집 활동 끝날 때까지도 이 팀을 "조휴일 원맨밴드" 로 인식하진 않았는데... 아방가르드 킴의 모델이란 의견이 있던(;) 기타리스트가 맘에 들었던 터라 어쩐지, 아쉬웠다. 게다가 이 새로운 팀은 언제쯤 앨범의 전 곡을 카피할 수 있을런지!... 아, 공연에 대해선 할 말 없음. 뭐 검정치마 라이브를 팬심으로 듣지 언제는 실력으로 들었남? 세상에는 놀라운 연주력이나 절정의 가창력을 선보이지 못해도 '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밴드가 있는데, 검정치마가 대표적이다. 예의 <Antifreeze>는 정말 어느 자리에서 들어도 사랑스러운 노래였고, 앵콜곡 <강아지>도 참, 스물아홉이 가까워질수록 느낌이 새록새록...

현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이끄는 밴드, 부활. 부활은 보고 싶어서 봤다기보담은 그냥 볼 게 없어서... 이 날 출연진 중에는 가장 연예인에 가까운 팀이었으니만큼, 나름 관객도 많이 몰렸더랬다. 부활도 나름 빡신 락밴드다! 란 자체모토로 진행된 이 날 공연은 이 팀의 강점이자 단점인 락발라드를 하나도 선보이지 않았는데 (;) 글쎄 난 현 보컬 정동하씨나 피쳐링으로 등장했던 박완규씨나 정녕 락발라드에 최적화된 보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뭣보다 둘 다 톤이 너무 낮다. 박완규씨도 론니나잇을 원키로 부르던 리즈시절은 아니고... 여하튼 앞에선 신나게 하고 있지만 나는 별로 신나지 않는, 그런 공연이었다. (사실 빠른 버전 희야나, 시종일관 김태원 독주회 같았던 분위기는 좀 무리수였다고 봄. 이날 부활은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를 불렀는데, 어쩐 일인지 이 날 셋리스트중엔 이게 가장 좋았다는 아이러니...)

팅팅스는 전-혀 모르는 팀이라 맨 뒤쪽에서 주먹밥 씹어먹으면서 봤다. 막 반할 정도는 아니고 끌리긴 하더라. 페스티벌 끝나고 노래 찾아봐야겠네? 싶을 정도로는.

그리고 쏟아지는 비바람과 함께 했던 심플플랜. 북상하는 태풍때문에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공지가 있었고 (;;) 예정보다 30분 일찍 시작하겠다는 공지도 있었지만, 결국엔 고작 5분 일찍 시작해서 예정대로 끝을 맺었다. 삼수만에 한국 공연에 성공한 밴드답게 이들은 시종일관 매우 흥분한 모습이었다. 시작부터 <Shut up!> 같은 노래로 달궈놓더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펑크 넘버들... 관객 태반이 못알아듣는 게 뻔한데 무슨 멘트는 그리 많이 하는지... 중간에 섹스 윗 미! (...) 같은 무리수는 또 무엇이며...; 솔직히 락페빨 아니면 이렇게 호응할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던 관객들. 증거를 들자면 떼창이 제대로 된 노래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Addicted> 같은 건 노래방에도 있고 여기저기 삽입곡으로도 많이 쓰여서 다들 알 줄 알았더니 마이크 들이밀자마자 조용... 확실히 이들이 어마어마한 인기밴드는 아니라는 증거였다. 심플플랜,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작년 뮤즈나 이번 스웨이드 공연 떼창 동영상은 찾아봤겠지?

이랬거나 저랬거나 정신없고 씐나게, 앵콜곡도 세 개나 한 끝에 공연 끝.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손색없는 무대였고, 개인적으로는 락페를 쫓아다닌 6년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헤드라이너의 모든 노래를 섭렵하고 있는 날이었지만... 이상하게 지산의 오아시스나 펫샵보이즈, 혹은 하다 못해 뮤즈(;) 정도의 감회도 없다는 게 희안한 공연이었다. 이게 밴드의 역량차이로 직결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브릿팝과 펑크락이라는 장르의 차이가 좀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심플플랜 노래중에 조용히 들을 어쿠스틱 넘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곱씹을 노래는 잘 없는 게 또 사실이니까... 왁왁 소리지를 게 많긴 해도 뮤즈처럼 광기를 발산할 노래는 또 없고...

그리고 맘놓고 감회를 즐기기엔 비바람이 너무나 광포했다. 태풍 위협때문에 캠핑장도 조기 철수를 시작한 탓에, 수천명 관객들이 일시에 비바람을 뚫고 귀가를 시작한 것이다. 저마다 비닐 우비를 뒤집어쓰고 손에손에 가방을 든 채 택시와 버스를 향해 줄을 선 모습이, 그 어둠 속에서도 어쩜 그리 애처로웠는지, 그 와중에 일행도 없는 내 모습은 왜 또 그리 초라했는지;; 여하튼 관공서의 공식협찬을 받는 페스티벌 답게 서울까지 향하는 전철이 특별 연장운행(!) 을 시작해서, 새벽 한시 반 무렵 인천터미널 앞에 도착. 인근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원한다면 서울역까지도 갈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서비스라고 본다)

그리고 아직까지 어깨가 좀 쑤신다... 펜타포트가 접근성이 좋긴 하지만 역시 환경이 쾌적하기론 지산이 갑인지라, 내년에도 일단 조기예매를 시도하긴 할 것이다. 지금 바라는 게 있다면 제발 올해보다 티켓값이 떨어졌으면 하는 거랑, 라인업이 괜춘했으면 하는 거랑, 그리고 체력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거?; 솔직히 체력이 딸려서 심플플랜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비바람은 몰아치지, 우비는 걸치적거리지... 딱 첫 곡 할때 마구 뛰고 났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앞에선 슬램존도 만들고 장난 아니었는데... ㅡ.ㅜ 아아 세월앞에 장사 없구나. 젊었을 적엔 돈이 없어서 못 놀고, 늙어선 체력이 없어서 못 놀면 이거야 억울해서 어쩌란 말이냐!?

* 사진은 쫌있다 집에 가서 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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