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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슬픔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 한다. 원한과 원망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얽히는 게 아니라 산 자와 산 자 사이에 얽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죽은 사람이야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겠지만 산 사람들은 그저 걷잡을 수 없이 멍해지고 있다. 너무 큰 슬픔은 삶의 모퉁이에 당당히 들어오지 못하고 근근히 스며들기만 한다. 그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시간은 가고 있다. 초여름 햇살이 너무 밝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웃고 있어서 더더욱 씁쓸해졌다. 세상의 임계점까지 저주와 죽음이 쌓이고 있는 느낌이다.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이 세상의 안위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혼자 있을 때면 소름끼치도록 아찔해진다. 참 저열한 농담들이 현실로 속속들이 침투하고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엉겨붙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돋아난다. 그렇게 작년, 올해. 너무 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아무런 희망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남아나는 건 그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 너무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미래들 뿐이다.

이틀 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
나는 그래도 그 견디기 힘든 미래에 그 사람이 있을거라고 믿어왔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끝에 간신히 돌아오게 된, 그 사람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전거도 타고 술도 마시고 잡담도 하고, 간간히 책도 쓰고 신년이면 인터뷰도 하면서 무엇보다... 행복하게. 그가 진정 위대한 정치가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이렇다할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정말 간신히,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자리를 잘 찾아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적어도 지난 일년의 몇 달동안에는 이 나라에 노무현만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 무던한 행복 자체로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래,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죽어선 안되는 거였다. 우리 어머니는 노무현 특집 다큐를 보며 몇 번이나 그렇게 이야기했다. "왜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또 한 사람의 행복이 깨져버렸다. 어제 오늘 노무현의 죽음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최진실의 죽음에 가슴아파하던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더 깊은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허나 그 가능성은 앞으로 이 정부가 얼마나 더 삽질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뭐, 어제 오늘 시청 앞 풍경을 보아하니 이미 한 두 삽 정도는 뜨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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