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볼거리란 것의 상당수가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탓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바티칸 투어는 곧 바티칸 박물관 투어와 같은 말이고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켈란젤로 투어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천장화와 벽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러 가는 여정이란 말씀.
뭐 카톨릭 신자에게는 좀 더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투어는 보통 아침 일찍 집합한다. 내 경우엔 7시 30분 집합이었음.
아침 일찍 시작해도 하루 웬종일 걸린다.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볼것도 많고;
줄을 서면서 가이드 안내기를 나눠주고 대충의 브리핑을 해 준다.
비슷한 시간에 전세계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잠깐 사이에 줄이 꽉 들어찬다; 늦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임.
나랑 같이 했던 분들이... 신혼부부 한 쌍이랑 4인 가족, 혼자온 여자분 하나였던가?
맨날 혼자 다니다가 좀 기묘한 기분이었음. 그러고보니 이 날은 영어를 한마디도 안 썼던듯...
바티칸 대문.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라파엘로 및 바티칸 초대 교황이 새겨져 있다 (맞나?; 오래돼서...)
9시부터 입장 시작. 간단한 입국검사를 거친 후에 곧바로 표를 사서 바티칸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서 박물관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ㅅ-
유럽 관광지에 사람이 많다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여기가 진짜 제일 많았다
더구나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니...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가이드 말에 정신을 집중하는 수밖에;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는 바티칸 미술관 대문에 떡하니 서 있는 피에타상.
이 빌어먹을 천재가 무려 24살에 만든 작품으로, 미켈란젤로 명성의 초석이 된 물건임.
자기가 만들었다는 걸 사람들이 안 믿어주니까 이름을 새겨버렸다고...
이건 모조품이고 진품은 예나 지금이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다
도저히 이 솜씨를 따라잡을 수 없음에 절망한 어느 조각가가 망치로 두들겨 부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아저씨는 오늘날 바티칸의 기틀을 닦은 교황 피우스 11세.
바티칸 투어 오전 코스에서는 보통 중세부터 바로크시대까지의 주요한 회화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작품이 많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같은 문외한의 눈에 띄는 건 라파엘로와 카라바조 정도인데...
위에껀 그리스도의 변용. 아래껀 기억이 안난다... 여하튼 후기작과 초기작.
이 아저씨는 대체 제대로 완성한 것이 뭐란 말인가. 쳇
바로크시대 작가들은 이 주제가 가지는 묘한 섹슈얼함을 애용했다고 하는데
짧게 요약하긴 했지만 회화관을 돌고 나면 오전 일정은 끝이 난다 -.-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혹여 따로 준비해 온 사람은 알아서 챙겨먹으면 되는데
구내식당 메뉴가 그리 화려한 편은 못되지만 끼니 해결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뭐 난 여행에 식도락을 크게 따지는 성격이 아닌지라...
재밌는 건 식당 안에 어디로 가나 한국 사람이 득시글거린다는 점.
진짜 삼십분쯤은 한국에서 밥먹는 느낌이었다.;
뭐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았고... 이후 천지창조/최후의 심판까지 가는 길이 워낙 정신없는지라
그나마 한가한 이 곳에서 대강의 프리뷰가 이루어졌다. 아마 이건 거의 모든 바티칸투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방에 천지창조/최후의 심판에 관한 판넬식 설명판도 있음.
그리고 다시 오후 투어를 시작하면 조각작품을 먼저 관람하게 되는데
네로의 황금궁전 터에 있던 걸 농부가 밭갈다가 발견해서 미켈란젤로가 출동. 직접 구해왔다는데
그러고보면 참 유서깊은 발굴물인 셈이다. 르네상스 역사는 이런게 재밌다니까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도 라오콘 모조품이 있는데, 이건 1527년 독일군의 로마 약탈 당시
라오콘을 빼앗기기 싫었던 교황이 제작을 지시해서 만들어낸 거라고 한다
고로 모조품이긴 한데 역시 600년이 지난 물건이다보니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갔다가 반환된 물건이라고 한다.
얘는... 어쩐지 비슷한 형상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강의 신상이라고 한다.
천한 범인의 눈으로는 당췌 어디가 왜 완벽한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어쨌건 미켈란젤로는 근육질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 이런 게 좋았겠거니 싶다.
사실 복원하라는 명령이 귀찮아서 둘러댄 건 아니었을까. 음음
그딴 설명보다 사람이 너무 많다-_-;;; 정말 여기부턴 내 의지와 관계없이 파도처럼 쓸려가게 된다
(참고로 방 출입문보다 욕조가 크다. 욕조 먼저 옮겨둔 다음 건물을 지었다고도 하는데...)
사실 이 방의 진짜 주인공은 이 바닥 타일이다.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거짓말처럼 번쩍거리는 저 퀄리티의 비밀이 이전 작업에서 밝혀졌는데
모자이크의 조각 하나 하나가 깊이 수 미터로 바닥에 박혀 있었던 것.
고로 아무리 닳고 닳아도 계속 저런 색깔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걸 믿어야 하나...
이집트 관련 물품은 여전히 생경하다...-_-
바티칸 박물관 유물들을 보면 참 교황이 욕심쟁이였구나 싶다
여기도 진짜 귀한 그림들이 많은 방이었는데. 기억이 안나...
그냥 이 때 당시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만 많고;
여기는 지도의 방. 오오
딱 눈에 들어오는 베네치아 지도...
고지도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여기 좀 더 있고 싶었는데 역시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ㅡ.ㅜ
이제 슬슬 바티칸 투어의 준 하이라이트쯤 되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으로 향하게 된다.
근데 여긴 뭔 방이었지; 라파엘로 작품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기는 콘스탄티누스의 방이다.
대략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야기가 그려진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근데 여기가 나름 교황의 거처라는데, 이렇게 벽에 그림을 그려버리면 정신 산란해서 어찌 사누...
흐아압. 어쨌든 다음 방은 드디어 준 하이라이트 서명의 방.
그리고 참 유명한 아테네 학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 모델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브라만테.
아테네 학당 등장인물 이름 맞추기 놀이는 경향각지에서 지겹도록 벌어지고 있으니 이쯤 해두고;
라파엘로는 이른바 르네상스 3대 거장 중에 가장 어렸으니만큼
선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였다. 특히, 이 그림을 작업하고 있을 무렵
미켈란젤로는 바로 옆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으니...
선후배이자 라이벌로서 두 예술가의 관계는 아직까지도 괜찮은 얘기꺼리라고 하겠다.
그레고리 9세. 모델은 율리우스 2세 교황.
괴팍한 성격의 폭군으로 이름높은 율리우스 2세는 어쨌건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먹여살리는 많은 걸작의 직접적 후원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천지창조 작업을 갖고 벌인 미켈란젤로와 율리우스 2세의 밀.당은 참 괜찮은 모티브...
아테네 학당을 보고 나면 이제 바티칸 투어의 하이라이트. 시스티나 예배당이 남았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작품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NHK의 지원 하에 복원작업이 이루어진 이후
NHK 저작권의 보호 아래 놓여 있어서 본래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된다. (그림 보존의 이유도 있겠지만)
가이드북에 따르면 "사진기를 꺼내는 순간 누군가 끌고 간다" "농담 아니니까 정말 찍지 말아라" 라고 했고
우리 가이드도 사진 절대 찍지 말라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마음 비우고 들어갔는데
예배당에 들어가는 순간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쉬 세례...
-_-;
예배당에 꽉 찬 수백명의 관람객이 거의 전부 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으며
심지어 경찰들은 뒷짐지고 그걸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소심한 마음에 조금 주저하다가 결국 마음껏 촬영 시작.
벽화 최후의 심판.
천장화 천지창조.
뭐 이건... 설명이 필요없는 장면이랄까
바티칸 투어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하는 사람이 미켈란젤로이며
그 중에서도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설명이 절반 이상이다보니
온종일 이어진 장구한 투어 끝에 도착한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작품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참, 새로운 경험이라고나.
그러고보면 대학 초년생때 인터넷에서 이 곳 사진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 가서 사진을 찍고 있다니 참.
돌이켜 생각하건대 시스티나 예배당은 예술작품 본연의 '아우라' 를...
그러니까 하이데거가 말한 개념에 가깝게 간직한, 보기 드문 공간인 것 같다.
이 그림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이란 책을 읽어보시길.
가이드 설명도 재밌긴 한데 아무래도 각색된 부분이 좀 많기도 하고...
시간이 좀 늦었다. 초스피드로 박물관을 빠져나와 (다시 빠져나올 줄이야!) 성 베드로 광장으로.
투어는 보통 여기에서 끝나거나,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둘러 본 다음 끝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여기서 끝났다. 그랬는데도 오후 여섯시였나...
두 장이 인증샷이긴 한데 좀 애매하게 나왔네. 옆에 분들은 아마 함께 투어받았던 신혼부부.
저 동그란 지점에 서면 광장을 둘러싼 회랑의 기둥들이 하나로 보인다고 한다.
바티칸의 상징 스위스 근위병.
저 옷을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던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약간의 복장제한이 있는 편인데 (반바지 금지. 민소매 금지...)
모든 바티칸 투어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복장제한은 결국 성당 출입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
사실 복장제한하는 성당이 한두군데도 아니고. 뭔가 좀 많이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백년에 한 번 연다는 천국의 문.
교황은 공식적으로 천국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위임받은 사람이니까... 문을 열 수 있다 이거다 (;)
너무 길어서 요새는 25년에 한 번 연다고 한다. 아마 다음은 2025년?
이걸 열 때면 바티칸에 관광객이 폭주한다는...
그리고 오리지날 피에타 상.
앞서 말했듯 괴한의 습격이 있었던 이후로 유리벽 안에 보존되어 있다.
조명을 잘 받아서 그런지... 직접 보면 정말 이쁘다. 헉소리나게...
미켈란젤로 3대 조각 걸작이란 걸 다 챙겨봤지만 피에타 상은 정말 특별히 거룩한 느낌이다.
판테온 간판을 뜯어다가 녹여서 만들었다고... 쩔어주는 재활용 정신으로 욕먹는 물건이기도.
성당 안에 있는 모자이크 버전 그리스도의 변용.
사실 성 베드로 성당의 역사는 어디다 자랑질할 건 못 된다고 생각한다
면죄부 팔고 전쟁 벌이고 로마 건축물 뜯어다가 덕지덕지 만든 물건 아닌가
화려함으로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스위스 용병은 돈을 무진 번다는데...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양반. 초대 교황 베드로 성인.
성당구경까지 끝나고 다시 인증ㅅㅅ
원래 이 곳의 오벨리스크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는데
로제타석의 발굴과 함께 이 문자들이 이집트 태양신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밝혀지면서
콘트리트로 싹 밀어버렸다고 전해진다. 흐.
어쨌거나 이걸 약탈해 온 시기가 무려 칼리굴라 황제 때라고 하니...
나머지 이야기는 다시 커밍 순. 이 날 야경투어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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