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일.
투표율 75.8퍼센트에 과반 득표.
누구 탓을 할 것도 없고 누구의 전략을 욕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른바 '87년 체제' 라고 불리는 반민주-민주 세력의 대결구도에서 자잘한 변수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서로의 쌩얼만으로 격돌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숫자가 드러난 것 뿐이라는 말씀. 민주당이나 친노, 불쌍하다고 투표하는 머리 빈 노인네 혹은 곧죽어도 투표 안하는 소쿨족 젊은이들, 필승카드 안철수를 품지 못한 멍청한 작자들의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렇게 뻔한 상수들을 이제와서 탓해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두가 뛸 만큼 뛰었고 할 만큼 했다. 그냥 51대 49가 우리나라의 현주소일 뿐이다. 나에게 있어 이번 대선이 큰 충격인 이유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생경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물론과 세력 대결구도가 명확해지는 대선에서는 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속한 이 편이 '상식' 의 편이며, 아름답고 보편타당한 준칙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수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자꾸만 지는 이유는 셋 중 하나였다. 첫째. '우리 편' 이 투표를 하지 않거나. 둘째. 언론이 엉망이라 진실전달이 안되거나. 셋째. 민주당이 바보라서 이 분명한 민의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거나. 난 이번 선거에서 셋 다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 '우리 편' 이 애초에 소수였던 거다.
왜 그걸 몰랐을까?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 이인제가 얻은 표는 약 1500만표로, 이번 대선에 박근혜가 얻은 표에 근접한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이 얻은 표는 약 1140만 표인데, 여기에는 정몽준과 2002년 월드컵, 아들 병역 문제로 인해 흩어진 보수표, 그리고 반미 촛불집회의 여파로 타올랐던 반미 분위기가 대거 적용되어 있었다. (2002년이 이상한 해였던 거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 이회창이 얻은 표를 계산해 보면 역시 1500만표에 육박한다. 여기에 투표율 보정을 해 보면 아마 이번 대선 구도와 엇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저쪽은 원래 자기 지지자를을 충실히 끌어모으고 충분한 방어진용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가뿐히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이라는 셈법이 가능하다. 이인제 한화갑 이회창 등등 온갖 퇴물들이 속속 새누리당으로 모일 때 모두가 비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정말 무서운 수였다는 것. 정책선거, 네거티브 없는 선거로 가능하다는 건 애초에 꿈이었다. 그래서 4.11총선이 끝나면서 말한 바가 있다. 판 자체를 계속 흔들고 뒤집고 새로 짜지 않는 이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하긴 판을 지켜내는 것이 지들한테 유리하니까 보수가 보수인 것... 보수가 괜히 보수가 아니지.
무서운 것은 이제 저 사람들이 이걸 깨달은 이상, 더더욱 세대대결과 보혁대결의 구도를 고착시키는 수순으로 나아갈 거란 점이다. 새누리당은 2040과 진보적인 표심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실제 저쪽에서는 진보적 표심의 거부감을 넘어 적대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박정희' 란 심볼을 전면에 매달았고, 이쪽에서는 그 어떤 실질적인 구호도 정책협의도 없이 오로지 '독재자의 딸' 을 막겠다는 사명만으로 모든 인물들이, 심지어 이정희까지 후보직을 사퇴하고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이겼다.
솔직히 이제, 민주-반민주라는 이 구도에서는 출구도 없고 뒤집기도 불가능해 보인다. 비교적 반칙과 변수가 없는 이번 승부에서 그 정답은 51대 49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걸 깨려면 노무현쯤 되는 스타 혹은 반짝 이벤트나 반칙이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런데 뭐, 실제 대한민국의 국민 절반 이상은 이미 이 구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안철수란 사람이 등장했고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는 과정이 그다지도 시끄러웠던 거겠지. 해답은 '새 정치' 에 있다. 87년 체제와 박정희, 노무현이라는 두 신화를 완전히 잊어먹게 만들 만큼 막강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근데 그게 뭔지는 안철수도 모르고 국민들도 모른다. 우리가 그게 뭔지 찾는 사이 다시금 굳히기에 들어간 저들은 다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할 것이다. 막막하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 등의 면면에서 이번 정부에 거는 일말의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명박 정부 5년의 총체적 천박함, 모든 것의 우위에 돈을 놓는 그 천박함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아마 이런 천박함과는 거리를 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아마도 그 천박함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권위주의가 온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천박함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외부효과 때문에 그나마 주춤했다 치고, 대체 박근혜의 권위주의는 어떻게 막아야 한단 말인가... 난 세상에서 꼰대가 제일 싫단 말이다!!)
여하튼 정말 우울한 연말이다. 그리고 안진규는 연락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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