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에 있는 책날개에 쓰여 있지만서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노벨문학상을 탄 그 작가의 또다른 작품 되겠다. 문학상을 받았지만 픽션 작가는 아니다. <전쟁은 여자의...>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모음, 기록문학인데, 사실 읽다보면 이게 인터뷰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을 정도로 말투가 생생하다. 에...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자연스럽다. 진짜 사람들이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무슨 배우들이 하는 독백연기를 보는 느낌.
- 책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겠지만, 1986년 벌어진 체르노빌 사건에 대한 수십 명의 인터뷰가 담겨져 있다. 체르노빌로 보내져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던 소방관들, 군인들, 그 사람들의 가족들... 프리피야티에서 살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체르노빌 사건 그 당시와 그 이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기보다는 글로 쓰여 있어서 담담하게 읽고 그냥 아 그렇구나... 넘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편인데, 하나하나 그림을 상상하며 아주 천천히 읽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보면 읽다가 울었다는 둥 가슴이 메어졌다는 둥 온갖 후기가 많은 편인데 난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읽고 상상하며 읽고 감정이입이 잘 되는 독자분들께 추천. 요컨대 나한테는 별로 맞지 않는 책이었다.
- 사실 그런 면을 감안하려 해도 너무 길다. 인터뷰이마다 개성이 잘 드러나는 사람이면 혹시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만일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굳이 변명할 생각은 없다. 제일 중요한 거 맞다. 맞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다. 저마다 고양이를 집에 두고 오고, 개를 두고 오고, 소중한 텃밭을 두고 오고... 뭐 어제까지는 잘 돌아다니던 집인데 갈 수가 없고, 이건 패배할 수 바에 없는 전쟁이고, 가족이 죽었고, 남편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등등. 작가 스스로 체르노빌은 객관화를 할 수 없는 사건이라 책으로 쓰는 걸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 체르노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벨라루스 사람이라는 듯) 그 염려가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하겠다. 실제 사건임을 감안하더라도 챕터 1 정도면 충분했다. 별 구분도 가지 않는 인터뷰들을 왜 챕터 1, 2, 3이라고 나누어 가며, 게다가 그 챕터마다 이상한 소제목을 붙여가며 분량을 이렇게 늘려놨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기록이라면 이해하겠는데 그걸 묶어서 책으로 내고 "순서에 따라" 읽게 하는 의도는 더더욱 모르겠다. 책이라는 매체에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무위키의 체르노빌 항목을 한 오십배는 더 재미나게 읽었으며 체르노빌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그 항목에서 더 뼈저리게 느꼈다.
- 지금도 잘 팔리는 책이지만서두 내가 이 책의 편집자였다면 책머리에 지면을 마련해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태"에 대한 간단한 가이드, 그리고 "방사능 피폭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을 함께 실었을 것이다. 그 정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책이다. 체르노빌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지금 체르노빌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벨라루스가 뭐하는 나라인지도 모르고, 체르노빌이 폭파됐을 때 시간 순서대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모르고, 심지어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른 채로 이 책을, 그러니까 구체적인 피해사례들을 별다른 해설도 없이 늘어놓고 있는 책을 읽는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냥 막연한 비극에 대한 막연한 인상만을 막연하게 얻어가게될 뿐이다. 그런 막연... 함이라니 정말 답답하지 않나?
- 혹평을 늘어놓는 걸 보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 사실 정상적으로는 절대 선택하지 아니하였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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