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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기록: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사람을 대하는 나의 기본적인 자세는 "내가 뭘 안다고" 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조언을 한다거나 교육을 한다거나 어떤 기준에 맞춰서 이건 해야 하고, 저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정하는 것을 정말 끔찍히 싫어한다.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1) 그런 기준을 정하는 것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독선으로 가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탓이며 2) 내 기준으로 인해 남의 인생에 생기는 일에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렇다. 사실 두 번째가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는 되도록 어떤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나의 생각일 뿐' 이란 식으로 전달하여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던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내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큰 울림이 될 수도 있다... 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섭다. 뭐 그런 일이 얼마나 생기려마는.


-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그 어떤 책임질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방어할 수 있는 최후의 변명이라고는 "선의" 이외에는 없는데 선의가 늘 옳은 결과를 보증하지는 않는 탓이다. 세상의 수많은 비극들은 사실 악의에서 시작되기보다는 선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내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 는 변명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며 들어봤을 것이다.


- 위에 "그런 일이 얼마나 생기려마는" 으로 마무리를 지어놨지만 사실 누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는 관계가 있으니 바로 부모-자식 관계가 되겠다. 제아무리 능력없고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의 인생에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법이니까. 육아와 훈육이라 하면 최근의 추세는 "자녀에게 관심을 갖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강조하는 추세인데 그건 그야말로 좋은 말만 골라놓은 것에 불과하고... 결국 어떤 단계에서는 아이의 행동거지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건 안된다" 라고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될 것이다. 예컨대 컴퓨터 게임은 하루에 두 시간만 된다거나, 놀기 전에는 꼭 숙제를 해 놔야 한다거나, 아침마다 학교에 늦지않고 꼬박꼬박 가야 한다거나... 그러니까 나는 이 모든 기준들이 한낱 부모로서의 독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끔-아주 가끔 생각하곤 한다. 걔는 어쨌든 걔의 인생을 살아가는 건데 내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학교 빠지고 마약 하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을 수도 있는 거잖아. (...) 게다가 내 말대로 꼬박꼬박 학교 잘 나가는 모범생이 됐다가 나중에 그 아이가 자신의 학창시절을 크게 후회한다면 (ex. 나는 학교를 그만뒀어야 했어!) 그건 또 어찌 책임질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기준도 대책도 없이 아이를 방치할 수는 또 없는 일인데 그건 또 왜 그런가 그럼 내가 최소한으로 세워야 하는 규칙은 무엇인가.... 뭐 그런 생각들.


- 사실 이런 생각은 보다 근본적으로 교육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회의에 가깝다. 공교육의 역사는 의외로 짧으며 교육이 담당하는 가장 기초적인 역할: 인간의 사회화라는 과업은 본래 누군가가 만들어낸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충실히 따라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공교육 전에는 종교가 그 역할을 했듯이... 그러니까 민족주의 열풍과 산업혁명 이후에 탄생한 공교육이란 것은 본래 국민국가에 충성하고 공장에서 일 잘하는 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 아니었냐! 하는 것. 교육학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뭐라 대답하고 있는지, 에, 사실 많은 선생님들에게 질문해 봤지만 별로 뾰족한 대답을 받아본 적은 없다.


- 어쨌든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걸 부정하려는 건 아닌데,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는 누가 어떻게 왜 정할 수 있는 걸까...


- 시작으로 돌아가자면 결국엔 사람에게 영향주는 게 싫다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뭐 세상 산다는 게 이런 참견 저런 참견 해 가면서 욕도 먹고, 나도 참견당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얽혀 사는 것 아니겠소! 이렇게 따지고 든다면 그냥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 이런 애매뭉수리한 대답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누군가의 삶에 적극적으로 숟가락질을 한다는 건 누가 뭐래도 모오오옵시 무례한 짓 아니덩가.


-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겐 영향을 주고 있겠지... 그런 시체같은 생각을 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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