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국가론은 실재하는 모든 공권력의 근원이 그 공권력에 의해 제약당하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권위있는 중재자 없이는 무한에 가까운 투쟁으로 번지기 마련인 개인간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나아가 더불어 살기 위한 세상을 꾸리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자유를 조금씩 포기하여 국가라는 중재자를 만들었다는 생각. 고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어떤 공권력도 그것의 근원이 되는 국민의 동의, 즉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 동의 없이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니 공정한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과 그 대표자에 의한 대의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민주국가는 이론적으로 별 무리 없이 성립할 수 있다. 허나 이 민주국가라는 실체가 외부의 충격에 부딪히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민주국가론은 "국가" 라는 변수를 고립된 계로 상정하고,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성립된 국가 이론이지, 마치 사람처럼 독립된 실체인 "국가" 가 마주한 외부 충격을 해결하기 위해 성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립된 이론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군주국가론, 혹은 제국주의 국가론이다. 군주국가 혹은 제국주의 국가 내에서 국가(=군주)의 안녕이나 영광은 손쉽게 국민의 안녕이나 영광과 등치되며, 따라서 군주는 국가의 영광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위기상황과 싸워 나가면 그만이다. 전쟁이 필요하면 전쟁을 하고, 노동력이 필요하면 국민을 징발하며, 제도를 만들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그것이 원칙적으로 그릇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와해된다면 외부충격에 대응할 힘 역시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에는 이런 나라들도 민주주의 비슷한 걸 하긴 한다. 품격있는 국가처럼 보이기 위한 악세사리로. 이 악세사리가 주제넘게 악세사리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걸 막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 다름아닌 "국가적인 위기상황" 이다. 민주주의를 원칙론으로 삼기 싫은 자들은 흡혈귀가 피를 갈망하듯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갈망한다.
그러니 오늘날 국가는 항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망하지 않는 게 신통할 정도다. 경제가 위험해서, 집값이 올라서, 국민통합이 안돼서, 후진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서, S그룹이 욕을 먹고 있어서, 양극화가 심화돼서, 청년실업이 심각해서, 가까운 적성국가가 도발을 해 와서, 환경이 오염돼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속한 국민통합이며, 신속한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양보와 성숙한 시민의식(!), 그러니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닥치고 현명한 지도자들의 말에 따라주는 자세이다. 국민은 이렇게 설득되고, 국회는 행정부의 거수기로 타락하며, 민주주의는 전제국가의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국민은 신민臣民으로 변모한다. 쏘 왓? 국민들은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양보하는데 동의했으며 후회하지도 않았다. 이건 민주주의다. 그러니 박정희가 13년간 대통령을 해먹었어도 아직까지 이 나라의 신민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이 나라의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현명하고 용기있게 돌파해 낸... 독재자.
나는 이런 아이러니를 빚어낸 위기상황들이 항상 위정자들의 거짓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가 국가를 품격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론 이상의 위치에서, 말하자면 국가를 구성하는 근본 원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말에 억지 동의를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건 말하자면 뭐, 기분 문제니까. 나없는 세상이 얼마나 잘 굴러갈 수 있는지 알고 있으니, 국가를 굴리는 데에 국민의 동의가 그렇게 중요한 것만도 아니다. 정의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이 꼭 아름다운 것만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극히 캐주얼한 취향과 스타일,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쉴새없이 부정되는 명제들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결국 데카르트같이 확실한 원칙을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기분이다. 국민의 뜻대로 경영되는 나라. 그게 아니어도 잘 살 수 있단다. 죽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게 아니어도 된단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존중되는 나라. 그것도 아니어도 된단다. 쏘 왓? 도대체 이 세상에 바라는 게 뭐야? 그딴 건 없고 그냥 테레비 나오는 저 여자랑 좀 잤으면 좋겠다는데.
이걸 자괴감이라고 불러야 하나.
민주국가론은 실재하는 모든 공권력의 근원이 그 공권력에 의해 제약당하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권위있는 중재자 없이는 무한에 가까운 투쟁으로 번지기 마련인 개인간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나아가 더불어 살기 위한 세상을 꾸리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자유를 조금씩 포기하여 국가라는 중재자를 만들었다는 생각. 고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어떤 공권력도 그것의 근원이 되는 국민의 동의, 즉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 동의 없이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니 공정한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과 그 대표자에 의한 대의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민주국가는 이론적으로 별 무리 없이 성립할 수 있다. 허나 이 민주국가라는 실체가 외부의 충격에 부딪히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민주국가론은 "국가" 라는 변수를 고립된 계로 상정하고,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성립된 국가 이론이지, 마치 사람처럼 독립된 실체인 "국가" 가 마주한 외부 충격을 해결하기 위해 성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립된 이론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군주국가론, 혹은 제국주의 국가론이다. 군주국가 혹은 제국주의 국가 내에서 국가(=군주)의 안녕이나 영광은 손쉽게 국민의 안녕이나 영광과 등치되며, 따라서 군주는 국가의 영광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위기상황과 싸워 나가면 그만이다. 전쟁이 필요하면 전쟁을 하고, 노동력이 필요하면 국민을 징발하며, 제도를 만들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그것이 원칙적으로 그릇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와해된다면 외부충격에 대응할 힘 역시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에는 이런 나라들도 민주주의 비슷한 걸 하긴 한다. 품격있는 국가처럼 보이기 위한 악세사리로. 이 악세사리가 주제넘게 악세사리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걸 막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 다름아닌 "국가적인 위기상황" 이다. 민주주의를 원칙론으로 삼기 싫은 자들은 흡혈귀가 피를 갈망하듯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갈망한다.
그러니 오늘날 국가는 항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망하지 않는 게 신통할 정도다. 경제가 위험해서, 집값이 올라서, 국민통합이 안돼서, 후진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서, S그룹이 욕을 먹고 있어서, 양극화가 심화돼서, 청년실업이 심각해서, 가까운 적성국가가 도발을 해 와서, 환경이 오염돼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속한 국민통합이며, 신속한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양보와 성숙한 시민의식(!), 그러니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닥치고 현명한 지도자들의 말에 따라주는 자세이다. 국민은 이렇게 설득되고, 국회는 행정부의 거수기로 타락하며, 민주주의는 전제국가의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국민은 신민臣民으로 변모한다. 쏘 왓? 국민들은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양보하는데 동의했으며 후회하지도 않았다. 이건 민주주의다. 그러니 박정희가 13년간 대통령을 해먹었어도 아직까지 이 나라의 신민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이 나라의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현명하고 용기있게 돌파해 낸... 독재자.
나는 이런 아이러니를 빚어낸 위기상황들이 항상 위정자들의 거짓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가 국가를 품격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론 이상의 위치에서, 말하자면 국가를 구성하는 근본 원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말에 억지 동의를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건 말하자면 뭐, 기분 문제니까. 나없는 세상이 얼마나 잘 굴러갈 수 있는지 알고 있으니, 국가를 굴리는 데에 국민의 동의가 그렇게 중요한 것만도 아니다. 정의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이 꼭 아름다운 것만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극히 캐주얼한 취향과 스타일,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쉴새없이 부정되는 명제들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결국 데카르트같이 확실한 원칙을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기분이다. 국민의 뜻대로 경영되는 나라. 그게 아니어도 잘 살 수 있단다. 죽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게 아니어도 된단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존중되는 나라. 그것도 아니어도 된단다. 쏘 왓? 도대체 이 세상에 바라는 게 뭐야? 그딴 건 없고 그냥 테레비 나오는 저 여자랑 좀 잤으면 좋겠다는데.
이걸 자괴감이라고 불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