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나는 기사분들과 엇비슷한 대화를 많이 나누곤 한다 :
"부사관이에요?" "아뇨, 장교에요." "아아, 그래요, 장기?" "아뇨, 3년 하고 제대할라구요." "제대하고선 뭐하시게?" "글쎄요. 뚜렷하게 생각해 본 건 없는데 일단 군생활은 적성에 안맞는 거 같아서요." "에이, 그래도 잘 생각해봐야지. 요즘같은 세상에 밖에 나와서 그만한 일자리 잡기가 얼마나 힘든데. 몇살이에요. 학교는 졸업했어요?" "예. 스물 넷이에요. 이제 스물 다섯되네요." "과는 어디 나왔는데요?" "국문과 나왔어요." "국문과... 국문과 나오면 보통 뭐 하죠? 선생님하나?" "뭐, 선생님도 많이들 하지만 방송사나 신문사 취직하기도 하고, 잡지사나 출판사 가기도 하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도 많죠. 드물긴 하지만 글쓰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 할 생각은 없고요?" "제가 학교 다닐때 교직을 안 들어놔서요. 뭐 이제 와서 할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좀 그렇네요." "그래요... 생각 잘해봐요. 그거 말이 취직하는 거지 요즘 세상에 직장 잡기가 얼마나 힘든데. 우리 딸도 (혹은 아들도) 대학 졸업해서 집에 있는데 얼마 전에 대학 다시 가겠다고 그러는거에요. XX대 XX과로. 학교는 졸업했는데 할 일이 없는거지. 그래서..."
낯선 사람과 나누는 보편적인 대화란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모든 것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건, 뭐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딴 대화를 하루에도 두세번씩은 꼭꼭 나누다 보면 머릿속에서도 2년 6개월쯤 멀리 미뤄놨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어처구니없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모든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현실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닐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 꼭 두시간 전 처럼 "그래 나는 이제부터 무엇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러므로..." 따위의 건설적인 생각을 담아 봤자 당장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어쩌면 야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삶이니까. 아 짜증나는 유예기간. 하지만 "모모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3년을 준비했다" 는 대답들이 흔하게 흘러나오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쩌면 꽤나 현명하지 못한 사람인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 인생의 스텝이 나를 그 "무엇" 으로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에 와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 스텝이란 것은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작용한 어떤 종류의 관성에 아주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될테고 말이지. 결정적인 순간이라곤 하지만 내가 할 일이라곤 과거를 분석해 미래에 적용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란 생각이 자꾸 들곤 한다. 내 처지를 아무리 되새겨 봐도 중고딩보다 나을 건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는 진로결정과 내가 하는 진로결정이란 것은 그 위상이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을테니까. 비유컨대 내가 셀이라면 완전체가 되기 위해 삼켜야 할 인조인간들이 이미 어느 정도는 결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걸 재빨리 삼키지 못하면 나는 어느덧 초사이어인이 된 베지터나 손오공에게 얻어터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고 (...)
이 자리에서 단언하건대 나는 글재주가 형편없는 인간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인고 하면 또 그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다. 뛰어난 통찰력과 촌철살인의 재주가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단어를 잘 고르는 것도 아니고 잘 조합하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날 이때까지 내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글" 이라는 것이 어째서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참 하나님도 모르실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날 이 지경에까지 몰려서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에 가장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게 그놈의 "글" 이라는 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건설회사에 취직하거나 프로그래밍에 뛰어드는 것 보다야 가능성이 있다는 게다.) 인생의 관성이란 것이 대체로 요망하기 마련이라, 때때로 이렇게 이상한 운명을 인간에게 부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태까지의 글을 총 요약하자면 "나는 스물 다섯을 먹도록 할 줄 아는게 글쓰는 것 밖엔 없는데 그것마저도 그닥 대단한 것 같진 않다. 어떡하지?" 가 되겠다. 어떡해야 되는지 아는 사람은 부디 연락을 주시면 고맙게 생각해 드리겠다. 아,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잖아" 류의 충고는 무효다.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요상한 방향으로 고민하는 거다. 아니면 당장 먹고 살 길이나 궁리하겠지.
지난 일주일간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 와우는 역시 끊는 게 좋은 것 같다.
"부사관이에요?" "아뇨, 장교에요." "아아, 그래요, 장기?" "아뇨, 3년 하고 제대할라구요." "제대하고선 뭐하시게?" "글쎄요. 뚜렷하게 생각해 본 건 없는데 일단 군생활은 적성에 안맞는 거 같아서요." "에이, 그래도 잘 생각해봐야지. 요즘같은 세상에 밖에 나와서 그만한 일자리 잡기가 얼마나 힘든데. 몇살이에요. 학교는 졸업했어요?" "예. 스물 넷이에요. 이제 스물 다섯되네요." "과는 어디 나왔는데요?" "국문과 나왔어요." "국문과... 국문과 나오면 보통 뭐 하죠? 선생님하나?" "뭐, 선생님도 많이들 하지만 방송사나 신문사 취직하기도 하고, 잡지사나 출판사 가기도 하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도 많죠. 드물긴 하지만 글쓰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 할 생각은 없고요?" "제가 학교 다닐때 교직을 안 들어놔서요. 뭐 이제 와서 할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좀 그렇네요." "그래요... 생각 잘해봐요. 그거 말이 취직하는 거지 요즘 세상에 직장 잡기가 얼마나 힘든데. 우리 딸도 (혹은 아들도) 대학 졸업해서 집에 있는데 얼마 전에 대학 다시 가겠다고 그러는거에요. XX대 XX과로. 학교는 졸업했는데 할 일이 없는거지. 그래서..."
낯선 사람과 나누는 보편적인 대화란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모든 것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건, 뭐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딴 대화를 하루에도 두세번씩은 꼭꼭 나누다 보면 머릿속에서도 2년 6개월쯤 멀리 미뤄놨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어처구니없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모든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현실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닐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 꼭 두시간 전 처럼 "그래 나는 이제부터 무엇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러므로..." 따위의 건설적인 생각을 담아 봤자 당장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어쩌면 야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삶이니까. 아 짜증나는 유예기간. 하지만 "모모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3년을 준비했다" 는 대답들이 흔하게 흘러나오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쩌면 꽤나 현명하지 못한 사람인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 인생의 스텝이 나를 그 "무엇" 으로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에 와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 스텝이란 것은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작용한 어떤 종류의 관성에 아주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될테고 말이지. 결정적인 순간이라곤 하지만 내가 할 일이라곤 과거를 분석해 미래에 적용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란 생각이 자꾸 들곤 한다. 내 처지를 아무리 되새겨 봐도 중고딩보다 나을 건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는 진로결정과 내가 하는 진로결정이란 것은 그 위상이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을테니까. 비유컨대 내가 셀이라면 완전체가 되기 위해 삼켜야 할 인조인간들이 이미 어느 정도는 결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걸 재빨리 삼키지 못하면 나는 어느덧 초사이어인이 된 베지터나 손오공에게 얻어터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고 (...)
이 자리에서 단언하건대 나는 글재주가 형편없는 인간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인고 하면 또 그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다. 뛰어난 통찰력과 촌철살인의 재주가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단어를 잘 고르는 것도 아니고 잘 조합하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날 이때까지 내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글" 이라는 것이 어째서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참 하나님도 모르실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날 이 지경에까지 몰려서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에 가장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게 그놈의 "글" 이라는 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건설회사에 취직하거나 프로그래밍에 뛰어드는 것 보다야 가능성이 있다는 게다.) 인생의 관성이란 것이 대체로 요망하기 마련이라, 때때로 이렇게 이상한 운명을 인간에게 부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태까지의 글을 총 요약하자면 "나는 스물 다섯을 먹도록 할 줄 아는게 글쓰는 것 밖엔 없는데 그것마저도 그닥 대단한 것 같진 않다. 어떡하지?" 가 되겠다. 어떡해야 되는지 아는 사람은 부디 연락을 주시면 고맙게 생각해 드리겠다. 아,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잖아" 류의 충고는 무효다.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요상한 방향으로 고민하는 거다. 아니면 당장 먹고 살 길이나 궁리하겠지.
지난 일주일간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 와우는 역시 끊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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