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심할땐/영화보고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독
거스 반 산트 Gus Van Sant

캐스팅
게이브 네빈스 :: 알렉스
Gabe Nevins :: Alex
다니엘 리우 :: 리차드 루 형사
Daniel Liu :: Detective Richard Lu
테일러 맘센 :: 제니퍼
Taylor Momsen :: Jennifer
제이크 밀러 :: 제라드
Jake Miller :: Jared

84분, 드라마

(꺄 드디어 스릴러/공포를 벗어났구나ㅠ)

 이제야 봤다. 영화감독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스토킹하다시피 쫓아다니고 있는 그 분, 거스 반 산트의 최신작 파라노이드 파크. 사실 아직까지는 "이 감독이라서" 영화를 본다기 보다는 한편 한편 너무나 매력적인 이들을 내세우니 보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엘리펀트>의 이쁘장한 꼬꼬마들, <라스트데이즈>의 완벽소중한 그분 커트 코베인 (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이다호>의 아름다우신 리버 피닉스의 뒤를 잇는 이는 게이브 네빈스라는 신인 배우... 의 파릇파릇하고 상큼한 얼굴! 스케이드보딩이 취미인 10대 청소년이란다, 게다가 방황도 한단다. 딱 그분의 취미와 주된 관심에 걸맞는 연령대와 걸맞는 분위기에 걸맞는 성품(?;) 을 지니셨다. 뭐 거스 반 산트께서 데뷔 이래 주구장창 젊음과 방황을 다루셨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죄다 자살하거나 별 이유 없이 타살당하거나 실종되거나 혹은 영화를 벗어나 실제에서까지 자살을 택하는 결말을 보여주셨던 만큼;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조금 색다르다. 난 그의 영화에서 정말 제대로 젊은 아이가 조금은 덜 우울하게 방황하다가 그나마 건강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젊음에서 죽음과 공포의 딱지를 벗겨내라. 좀 그 나이대에 걸맞은 상큼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라. 어쩌면 <용의 이> 후기의 듀나처럼 거스 반 산트도 그런 고민을 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 다음 작품에서는 상큼한 이야기를 해 보자. 주인공이 자살하지도 않고 타살당하지도 않고 실종되지도 않는, 젊음의 열기와 생명력에 걸맞는 고민을 하다가 상큼발랄하게 모든 걸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유쾌한 영화를 만들어보자...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아아, 고민이 마구마구 느껴진다. 느껴져! 그리하여- 여기 그나마 상큼한 영화가 도달했다. 이 감독이 차후에도 이런 영화를 계속 만드실지야 의문이지만, 나는 "죽음 3부작" 에 도전했던 감독이라면 "상큼 3부작" 도 만드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마냥 상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는 아름답고 그만큼 그 고민도 예쁘지만 이 아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여전히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이별의 그림자니까. 감독은 이 고민에 더 심각한 고민을 얹어 아이에게 건네 주면서 그 모두를 싸그리 감싸안고 철저히 안으로, 안으로 삭혀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딱 거기까지, 아이가 모든 것을 삭혀내는 곳까지만 조망한 뒤 그 다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향기가 짙게 느껴지는 가운데 그 다음의 이야기도 마냥 밝고 상큼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영원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고 그런 걸 홀로 감싸 안은 후의 인생이 그 전과 같기를 바라는 건 조금은 무리한 욕심이겠지. 그렇게 어른이 되고 그렇게 늙어가다가 적당히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기억을 한 무더기 안게 되면,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오래 묵힌 세월이 모든 곳에 묻어 나올때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십이 넘으면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지란 말도 하잖아? 그럼 사도 명박의 그 사기꾼 면상은... 좀 엇나갔다.;;; 으음.

 살인사건을 은근슬쩍 덮어버리는 플롯의 영화인 만큼 거스 반 산트의 非정치화는 더더욱 심해졌다. 아직은 순수했던 <말라노체>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뭐 이면으로는 여전히 그 종류의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 아이 말마따나 모두가 "관심없는" 일에 이러쿵 저러쿵 끼어든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본 이는 노골적인 비웃음으로 해석하던데, 으음,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뭐 어떻게 보자면 이전보다 더 모호하다. 정치적인 색깔을 빼버리는 작업을 제하자면 본격적인 탈정치라 하기에도 여전히 애매하고, <엘리펀트>에서처럼 철저히 비정치를 논하기에도 조금은 말이 많은 영화다. 조금은 편견이 담긴 해석인가? 아무튼 그쯤 해 두고,

 소리가 끝내주게 좋은 영화다. 영화관에서 안 봤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다. 씨네21의 평에 따르자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샤워씬은 말할 것도 없고, 제니퍼에게 이별을 고하는 씬이나 제러드를 롱샷으로 잡는 씬에서도 음악센스는 그 자체로 거의 예술이다. (프랑스어 웅얼웅얼과 새울음소리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감독 특유의 의도적인 슬로우샷이나 롱테이크는 여전히 잦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처럼 "얼굴대문짝" 클로즈업이 잦은 편은 아니고, 오히려 한 걸음 밖에서 여러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찍은 장면들이 눈에 띈다. 교장실로 가는 아이들이 무슨 아이돌 그룹처럼 잔뜩 폼잡으며 하나씩 나타나는 장면이며, 공원에서 스케이드보딩을 즐기는 아이들을 하나씩 담아내는 장면들에서는, 뭐랄까, "젊은 것" 들의 에너지를 조금은 감정적으로 과장해서 담아내고 싶은 의도가 느껴졌달까. 조금 과하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어설프게 보이는 여자아이들의 눈화장에서도 비슷한 게 보였다. 하긴 애정이 없었으면 애초에 아이들을 이렇게나 이쁘게 담아내지도 못했을 일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정말 아쉬웠다. 더 할 이야기야 없겠지만, 이렇게 이쁜 애들을 두고 떠나야 하다니. 아, 이쁘다, 정말 이뻐.

덧. 감독 얼굴 처음 확인했는데... 꽤나 영화랑 어울리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