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심할땐/영화보고

써티데이즈오브나이트(30 Days of Night, 20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독
데이빗 슬레이드 David Slade

캐스팅
조쉬 하트넷 :: 에단 올슨 보안관
Josh Hartnett :: Sheriff Eben Oleson
멜리사 조지 :: 스텔라 올슨
Mellisa George ::  Stella Oleson
마크 렌달 :: 제이크 올슨
Mark Rendall :: Jake Oleson
벤 포스터 :: 이방인
Ben Foster :: The Stranger

113분, 스릴러, 공포

 고르다 보니 자꾸 스릴러/공포물만 보게 되는데... 올 겨울 스릴러 영화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풍작이라 그렇지 뭐 내 취향이 딱히 이쪽이라 그런건 아니다-_-여름도 아닌데 뭔 공포영화가 이렇게 많은겨.

 감독과 배우들은 대충 저정도고 마케팅에 써먹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면 역시 액션영화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조쉬 하트넷과, 원작 판권을 사서 제작을 맡았다는 이 계열 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 정도일게다. 감독인 데이빗 슬레이드는... 영화 경력은 별로 이거다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게 없는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제법 이름을 날린 모양이다. 헌데 그게 뮤즈란다. 옳거니, 이제 알겠다. <써티데이즈오브나이트> 는 사실 이 계열에서 닳고 닳도록 써먹은 "뱀파이어 + 좀비 비스무래한 그 무언가의 습격" 이란 소재를 다시 한번 우려먹은 영화에 불과하다. 물론 샘 레이미가 그랬고 피터 잭슨이 그랬듯 이 유혈이 난무하는 장르에서 통통튀는 B급 감각으로 무장한 인물들이 종종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이젠 90년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이러니란 아이러니는 선배들이 다 써먹었고 아이디어도 사골 우려내듯 쪽쪽 빨아내 버린지 오래다. 관객들은 꽤나 많이 질렸다. 둔감할 만큼 둔감해진 관객들을 위해 좀 더 잔인하고, 좀 더 리얼하고, 좀 더 깜짝 놀라게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 뿐이라면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 쪽이 조금은 더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영화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화면이다. 화면, 엄청 독특하다. 똑 부러지게 말하자면 자꾸만 카메라가 자꾸 이상한 곳으로 뛰어나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쪼-끔 잔인하긴 하지만;; 두 장면 모두 보통의 스릴러/호러 영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화면구성이다. 첫 장면은 뱀파이어들의 습격을 받은 마을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아예 조감도로 관망하는 중이고, 두번째는 도끼맞아 죽은 동네 아저씨의 시체를 뜬금없이 살짝 떨어진 곳에서 비춰준다. 그 바깥은 거의 평화로운 풍경사진 같은 광경이 채우고 있다. 뭘까? 이 "관망" 의 느낌은. 프레임을 다루는 건 영화의 기본이다. 이론적으로는 얼굴로 클로즈업 해 들어갈 수록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며, 멀리서 잡을 수록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관망하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 한두명이 느끼는 긴장이나 공포같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스릴러/호러 장르에서 이같이 극단적인 와이드-샷은 잘 잡지 않는다. 관객은 관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그들이 느끼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이같이 멀리서 잡은 샷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거 아주 독특하다.

 게다가 마을을 습격한 뱀파이어들은 초반부부터 모습이 아주 잘 공개되신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셨고 이는 날카로우시며 손톱은 좀 깎으실 필요가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슝슝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말도 한다. 친절하게 자막도 달린다. 생각있는 대사의 대명사 "인간들은... 어쩌구 저쩌구" 를 적재적소에 날려주시는 걸 보니 나름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뭐냐? 공포는 무력감보다는 무지에서 나온다. 그러니 공포의 대상은 자고로 공개를 자제할 수록 공포스러운 법이다. 이걸 어기고 스스럼없이 공개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별로 엄청날 것도 없는 뱀파이어일 뿐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하품만 나올 뿐이다.

 이 두 부분에서 이 영화는 A급 공포영화이기를 포기하고 B급 정서를 몰래 흡수하기 시작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제법 똑똑해 보였던 뱀파이어들은 무뇌아가 되어가고 주인공들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알래스카에서 노숙을 며칠씩 하고도 잘만 살아남는 등, 뭐 시나리오에도 허점이 막 뚫리지만 별로 상관없다. B급 정서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나 관객이 시나리오의 개연성과, 최소한의 공포감과, 스릴을 포기했다면 돌려주는 게 있어야 인지상정인 법. 보통은 큰웃음이나, 쾌감 가득한 살육장면이나,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서 받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적당히 만족할 테고, 아닌 사람이라면 실망하는 거다. 나? 나는 받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한다. 명작의 반열에 올릴 만큼은 아니었지만, 저 영상들로 충분히 만족할 만 하니까.

 한마디로 세트 덕을 많이 본 영화다. 잘 찍은 건지, 아니면 알래스카란 동네가 원래 그런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다 카메라를 돌려도 을씨년스럽고 어떻게 프레임을 잡아도 공포가 뚝뚝 묻어난다. 오히려 헐리우드영화답게 "스릴감 넘치는" 카메라 워킹이 반복될 때나, 호러영화답게 나름 자극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계속 이어질 때가 유독 심심하게 느껴졌는데, 문제는 그 이음새가 그다지 좋진 않았다. 불고기피자랑 김치파전이 얼기설기 이어진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