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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땐/영화보고

에반게리온 : 서序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序,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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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져포스터. 근데 난 이게 더 좋다.

총감독, 각본

안노 히데야키 庵野秀明

연출
츠루마키 카즈야 鶴卷和哉
마사유키 摩砂雪

98분, 애니메이션

(...뭐 캐스팅에는 성우진 소개를 할 수도 있겠으나 정보력이 거기까지 닿지는 않는 관계로 이만)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이 일본에서 첫 전파를 탄 것도 어언 12년이 넘었다. 정말 오래돼긴 했구나.; TV판이 요상한 엔딩을 내놓고 논란속에 마무리를 지은 이래 이를 보완한다는 목적 아래 암울 그 자체였던 극장판 <End of Eva> 도 나왔고 비록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전에는 <Death and Rebirth> 도 나왔다. 게다가 얼마 전엔 TV판을 리뉴얼해서 DVD도 발매했고, 게임이며 프라모델이며 이것저것 참 많이도 우려먹었으니 원소스 멀티유즈의 최전방에 서 있는 소재인 셈이다. 가이낙스와 안노 히데야키가, 그렇게 그렇게 우려먹던 에반게리온을 이젠 아예 다시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놉시스 정도는 놔둔 채로 스토리는 변화시키겠다고 하면서. 뭔가 쫌 괘씸하면서도 그래도, 단순히 화잘이 좋아졌다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새로 그렸다니ㅠ 이거야 원.  궁금하니 기대는 되고 어쩔 수 없이 보고 말았다. 뭐 작년 처음으로 제작소식이 들려온 이래로 <에반게리온 : 서> 를 줄곧 기다렸던 사람들이라면 백이면 백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와서 자폐증 소년 신지와 복제소녀 레이, 성격파탄소녀 아스카 및 가정파탄여인 미사토나 냉혈여인 리츠코, 로리중년 겐도같은 이들의 이야기가 새삼 새롭게 다가올 리도 없지 않은가? (이반소년 카오루는 쫌 궁금할지도. 워낙 짧게 나와서) 게다가 <에반게리온>은 오타쿠 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애니다. 이건 곧 작품이 감상의 대상이 아닌 분석의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뜻인데, "새로운 이야기" 를 만들겠다는 건 분석꺼리를 좀 더 던져주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지... 어.쨌.든. 신극장판 연작은 이미 시작됐고 직접 본 결과 성과물도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이 이야기는, 본래의 이야기를 만족할 정도로 압축하면서도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는 새 에피소드들을 그런대로 잘 엮고 있다는 뜻이다. 원작과 신극장판이 어떻게 다른지, 소소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마니아들이 잘 다뤄줄 테니 이쯤 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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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는 신지의 이야기다. 부제도 "You are not alone" 이니 뭐

 일단 서(序)는 신지 개인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제레와 네르프의 인류보완계획에 대한 서두이다. 짧게 말하자면 주인공 소개와 함께 사건의 발단을 다뤘다고나 할까. 원작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영화는 다른 캐릭터들을 재쳐둔 채로 오직 신지 개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데에만 힘을 쏟는데, 덕택에 그냥 "히스테리성 자폐증 소년" 이었던 신지의 캐릭터는 TV판과 극장판 <End of Eva> 를 합친 것보다 더 그럴싸하게 세워진다. 이에 반해 레이나 미사토 혹은 스즈하라, 켄스케 같은 서브 캐릭터들이 좀 소외되는 감이 없지 않으나 관객 대부분이 그들의 이야기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와중에 굳이 같은 얘기를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었을 게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TV판 초반부에 인류보완계획의 정체가 크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신극장판은 상당히 많은 정보를 노출하고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복선 가운데 하나였던 아담과 리리스의 정체를 진작부터 까발려 버리고 신지에게 써드 임팩트를 경고하는 것은 다분히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다. 신지는 인류의 미래를 자신이 책임지고 있다는 말을 직접 듣고 이 말에 부담감마저 느낀다. (...안 어울려) 게다가 영화 말미에는 카오루도 등장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갈 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전개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TV판과 극장판 사이의 가장 큰 괴리였던 "신지" 의 이야기와 "인류" 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한 플롯에 넣어서 완성해 보려는 시도인 것 같은데, 잘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히데야키씨는 죽기 전에 진짜 거장이라는 소리라도 듣고 싶은 걸까. 굳이 더 만들다니.

 TV판이나 신극장판이나 신지의 고민은 한마디로 압축된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주변 인물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역할을 해 주지 못하고 - 결국은 아버지의 빈 자리가 너무 큰 것이겠지만 - 결국에 모두가 떠나가는 와중에 신지가 결국 "존재의 이유" 를 깨닫는다는 것이 TV판의 전반적인 내용이라면, 이 가운데에 계속해서 사도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인류 전체의 문제는 전혀 삽입될 여지가 없다. 실제로 이들이 써드 임팩트를 막기 위해 싸운다고는 하지만 신지가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아버지다. 헌데 사실 "인류의 미래가 네 어깨에 있다" 는 꽤나 부담스러운 말을 들어 가면서 싸우는데 아버지가 칭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에 그렇게나 연연할 사람이 있을까. 갑자기 영웅놀이에 나서는 것도 생뚱맞은 일이겠지만 너무 개인으로 파고드는 것도 그다지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신지가 자폐증 소년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라면 더욱 그럴 일이다 -_- 헌데 이 소심한 혹은 한심한 캐릭터를 유지한 채 등을 떠밀려 만든 <End of Eva> 에서는 아서 클라크스러운 인류보완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결말이 나쁠 수 밖에 없었고 충실한 이야깃꾼으로서 그다지 만족할 수도 없었을 게다.

[Flash]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71CB7B2F36E87A32A76E748FAB3DB107E624&outKey=2e48094c526715b58a8691fdb3418f5d7be1776af4207c2376d86d433f820166f101c0a931f0797fb5d9072efded7891

말 나온 김에 극장판 결말!

 뭐 이래 얘기가 길어졌노. 여하튼 만든 취지도 이해하고 결과물도 괜찮다. 제3도쿄시의 광경이나 몇몇 사도들의 디테일은 꽤 좋아졌다. (라미엘은 실로 충격적으로 변했다. 멋있다 +_+)  그리고 큰 변화라면... 사도 번호가 하나씩 늘었다. 중간에 엑스트라 사도들은 크게 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면, 결국 카오루가 제외된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