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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는 것

삼일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급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나를 떠나는 사람을 붙잡는 방법이나 그래야 할 이유 따위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둘 다 알 것 같았다. 그래서 72시간 가까이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왜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그 사람은 계속해서 내 손아귀 사이로 흘러나가고 있다. 이상한 예감, 지금이 아니면 절대로 붙잡을 수 없다는 느낌, 혹은 지금처럼 노력해 낼 수 없다는 느낌. 해묵은 경구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온몸과 정신을 괴롭혔다. 낡은 차를 타고 슬슬 눈에 치이는 가을을 향해 질주하면서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그 말들 중 어느 것도 의미 있게 만들지 못했다. 다시 집에 도착해 담배를 사러 가면서 나는 무력감에 치를 떨었다. 아, 이런 종류의 무력감은 처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거나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어떤 능력도 내 목적에 걸맞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도 안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늦었을지도 모른다.

필연적 무력감에 부딪히는 게 나이를 먹는 첫 단계라면 나는 이제야 늙어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말이나 희망으로도 메꿀 수 없는 커다란 함정이, 실상 우리 모두에게 예정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그런 걸 알지 못했을까. 계절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얼마나 거대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안되기에 나는 간다. 사실 그런 일들은 여기저기 쌓여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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