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6개월 정도일 뿐인데, 생각해 보면 우스운 바운더리. 경계를 넘어 옛 기억으로 질주할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 같은 걸 느끼곤 한다. 내 인생이 100이라면 이 좁고 복잡한 골목에서 보낸 세월은 어쩌면 0.1 도 채 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아직도 새벽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사계절의 기억을 고루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식객에 소개됐다던 멸치국수 전문점을 스쳐 부산집으로 향하는 짧은 거리에서 어느 1월,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컵라면을 사러 가장 가까운 슈퍼를 찾아 헤매던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얼어붙어버린 발끝의 감각을 떠올렸다. 지난 세월을 오롯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렇게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간과 모든 람들에게 무한히 감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좋았던 기억으로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삶의 모퉁이도 조각해 둘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기원하고 있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집착을 지운 것만으로 나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재생 가능한 기억들을 간직한 것으로 충분하게 되었다. 질식해 버리도록 많은 후회와 그리움을 지우지 못할 한처럼 쌓아두고 살았던 게 그렇게 먼 옛날이 아닌 것 같은데, 참 사람이란 쉽게도 변한다. 바보처럼.
날씨가 참 좋다. 다시 셔터를 만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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