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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땐/영화보고

10월 10일, <멋진 하루> 그리고 <고고70>

아침부터 환율은 1460원이네 주가는 1170대네 하는 뒤숭숭한 소리를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난 요즘따라 이상하게 이 나라가 망해가는 소리가 들리면 들릴수록 기분이 좋다. 촛불 때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이 느낌을 공유해 주던 사람들도 사태가 좀 심각해지니 이런 감수성을 철없는 이들의 냉소에의 도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뭐 핀트가 좀 다르긴 하지만 오늘 김지하씨의 프레시안 기고글을 읽고 나니 그렇게 마냥 비하할 감수성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후천개벽이라니, 무슨 증산도도 아니고... (참고로 김지하씨가 좌익에게 보내는 글은 여기, 그리고 이를 특유의 능력으로 개편하신 조선일보의 기사는 여기.)

아무튼 어제 오늘은 두편의 영화를 보았다. 사실은 네 편쯤 볼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좀 아깝더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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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대로 복고를 선언하신 <고고70>



베트남 반전운동 이후로 총칼과 기타의 정면대결은 꽤나 원형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게 사실이다. 동상처럼 도열해 있는 군인들 사이로 관객들이 달려가면서 총구마다 장미꽃을 꼽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허나 제아무리 이름난 분들이더라도 락커들이 정말로 직접 군인들과 대립하며 공연을 펼친 역사적인 사례는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하기야 쉽사리 실현하기 힘든 판타지였을 것이다. 미친 듯 열광하는 관객들과, 그 뒤로 달려오는 군인들, 자욱한 최류탄 연기, 하지만 끝끝내 마이크를 움켜쥐고 악을 쓰는 가수! 요 영화는 끝까지 바로 그 판타지 하나에 매달리는데, 그게 참 재밌다. 신경썼다는 공연장면이나 노래도 딱히 가수나 배우들이 돋보인다기보다는 그야말로 "미쳐버리는" 관객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점으로 봐서는 아마도 그냥 그 시대에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뭐 이외의 스토리 전개나 연기는 그냥 밋밋한 편이다. 오히려 너무 과장된 면도 없지 않고. 딱히 어떤 노래나 춤사위가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공연장면들이 하나하나 잘 빛나고 있는 영화.

그나저나 군인과 가수의 대결구도는 어디서 유래된 걸까? 플라톤은 시인들을 나라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으니 꽤 역사가 오래된 것도 같은데... 굉장히 단순하게 도식화했을 때 평화적인 에너지와 폭력적인 에너지의 궁극적인 대결 정도로 읽히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는 광기와 이성의 대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래저래 눈여겨 볼 지점이다. 이성은 어떤 식으로든 폭력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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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리따운 도연씨...


일단 하정우 얼굴 크기가 전도연의 두 배다. (...) 음음. 좀 더 짧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지금 이대로도 그냥 군더더기 없이 착한 영화.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간 여자가 빌려준 돈 350만원을 갚으라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다" 는 시놉시스만 읽어봐도 결말의 98%는 예측이 가능한 만큼 감독이나 배우나 찍으면서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을 게다. 전도연 하정우 정도 되는 배우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멋지게 만들어 내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자칫 목적성 없이 마냥 흘러가기 좋은 사랑 이야기에 훌륭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본 설정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게다가 뭐랄까, 사랑에 대해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싶어서 나중에 저런 설정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설정을 심어두고 가지를 붙인 거라면 감독의 이야기 실력도 상당한 편이다. 밋밋한 사랑 이야기에 확실히 속도를 붙여주고 있으니 말이지. 전도연님 눈화장만으로도 많은 부분 용서가 되는 영화. (...) 아, 이 분은 정말 천상 배우다.



뭐 오늘은 이정도. 그나저나 펀드는 언제쯤 사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