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정도 말했던 것 같지만 난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봄이 싫다기보다는 봄의 그 느닷없음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떠나가 버리는 아름다움이 싫다. 특히 우수수 피었다가 갑자기 없어져 버리는 벚꽃이나 미친듯이 發光 하다가 어이없이 뚝뚝 떨어지는 목련 따위. 최악이다.
허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이 4~5년 정도 되었다는 것을 돌이켜 볼 때, 이 감정의 뿌리가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이 아열대 기후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해서 봄날다운 봄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어쨌든 나는 버림받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며 그 대상이 계절 따위라니 더더욱 견딜 수 없는 것 뿐이다. 계절한테는 전화를 걸 수도 없고 같이 맥주나 한잔 할 수도 없으니까.
몇 주 사이에 봄이 왔다. 걸음 닿는 곳은 조금 작아졌지만 그 와중에도 봄향기는 제법 아찔하다. 나는 나 혼자 들떴다가 나 혼자 시들어버릴 걸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사진은 청주. 지난 주에 찍었지만 무심천 벚꽃은 아마 이번 주가 절정일 게다. 날이 조금 흐리고 꽃이 만개하지 않아서 그나마 집에 돌아온 후에도 기분이 괜찮았다. 고로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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