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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흐아암

집에 가서 밀렸던 택배를 받아왔다. 집에 가는 내내 미친 듯 닥쳐오는 졸음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꼭 8비트로 쪼개져서 버스 차창을 두둥탕탕 두들겨댔다. 신나는 비트에 몸을 맡기고 곤히 잠들었다지만 집에 도착하니 더 졸려서 더 잤다. 웬종일 잠만 잤으니 하루가 참 휑뎅그렁하기만 하다. 그러니 내일 출근이 유난히 빠르다 하더라도 오늘 새벽은 적당히 소비해 주는 편이 조금은 공평하지 아니할까? 이딴 식으로 조각잠이 이어져서 수면부족에 시달릴 때면 나에게도 스타크래프트 밴과 매니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요컨대 자동차와 연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엔 나도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아, 만유인력보다 강한 사회화의 힘이시여.

<조직의 발견>과 <가난뱅이의 역습>과 <푸른 항해>를 주문했더니 6월부로 yes24 로얄회원이 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생각없이 돈을 많이 쓰기는 한 모양이다.; 마침 지난달 할부로 긁어버린 에어컨 값이 꾸준히 월급을 깎아먹으면서 이번 달 들어 거의 처음으로 재정적인 위기를 느끼는 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극빈의 길에 들어서는구나, 싶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부터 결심했던 게, 절대로 지난날 겪어왔던 참혹한 가난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젠가 10원이 부족해서 컵라면을 사먹지 못하던 그 겨울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설마) 하지만 역시나 한 번 소비의 달콤한 맛을 본 사람은 시장경제의 미로 속에서 벗어나올 수가 없는 모양이다. 결국엔 나도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아, 만유인력보다 강한 자본주의의 힘이시여.

생각해보면 이상하다strange란 말은 꽤 오랫동안 내 삶의 자양분이었는데. 포기해야 할 날이 오긴 오겠지.  모두들 한 번쯤은 이상하게 살아보는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땐 상상도 못했단 이야기가 만방에 유행어로 널리 퍼지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아, 오늘도 주제없는 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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