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다보면/Diary / Journal

짧게, 영결식

예상대로 절정에 달한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 이 오늘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렇게 뜨거운 땅 한복판에서 차가운 머리를 똑바로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죽어서는 안될 사람이 죽었다. 허나 나는 아직도, 그의 죽음이 죽음이라는 이유때문에 종교가 되어버리는 것은 옳지도 못할 뿐더러 별로 멋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만큼 먼발치부터 바로 어깨 옆까지 정신없이 슬퍼하는 수십만의 사람을 두고도 묵념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늘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허나 그 변화가 결국 자기기만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고작 5년 전 천지가 통채로 개벽할 것만 같던 어떤 날이 끝내 남겼던 교훈들이 너무나 헛되지 않은가.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었다. 다만 이젠 수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몰려나온다고 해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을 뿐이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무엇이 소통이고 무엇이 타협이며 무엇이 배신으로 남게 될 것인지, 아무리 정신없더라도 좀 더 깊고 신중하게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영결식의 장면 대부분에서 나는 그저 관찰자로 남아 있었지만, 딱 두 장면에서는 결국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정에 헌화한 후 권양숙 여사를 붙들고 오열할 때와, 시청 광장에서 양희은씨가 상록수를 불러 주며 노란 풍선이 하늘을 뒤덮던 때였다. 그 짧은 시간의 명백히 탈정치적인 슬픔이 결국엔 오늘 가신 그 사람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당분간 노 전 대통령 관련글은 이걸로 끝이다. 불길한 예감이 있다면 앞으로 한국의 정치판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필수적으로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점, 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란 정말 이럴 때는 너무 착해보여서 퍽이나 당황스럽다.

'살다보면 > Diary / 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아암  (0) 2009.06.04
몇 가지.  (13) 2009.05.31
흠냐  (4) 2009.05.28
즉흥성  (0) 2009.05.17
배고파  (0) 2009.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