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월급을 받고 나니 비로소 연말, 이라는 것이 실감났더랬다. 다음달 월급을 받을 때 쯤이면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명백한 방법으로 스물 여섯이 되어 있을 것이다. 뭔가 말도 안된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대학에 입학했던 2004년을 기점으로 시간이 아닌 세월을 세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인 즉슨 내 나이 스무살 때 (...이런 표현이라니) 내 주변을 꽉 메웠던 어지럽고 황홀하며 수상한 질서와 풍경들을 나는 아직까지도 손에 닿을 듯한 과거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6년이나 지난 일이란다. 이것은 곧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내가 주워섬겨왔던 세월들을 한번만 더 보내고 나면, 나는 서른 살이 된다는 뜻이다. 서른. 이런 식으로, 이십대의 절반을 불살라버리고 나서야 나는 그 종점에 위치한 이 이상한 숫자와 직면해 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하지도 않을 것이고 서른살에서 지구가 멸망하지도 않을 것이니 어쨌든 그 날이 오더라도 나는 살아가고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십대의 끝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흡사 마야인들이 한 유가yuga 의 끝과 태양의 종말을 응시하던 기분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네들이 산 사람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고, 기어코 태양과 달의 제단에 제물로 바칠때, 어제와 같이 빛나고 있던 태양을 이상하게도 위태로운 촛불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그 절박함. 그러니까 이십대의 종말이란 명실상부 내가 상상해 왔던 시간의 종말에 다름아니지만, 이것은 기괴하다는 느낌에 가깝지 무섭다는 느낌에 가깝진 않다.
"나이 먹는 게 무섭다" 는 관용어구를 내 경우에 국한하여 해석하자면 "어울리지 않는다" 는 것이 되겠다. 기표의 기의의 어이없는 균열을 한 치의 의심이나 수정의 여부도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다. 허나 이 불일치는 어찌됐든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다. 이를테면 스무살의 나는 열 다섯의 나와 다른 재능, 다른 취향, 다른 신체상태,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함께한 다른 고민들로 다른 것들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물 다섯의 나는 스무살의 나와 별로 다른 재능도, 다른 취향도, 다른 신체상태도,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다른 고민들도 없고, 그다지 다른 것들을 배우고 있지도 않다. 이건 뭐 "성장" 이란 개념과는 무관하다. 굉장히 다른 정체성을 다른 숫자로 정의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정체성을 다른 숫자로 정의하는 것의 차이점일 뿐이다. 아니아니, 조금 디테일하게 수정하자면 어쨌든 스무 살의 나와 스물 다섯의 나는 그래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스물 한 살의 나와 스물 여섯의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스물 여섯이란 거지? 이건 내가 아닌 것을 지칭하는 것만 같다. 임관하고 나서 "김중(소)위" 란 말들 처음 들었을 때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 말 처음 들었을 때 약간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나처럼 수시로 자기분석을 하는, 초과잉자의식증후군 초기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 들러붙은 정체성이란 건 언제나 너덜거리고 거추장스럽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연말소회치고는 좀 많이 구질구질해진다. 정리하자면 이번 연말은, 기괴하고 무섭다.
(ps. 지난주엔 부대에 인터넷이 끊긴 관계로 주절거림이 쫌 줄었습니당. 속시원하시죠?)
(pps. 그러고보니 이 글은 단순히 "나이먹으니 무서워용ㅠ" 이란 푸념을 코웃음으로 반사하는
저보다 두세살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고나 할까요...)
"나이 먹는 게 무섭다" 는 관용어구를 내 경우에 국한하여 해석하자면 "어울리지 않는다" 는 것이 되겠다. 기표의 기의의 어이없는 균열을 한 치의 의심이나 수정의 여부도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다. 허나 이 불일치는 어찌됐든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다. 이를테면 스무살의 나는 열 다섯의 나와 다른 재능, 다른 취향, 다른 신체상태,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함께한 다른 고민들로 다른 것들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물 다섯의 나는 스무살의 나와 별로 다른 재능도, 다른 취향도, 다른 신체상태도,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다른 고민들도 없고, 그다지 다른 것들을 배우고 있지도 않다. 이건 뭐 "성장" 이란 개념과는 무관하다. 굉장히 다른 정체성을 다른 숫자로 정의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정체성을 다른 숫자로 정의하는 것의 차이점일 뿐이다. 아니아니, 조금 디테일하게 수정하자면 어쨌든 스무 살의 나와 스물 다섯의 나는 그래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스물 한 살의 나와 스물 여섯의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스물 여섯이란 거지? 이건 내가 아닌 것을 지칭하는 것만 같다. 임관하고 나서 "김중(소)위" 란 말들 처음 들었을 때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 말 처음 들었을 때 약간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나처럼 수시로 자기분석을 하는, 초과잉자의식증후군 초기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 들러붙은 정체성이란 건 언제나 너덜거리고 거추장스럽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연말소회치고는 좀 많이 구질구질해진다. 정리하자면 이번 연말은, 기괴하고 무섭다.
(ps. 지난주엔 부대에 인터넷이 끊긴 관계로 주절거림이 쫌 줄었습니당. 속시원하시죠?)
(pps. 그러고보니 이 글은 단순히 "나이먹으니 무서워용ㅠ" 이란 푸념을 코웃음으로 반사하는
저보다 두세살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