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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알고있슴메

별 이유없이 이런 식으로 블로그를 유휴상태로 두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궁금한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속시원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더욱 많은 누군가에게는 별 관심없는 일일 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실제로 "너무나 바빠서" 운영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런 식으로 남겨진 공백이 단순한 허전함을 넘어, 내가 온몸으로 살아온 어떤 세월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지만, 결국 내가 이 곳에 남길 수 있는 말들이란 나의 일상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것들 뿐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들을 머리로 삭히고 혀로 머금어 충분히 "나의 것"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말들만을 내뱉어야 하는 세상의 문턱에 서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결국 더는 숨을 수도 가릴 수도 없는 곳에서 내 안의 말들과 내가 들은 말들과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을 잔인하게 조목조목 난도질 해줄 귀인을 만나야만 한다는 자명한 결론에 도달한다. 어리광을 어리광으로 받아주는 사람들과 유지하는 좋은 관계와, 어리광을 인간적 결함으로 받아들이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이어나가는 위태위태한 줄타기 속에서, 나에게 많은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에야 결국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들도, 그런 것들을 당연한 자세로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어마어마한 각오도, 결국 내가 그들의 그러한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하는, 어쩌면 그런 것을 발돋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불안함 속에서 도래할 수 밖에 없는 어느 지점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그러니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불쾌하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지극히 소년적인 추궁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불쾌한 것에서 도망치는 게 나쁜가? 라고 신지는 되물었더랬다. 모두는 혀를 찼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이루어지는 귀납적 안타까움이 결국엔 어른들의 논리라고, 나는 생각하며, 질식하거나 회피하거나 답답함에 몸부림치지는 않은 채, 다만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뒤집어버리는 것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목적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뭐 조금은 거창하지만 이른바 "진보" 의 시작이라고 불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이런 말들을 타협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나는 그냥 이런저런 말들을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이런 식의 수긍과 침묵이 사람을 악으로 이끄는 유혹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어차피 나를 위해 그렇게 커다란 담론을 소환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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