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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감정

같은 결과가 반복될 줄 알면서도
똑같은 일을 또 행하는 것은 틀림없는 바보짓이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연애문제가 특히나 그렇다.




나의 외부에서 나를 찾아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은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실망만을 선사했다. 계절이 그러했고, 그 계절마다 빼곡했던 각종 사건들이 그러했고, 그 모든 세월에서 이리저리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러므로 나는 여하한 변수들에 그저 심드렁해지는 방법으로 나를 방어하며 간혹 그 모든 심드렁함을 돌파하고 내 감정을 자극하는 설레임들을 저주했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선천적으로,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생겨먹지는 않은 모양이다. 냉소적인 인간이란 세상의 어두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의 밝은면에 대해 어떠한 믿음도 선사받지 못한 사람이 가지는 냉소가 나는 더 무섭다. 전자가 그래도 어떤 면의 에너지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다만 허다한 포기와 내려놓음을 의미할 뿐이다. 허나 포기 없이 생겨날 집착들과 판박이같은 사건들과 감정의 격량은 결국 온몸으로 쐬고 흘려보내야 할 것이기에,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더 적은 기대에서 더 많은 기쁨이 피어난다, 고 아버지는 철도 들기전에 내게 가르쳤다. 친구, 부모, 형제, 가족, 국가, 사회, 연인, 이 모든 것들에게서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고, 그저 모두 다 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그래도 웃을 일이 더 많지 않겠냐, 라고 말한 그 분은 어쩌면 그 가르침에 꼭 들어맞는 사건들만을 일으키고 나를 떠나갔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이 좋고 사람에게 기대하고 사람에 굶주리는 보통사람일 뿐이다.

솔직히 이런 감정들에 휩싸일 때면 나는 지금 당면한 고민보다는 보다 먼 훗날의 일만 걱정될 뿐이다. 그러니까 당장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보다는 앞으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혹은 평생 이렇게 혼자서 굶주린 짐승처럼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만이 것정된다는 뜻이다. 쩝. 그외의 적나라한 유혹에 대한 고민은 그저 사소한 반찬거리일 뿐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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