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난 것들이 찌질대는 것과 잘난 것들이 "척" 하는 것은 자칫 동급으로 보일 정도로 꼴보기 싫을 수 있으나, 어찌됐든 잘난 것들은 잘난 것들인 만큼 우리가 딱히 동감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지들끼리 잘먹고 잘살게 되어 있다. 헌데 이 사회에 만연한 어떤 논리는 자꾸만 우리를 잘난 것들의 세상에 동의하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던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을 한다던가, 서툰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던가, 등등. 이를 굳이 근대나 자본주의나 개발위주 독재시대의 잔재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능력에 따른 성공에 동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분명 문명이란 것이 가진 긍정적 상승효과의 한 축일 수 있으니까. 다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회 전체를 통틀어 잘난 것들은 항상 소수였고, 따라서 우리 역시 궁극적으로 잘난 것들이 될 확률보다는 못난 것들이 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성과 상식을 갖춘 못난 것들이 주장하는 권리라 함은 예상외로 그다지 많지 않다. 한 세기 전 누군가 말했듯이 세상을 뒤엎어서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를 이룩하자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이가 골고루 가난해질 때까지 사회에 끊임없는 하강효과만을 강요하자는 것도 아니며, 그저 기회의 평등과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보장장치를 이룩하자는 것, 천하에 다시없는 못난이라도 적당한 가족을 이루고 먹고 살고 노는 데에 부담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룰 수 없는 소박함" 이 결국엔 그 요체일 뿐이다. 다만 자기 자신은 비록 루저일지라도, 자기를 제하자면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 세상에 자꾸 딴지를 걸고 삐딱한 시선으로 이것저것을 건드리는 데에서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낀다. 당연한 것에서 탈피하기란, 선천적 애정결핍을 앓고 있는 누구누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물론 어려운 일이니만큼,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나와는 다른 것 같다. 출발점이 다르니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 맞는 말이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란 것이 정작 못난 것이 될 확률이 훨씬 높은,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을 뿐이다.
- 다만 그렇게 "긍적적인" 사고방식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 새터에 가서 처음 들었던 말이 "고대 졸업생의 80%가 비정규직이에요..." 가 고작이었던 것처럼, 적어도 피터지게 공부해 봐야 한달에 88만원밖에 못 벌거나 백수가 된다는 식의 레디메이드 루저 인생이 예약된 세상에 태어났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것은, 뭐랄까 이미 그렇게 된 것도 같지만, 사실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이런 인식이 퍼지게 되면 사람들이 분노하고, 분노를 토대로 뭉치고, 사회를 변혁시킬 못난이들의 혁명을 시작할 거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뭐 긍정의 힘을 믿는다던가 밑도끝도 없이 웃고 살자는 식의 말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상승과 달리 하강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막무가내로 닥쳐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모조리 뒤엎어 버리자고만 이야기하는 건, 일차적으로 그 "뒤엎음" 의 우선순위 선정에 일관성이 없어 끝도 없는 분열만을 조장할 뿐더러, 이차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어 정치적으로 힘을 얻기에 기반이 불안하며, 삼차적으로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결과적인 무기력증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세상에 마치 성한 길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건, 못난 것들의 찌질함, 그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그들에게 시대착오적이라던가 촌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건 아마 괜한 소리가 아닐 것이다. 이건 대안을 제시하라거나 이상주의에서 탈출해 현실을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저 여기저기 질질 끌려다니면서 투덜대는 것으론 정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사회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잘난 것들의 프레임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마저 무기력하게 만들 혼란만을 조장할 뿐이다.
- 한겨레21을 읽으면 세상이 지옥같다는 생각이 들고, 월간조선을 읽으면 세상이 소설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적어도 지옥보다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 나라의 못난 것들은 현실감각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좀 더 미학적으로 구분하자면 사실(Fact)적이라고나 할까. 미학적으로 구분되는 현실(Reality)과 사실(Fact)이 인간 심리에서 충돌할 때, 승리하는 것은 늘 현실이다. 인간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 재밌는 통계결과 하나. 흡연자들에게 어떤 자극을 줬을 때 금연에 성공하기 쉬울까? 썩은 폐 사진? 대동맥에서 쮸쮸바처럼 밀려나오는 기름덩어리 동영상? 흡연이 원인이 된, 절친한 지인의 죽음? 이 모든 것들 앞에서 흡연자들은 그저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며 씁쓸함을 달랠 뿐. 조사에 따르면 가깝게 사는 이의 금연, 사회 전반적인 금연분위기, 흡연자는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하는 여론, 그러니까 "누구누구도 끊고 누구누구도 끊고 누구누구도 끊었다 카드라, 늬는 왜 피냐?" 라는 거대한 질문이 닥쳐왔을 때에야 흡연자들은 금연에 성공했다고 한다. 몸에 나쁜 걸 천하가 다 아는 담배를 죽어라 피워대는 이유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흡연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울하거나 정신이 복잡할 때 피면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거; 그러니까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란 것은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고 사실에 충실하지도 못하다는 것. 인간이 충실한 것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에 관련된 일들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은하해방전선>에 나오는 감독의 충고는 정말 명언이라는 거. "뭔지 모르겠으면 그냥 '관계' 란 말만 넣어서 길게 하세요."
- 그나저나 민족의 명절을 목전에 두고 닥쳐온 이 어마어마한 눈이라니......
살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