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저래 모임이 잦다. 피곤하고 질릴만도 한데, 그나마 다들 한번씩 퍽퍽한 삶에 데이고 있는 타이밍이라서 그런지 맨날 보는 얼굴 또 봐서 했던 얘기 또 하는 무용한 짓들을 퍽이나 즐겁게 즐겨주고 있다. 뭔가 감정협동조합이랄까. (아니면 나만 그런가) 어쨌든 좋은 에너지들이 유통되는 느낌. 고마운 일이다.
- 사람을 좋아하지만 살갑게 굴진 못하고, 재밌는 상황을 좋아하지만 농담에는 능하지 못하며, 따뜻한 말들을 좋아하지만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나는 여길 가나 저길 가나, 바닥을 보여주는 순간 그저 실없는 인간밖에는 되질 않는다. 대학 초년생 무렵에 들었던 '자기관리' 에 대한 충고를 되새기며 오늘날 내가 연기하고 있는 어떤 캐릭터 혹은 페르소나를 되짚어보니, 지나간 흑역사들의 향연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여하튼 후회가 많이 되더랬다. 그러니 자신을 새롭게 소개할 곳에 가서는 되도록 말과 웃음과 농담을 많이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뜻이 아니라 밑도끝도 없이 실없는 사람이 되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이딴 식으로 끝없이 바닥으로 임하다 보면 아예 인생이 통채로 바닥에 임하게 될지도 모른다.
- 꿈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상대 후보는 김제동이었다. 나는 김제동에게 투표를 했지만 박근혜의 당선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씁쓸해하지도 않았다. 참고로 경험상 내 꿈은 강력한 反예지력을 가지고 있다. 꿈에 나타난 상황은 무조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로, 박근혜의 상대 후보는 적어도 김제동은 아닐 것이다.
- 한 지인이 몰라도 되는 일들만 꾸역꾸역 밀어담은 잡지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본인들은 스포츠 찌라시와 비견하지만 내가 보기엔 딴지일보가 자꾸 생각나는데... 여하튼 그동안 휙휙 훑어보고 집에 쌓아두기만 했다가 오늘 날을 잡아서 한번 진득히 읽어보았다. 끝없이 킥킥대다가 '1분 30초에서 멈추는 러브레터 DVD' 를 사 가신 남자가 서술된 부분에서는 분명코 폭소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응분의 대가를 받고 판매하는 물건임에도 자꾸 그냥 주는 게, 받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기억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응분의 대가를 나중에 주기도 좀 애매하고, 그냥 그 지인을 향한 평소의 관심과 애정으로 퉁치면 적절치 않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했다.
- 맘에 드는 겨울 코트와 그 겨울 코트에 어울리는 가방을 장만했더니 겨울이 다 가고 있다. 성질난다. 늦기 전에 오늘이라도 외출을 해 볼까 했는데 종일 비가 내렸다. 이 비는 아마도 봄비이리라. 성질난다. 역시 경영자들은 현명하다. 백화점에서 40% 세일을 괜히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명동 롯데백화점에선 곧 죽어도 매장 할인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청주 롯데 영플라자는 무슨 아울렛도 아닌 것이 연중무휴 세일을 실시하고 있는 걸 보아하면 역시나 청주에는 이월상품만 꾸역꾸역 밀려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아님 말고) 내일은 다가올 봄에 입을 자켓을 사러 나가봐야겠다.
- 어머니께서 자꾸 여기저기를 아파하고 계신다. 이것이 한두군데에 집중된 통증이면 진심으로 걱정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보려 노력하겠는데, 그 아픈 부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장육부를 초월하여 이동하고 있으니 이건 무슨 조화라 해야 할지, 아무튼 인간의 몸이란 참으로 신비로울 따름이다. 몸살기가 풀리고 두통이 낫고 체한 것이 내려가고 나니 어깨가 뭉쳐서 쥐가 난 듯 (어깨에 쥐가 나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풀리질 않는다니 내일은 한의원에도 가야 하겠다. 한의원에 가서는 내 만성피로에 대해서도 상담을 좀 해 볼 예정이다. 얼마나 얼마나 더 자야 이 거지같은 피곤이 달아나련지 정말 이젠 지긋지긋하다.
- 형이 집에 다녀갔다. 아무리 내 블로그가 다만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고 보전하는 목적에서 운영되고 있어서, 할 말 못할 말 다 떠드는 곳이긴 하지만 형에 관한 토픽은 그래도 좀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뭐, 사실 알고 있는 것도 없다. 난 비밀이 많은 여자는 몇 번 겪어봤지만 비밀이 많은 남자는 겪어본 적이 많질 않아서 솔직히 좀 난감하다. 경험상 두 부류의 인간이 갖는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의 경우 본인이 가진 비밀이 비밀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인 반면, 후자의 경우 본인이 가진 비밀이 정말 어어어어어어-ㅁ청난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란 점이다.
- 아, 우리 형이 그렇단 뜻은 아니고, 나는 어쩌면 그냥 형과 놀지 못해서 짜증이 났을 뿐이다. 내가 한가하면 형이 바쁘고 형이 한가하면 내가 바쁜, 이 패턴은 아마도 형이 중학교에 가는 순간부터 우리 형제를 사로잡은 불가사의한 운명의 힘이었다. 이를테면 내게 이성이 피어날 초등학생 고학년때 형은 중-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갔고, 형이 기숙사에서 나오자 나는 고 3이었으며, 내가 대학교에 가자 형은 군대에 갔고, 형이 제대하자 내가 군대에 갔는데, 내가 제대할 때가 되자 형은 이제 비밀이 많은 남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좀 색다른 의미에서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가 부럽기도 하다.
- 간만의 휴가가 맘을 좀 정화시키는 것 같긴 하다. 오늘은 빅뱅 컴백쇼나 보며 일찍(?) 자야겠다.
- 얼마나 얼마나 더 자야 / 이 지옥같은 피곤 이 거지같은 졸음 / 계속 자야 개운하게 일어나겠니...
살다보면/Diary /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