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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밤, 글

- 누구나 밤이 깊으면 조금씩 감상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그 상황에서 글을 남기는 건 명백히 부끄러운 일이다. 말실수를 하거나 노래를 고래고래 지르는 버릇이 있다면 차라리 기록으로 남아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지는 않을텐데. 그래서 그때의 나보다 블로그 쓰는 버릇이 조금은 덜 부끄러워졌냐, 하면 어찌됐든 그건 또 아닐 것이다. 한때를 풍미하고 지나간 감정들이 먼 훗날까지 진지하게 느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하지만 오늘날 나를 정말 고민하게 하는 건 그 시절의 기록들이 감정적으로는 부끄러웠을망정 표현상으로는 조금 더 풍성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대충 살펴보건데 적어도 2007년까지의 나는 시나 (음정없는) 노래가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예민했던 것 같다. 뭐 그 이후 만 3년간 나를 둘러싼 많은 환경이 변하긴 했지만 정작 나는 정신적으로 별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앞으로 만 3년간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하겠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참 인생이 길긴 길다. (이 이야기를 21살때부터 했었다. 조금은 다른 맥락으로)

- 뻔한 얘기지만 역시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의 변화를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세월동안 내가 변한 만큼 남들도 변했을텐데, 한마디로 그 변화를 짚어낼 수 없는 걸 보면 나는 언제나 혼자라고 바락바락 우겨왔지만 역시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오류를 인정한다. 한번 만난 사람은 금방 소원해진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끈덕지게 이어지고 무한할 것 같다가도 허무하게 가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연은 사람의 목숨을 닮았다. 그러니 누구나 내일 당장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내일 당장 죽을 것을 걱정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걸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알 수 없는 일에는 안달내기 이전에 역시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괜한 후회가 없으니까.

- 절연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몸상태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물론 홍삼과 비타민제를 비롯한 일련의 약품들이 알 수 없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 날이 좀 풀려서 방에도 물이 나오게 되면; 어쩌면 정말 발전적인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내 무기력증에 대해 각종 정서적 이유를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균형한 영양섭취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운동부족과 과도한 흡연으로 인한 수면부족 및 체력저하" 요컨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이라고나...

- 그리하여 나는 좀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교회라도 열심히 다니는 것처럼 말이지. 이게 아주 농담인 건 아닌데 생활습관 교정과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신앙을 선택하는 것은 별로 옳은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제외해 놓은 상태다. 흠, 그런데 보통들 그 목적으로 다니는 건가? 신앙에 대해선 별 감각이 없어서 솔직히 모르겠다. 한국의 그 많은 신자들이 정말 다 신실한 믿음으로 교회에 나가는 건지... (사실 어머니가 다니는 절에 시주하는 금액 액수를 보고 상당히 현실적인 거부감이 든 탓도 있다; 아니 누구 먹으라고 쌀 한 말을 그 가격에 사서 바치는 거냐능... 경제활동에서 종교인들이 생산하는 재화는 무엇이냐능... 그럼 세금은 어찌...)

- 어쨌거나 당장 목전에 닥친 일들에선 점점 의미를 찾을 수 없어지고, 그 일을 좀 열심히 하라는 사람들의 푸쉬도 점점 약해지는 탓에, 요즈음의 나는 매일매일 한층 적극적으로 놀고자 하고 있다. 뭐 어디 적혀있는 건 아니지만 3월부터 나몰라라 해버리는 건 좀 무책임한 일일 수 있겠고, 4월 중순 정도부터는 팍 놓아버려도 괜찮지 않겠나... 싶은데, 이런 외딴 곳의 장교생활이란 후임자/대행자가 없는 일을 맡아보는 경우가 허다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형만 해도 나 정도부터는 거의 모든 일을 놓았다 하더만 나는 왜 점점 일이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거지...

-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이유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11시가 넘어서 깨어났기 때문. (뭔가 앞의 언급과 맞지 않는 생활패턴) ...노래나 듣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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