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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간만에 일기

-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 디아블로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5만 5천원이나 투자한 것 치고는 좀 지나치게 빨리 빠져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따지고 보면 엑박용 페이블이나 위닝 같은 타이틀도 6만 얼마씩 갔으니까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 여론은 대체로 이 게임의 지나치게 빠른 컨텐츠 소모속도 (거기에 '불지옥' 의 비현실적인 난이도) 를 예로 들어 전반적인 완성도에 트집을 잡던데,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패키지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적절한 속도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별 거 아닌 듯 하면서 이상하게 게이머를 몰입하게 만드는, 블리자드 특유의 힘도 여전하다. 그 결과로 오늘도 수만명의 게이머들이 파밍을 위한 파밍을 하며 저 극악한 불지옥 난이도를 헤매고 있지 않은가?

 

- 디아블로에게서 벗어난 기념으로 오늘부터 조조영화 나들이를 시작. 일단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봤고 내일은 <돈의 맛> 혹은 <MIB3>를 볼 생각이다. 너무 대중영화 말고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청주엔 극장이 CGV밖에 없다고... 어쨌거나 올여름은 깜놀거미인간, 프로메테우스, 흑기사돋네같은 굵직한 헐리우드 히어로/SF물 사이사이에 도둑들이나 연가시 등등 깨알같은 한국영화들도 촘촘히 숨어있어서, 볼 영화는 비교적 풍부할 예정. 음... 오늘 아침 극장에는 아줌마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마침 이 영화의 유머코드가 상당부분 아줌마스러운 것들인지라... 어쩐지 깔깔대며 웃기가 저어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매우 즐거웠다. 무척 잘 만든 영화다. 헌데 내 기준으론 편집이 좀 정신없는 편이었고, 게다가 쪼금만 짧았으면 더더욱 좋았을 뻔 했다는 느낌. 그건 그렇다 치고 대략 <범죄와의 전쟁> 이후로 최근 한국영화들 평균 퀄리티가 눈에 띄게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 6월 1일부터 수영강습을 받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건 아니고... 원래 작년 여름에도 맘에는 두고 있었는데 기타교습이랑 토익학원에 치여서 후순위로 밀려놨던 것 뿐. 수영장에 들러서 단큐에 카드를 긁고 시설을 기웃거리면서 생각해 보니... 운동을 배우기 위해 돈을 지불한 게 난생 처음인 것 같은 느낌?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다; 일단은 한달 정도만 배워볼 생각인데, 꼴랑 한달 배워서 통통통통 발차기 말고 뭘 더 하겠나 싶어서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게다가 수영복이며 수영모자까지 장만했더니 이게 거의 한 달 수강료에 육박한다 (...) 결국 한달만 하고 관두기엔 뭔가 아깝다는 것인데, 여하튼 여러모로 비효율적인, 인생.

 

- 수영복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어쩐지 tvN 드라마 <아이러브 이태리>를 찾아보게 됐다. (...주인공이 수영선수라 검색에 잡히더라는;) 마침 어제가 2회차 방송이었으니 검색 타이밍이 환상이었다고나. 이른바 '영혼교체' 컨셉은 굉장히 내 취향인지라 본방사수하며 즐겁게 지켜봤는데, 음, 정말 요즘 케이블 드라마 퀄리티... 만만치가 않다. 옥탑방 왕세자가 한창 인기일 때 tvN 에서 <인현왕후의 남자> 라는 유사품스러운 드라마가 오픈하길래 몇 화 찾아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심지어 이 드라마는 옥탑방왕세자보다 더 나은 구석도 많다), <...이태리>가 아주 종지부를 찍는 듯. 물론 그렇고 그런 로코물 퀄리티가 대단해 봐야 엄청나게 대단할 것도 없겠지만; 어쩌면 '케이블 채널' 이란 매체적 특징이 그 한계에 괜찮은 돌파구가 되어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고. 공중파에서 불가능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 혹여 본방을 놓치더라도, 재방송을 수시로 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

 

- 아, 뭔가 즐겁고도 꽉 찬 인생을 사는 것처럼 주절거리고는 있지만 요즘 내 일상은 좌절과 우울, 불안과 짜증, 그리고 많은 양의 무료함과 무기력으로만 가득차 있다. 희망도 없고 돈도 없고 실력도 없고 의지도 없고 끈기도 없고 친구도 없다... 라고 쓰고 싶지만 그런 것 말고도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냥 관둔 것 뿐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라는 것도 결국엔 강조와 의도의 문제일 것인데, 나에겐 이렇게도 무수한 부재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콕 찝어낼 자격도 이유도 없다. 그런 식으로 내 일상을 왜곡해서 특정 방향을 향해 좌절하고 위로받고 싶지도 않다. 뭐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런 식의 나약함이 잘도 통하는 걸 보면 결국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든...

 

- 우울타. 글을 쓰면 우울해진다. 정말인지 불필요한 일이다. 일기를 써도 논작을 해도 트윗을 날려도, 심지어 자소서를 써도 우울해진다. 내가 이래서 절필을 생각한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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