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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무엇때문에

다만 침전하는 것인가

 

 

쩜 쩜 쩜

 

 

오늘 낮에 수영을 하고 길거리로 나왔는데

심지어 방금 수영을 하고 나왔는데도 너무 더워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몇 분이

정말 미치도록 더워서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는 흐려지고

혈압 탓인지 가벼운 이명耳鳴 까지 들리는데

이건 뭐 사지에 힘이 풀리고 아무 데나 가서 털썩

허허허 군대 훈련 받을때나 것두 딱 한번 있었던 일인데

전문용어로 블랙-아웃

그런데 조금은 화이트아웃 같은 기분

먼 발치에서 코앞으로 차들이 붕붕 달리고

지평선 너머로 돌아가는 버스들이 택시들이

참 어쩌면 다들 뭐 그리 바쁘게들 살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어서 말이지

외로웠고, 짜증도 났고

그러다가 허탈해졌고

요망한 육신같으니 비척비척대도 쉬이 앓지는 않지

조금 앉아있으니 금방 괜찮아져서

노래나 듣고 싶어졌는데

때마침 이어폰도 고장나 버려서

더위를 먹을 때 먹더라도 노래는 듣다가 먹어야겠다고

그러니 그걸 사겠다고 헉헉대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자니

요새는 커널형이 대세인가봐 일반형은 팔지도 않는데

육천구백원 짜리를 사자니 좀 아닌 거 같고

사만사천원 짜리를 사자니 그건 더욱 아닌 거 같고

뭐 이런 고민도 고민이라고 하고 자빠졌는지 그것도 아닌 거 같고

버스타고 걷고 하이마트를 찾아 두 시간을 헤매서

결국 사긴 샀는데

그러고보니 하루 웬종일 나한테 말 걸던 사람이라곤

하이마트 입구에서 빨간 띠 두르고 자동문 문 열어주던

직원 뿐이구나

그것도 남자직원이구나

싶어서

내가 지금 이 길거리에서 미친 척 소리라도 지르면

누가 아는 척을 해 줄까

아니면 옷 벗고 춤이라도 추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할까

다행히 어느 쪽이든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왜 그런가 싶었더니 그게 뭔 소용인가 싶었던 거지

아주 쉽게 그냥 아 외로워, 라고 발랄하게 말해보면 좋을텐데

그 씨 외롭다는 말이 너무 싸구려라서

그런 것도 별로 하고 싶지가 않은데

세상엔 남자친구 있는데 외롭다는 사람

여자친구 있는데 외롭다는 사람

그냥 친구 있는데 외롭다는 사람

군중 속에 있어도 외롭다는 사람

엄마랑 사는데 외롭다는 사람

미친 씨... 여하튼 외롭다는 인간 천지라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해버리거나

내가 다행이 어른인지라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으니 

한달, 아니 두달 후에 멸망해버리거나

아니면 내가 죽는 수밖에 없겠구나

정말 그렇겠구나

이렇게 당연할수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롯데리아를 스치다 삼천오백원짜리 팥빙수가 문득 보여서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저건 먹고 죽어야겠다 근데

영 오늘 죽을 것 같아서 뭐 절실한 맘으로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연유를 퍼먹고

팥을 퍼먹고

떡을 퍼먹고

얼음을 퍼먹고...

그러다보니 대강 해가 어스름 지고

몸은 떨려오고

나는 아직도 멍했는데 뭐

집까지 남은 거리는 이키로, 여전히

아는 사람은 없고

알게 될 사람도 없고

연락오는 사람도 없고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일상 따위

너 없어도 너 할일에 투입될 대체자들이

감정노동자들이 육체노동자들이 정신노동자들이

천재들이 노력파들이 행운아들이 명랑한 이들이

줄을 섰는데 하늘에서 땅끝까지 꽉꽉 차고 모자라서

또 자라나고 또 배우고 또 익히고 또 고뇌하다 또 졸업하고... 있는데

대체 나는 왜 무엇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영영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요새 나는 '님같은 거 아무짝에도 필요없다능ㅋ' 뭐 이런 소리를

자꾸자꾸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또 아주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뻔히 아는지라

어떻게든 하나라도 붙잡아 보려고 아등바등대는데

그러는데

 

 

쩜 쩜 쩜

 

 

사실 남의 고통따위 깊이 알아 무엇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걸 궁금해한다고

그런 사람 없어요 아무래도 아무도

아무래도

 

 

 

 

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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