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일이란 게 시끄러운 풀장의 너울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가 덮치고 정리된 다음에 다음 놈이 덮치면 좋겠지만 그딴 순서나 리듬감 따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앞선 일과 뒤선 일이 엉키고 꼬여서 한참을 버둥거리다 보면 해결될 것은 되어 있고 정리될 것은 자연스레 정리가 되는데, 사실 이런 난장판 와중에 바라는 대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일이라곤 항상 하나도 없는 것이고... 그 결정체가 나라는 인간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삶이 위대하다는 수사는 이 거대한 불규칙과 혼돈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진심으로 섬길 줄 아는 이들이 만들어 낸 말일 것이다.
- 이 주에 한 번 서울을 가는데, 가서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서두 다녀 오고 나면 일상이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보다는, 기절할 듯 삭막한 일상에 그나마 작은 이벤트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다행이다. 그러니 사소한 모임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 일상도 좀 더 풍족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어제 지하철에서 본 영상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오늘 나 변한 거 없어?" 라는 말 대신 "오늘 나 머리잘랐는데/염색했는데 이전보다 나아보여?" 라는 수사를 택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상대에 대한 기대를 인질삼아 수수께끼를 내고 스무고개를 넘지 말자는 취지였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주고 기대함직한 기대를 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누군가가 항상 내 기대 만큼의/기대 이상의 애정을 베풀어주길 바라는 건, 그러니까 수사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기대' 를 품는 것일 텐데... 사실 얼마나 어른스럽지 못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서울 간 아들의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고 서로 전화거는 날과 시간을 좀 정해 두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뚜렷한 약속이 있은 후에야 미안할 사람도 제대로 미안할 수 있고, 기다릴 사람도 제대로 기다릴 수 있고, 무엇보다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심리적 영역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야박하거나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도 이런 걸 일컬어 '길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기대 이상의 기대가 충족되리라는 기대, 참 많은 종류의 판타지를 접어둬도 우리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우리 생각만큼 나약하지가 않다.
- 박근혜씨는 오늘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이었다고 말했다. 난 이 사람한테 왜 자꾸 이런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말 박정희와 5.16이 박근혜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 생각엔 절대 그렇지가 않다. 박근혜와 박정희는 애초에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연계는 심지어 그녀의 의지와도 무관하다. 아버지를 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정치를 시작한 순간부터 박근혜는 계-속 박정희를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박근혜가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하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던 파렴치한 쿠데타였다고 하던 간에, 이런 건 이미 아주아주 옛날에 논의가 끝나버린, 결론이 닫힌 논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박근혜를 박정희의 분신으로 보고 대선에 임하는 한, 50%에 육박하는 박근혜의 지지율에는 생채기 하나 낼 수가 없을 것이다. 범 야권까지 포함한 '非박' 진영의 정치적 자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논의가 제일 잘 통하는 공간이 트위터랑 페이스북이다. 요컨대 RT랑 '좋아요' 는 많이 받을 거란 뜻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겠지.
- 사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구조는 공개게시판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선별적인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라, 내 타임라인에서 흥하는 어떤 여론이 옆동네 아무개에의 타임라인에서도 흥하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 실질적 활동 유저의 몇백배에 달하는 '눈팅' 팔랑귀 유저들을 끌고 갈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하는 공개게시판의 여론몰이 효과가 그대로 적용되질 못한다. 이는 정치적인 '파급력' 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별로 이롭지 못하다. 그보다는 흩어진 지지층을 '결집' 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지형에 지지층 결집이 필요한가?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집될 사람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미 충분히 결집되어 있다. 지금은 설득이 필요한 시기이다. 보통 이런 시도를 일컬어 소통이라고 한다.
- 불행이든 무기력이든, 마지막 한 단계를 넘지 못하고 엎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자꾸 든다. 그리고 만일 지금 넘어서지 못한다면, 이 사실이 아마도 내 평생을 함께 할 '한' 이 되어버릴 거라는 느낌도 자꾸자꾸 든다. 이런 한이 나 하나만 괴롭힌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내 주변의 누군가, 아마도 자식이나 배우자를 괴롭힐 거라는 느낌도 자꾸자꾸 든다.
- 성인成人 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임의적인 기준을 통해 '미완성된 인간' 과 '완성된 인간' 을 갈라놓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가.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되는 건 아닐테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마 죽을 때까지 완성이란 경지의 발끝에도 다다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의 기준이 '굳이'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했다. 미성년자 인권보장과 미성년자 보호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꼭 필요한 논의가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어떤 종류의 보호는 모종의 권리를 박탈함으로서 이뤄지기도 하니까. 이를테면 을사보호조약이라던가...(...예가 부적절하다)
'살다보면 > Diary / 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위와 올림픽과 기타등등 (0) | 2012.08.06 |
---|---|
또 일기 (0) | 2012.07.19 |
무엇때문에 (4) | 2012.07.10 |
장소에 대한 불평 + 일상계획 (0) | 2012.07.04 |
간만에 일기 (0) | 2012.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