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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7월 14일 - 비오는 날


- 나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차렸고 정신을 차린 이후로는 그러고보면 나름 바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두텁고 긴 장마 앞에서 뽀송뽀송한 감성을 그럭저럭 유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정신이란 어이없을 정도로 나약한 것이라, 별것도 아닌 볕을 고작 며칠 정도 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흡사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혼자 웃어도 보지만서두, 글쎄 어쩌면 이런 확신이 정말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고. 습기찬 허공이 거미줄처럼 품을 벌려 온갖 일들을 묶어버리는 환상 속에서 많은 것들에 답답해하며,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일들에 관심을 잃어가며 매일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딱히 만족스러울 것이라곤 없는 일상일 뿐이다.

- 잔인한 4월에 있었던 모종의 사건을 지나 석 달 가까운 시간을 건너오면서 모종의 쓸쓸한 에너지가 자꾸만 증폭되는 것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 집에는 아직 너무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너무나도 시끄러운 사건들과 함께 돌아오기 힘든 길로 떠나버린 탓이다. 한없이 사소한 물건들, 책, 공책, 사진, 옷가지, 잃어버린 신분증과 카드같은 것들. 요즘 우리집과, 장마철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자꾸만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이 떠올라서 심장 깊숙한 곳까지, 온몸이 섬뜩해진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집과 함께 모든 것을 리셋해 버리고 싶다. 그 소설 속의 아이가 끝내 집을 버리고 표류해 갔듯이. 감내해야만 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버겁다. 하루종일 그 무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게 힘들다. 아무에게도 이 무게를 떠넘길 수 없다는 게, 심지어 나눌 사람도 없다는 게 무섭다. 심지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나 혼자 그걸 버티는 게 아니라 어머니 몫까지 떠안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달을 때마다, 짜증난다. 하지만 가장 불안한 것은 내가 이 모든 중압감을 이겨내고 "잘" 살 수 있느냐, 하는 원초적인 문제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나는 별로 잘 살아볼 생각이 아니었다. 심지어 올해 4월 이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와서...

- 하지만 우리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할만큼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가면서 버텨내는 삶은 너무 구차하다. 나는 그냥 날아가는 힘으로 날아가고, 살아가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맘은 그렇게 먹고 있다.

- 이런 글 그만 써야 되는데. 흐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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