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시간은 오후 다섯시. 나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고 밥먹는 시간을 제하고는 그다지 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까지 계획했던 일의 반도 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나는 나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거나 하루의 길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것인가? 아니, 그보다 내가 왜 놀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거지? 고지전도 봐야하고 퀵도 봐야 하는데... 퍼스트 어벤져도 곧 개봉이고 그루폰에서 사 둔 cgv 쿠폰도 놀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으며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도대체 왜이리 실속없이 바쁜 것인가?
- 나는 기타를 다시 배우려 할 때마다 이전에 배웠던 것들은 싸그리 까먹었음에 틀림없다고 스스로를 탓하곤 했는데, 이번에 진도 나가는 속도를 보니 역시 몸으로 배운 건 그리 쉽게 까먹지 않는 모양이다. 순식간에 예전 진도를 따라잡고 수월히 한발자국 앞으로 오는 것 까진 문제가 없었으니 거기까진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 다시 올 것이 왔다. 뭐 맘먹고 다시 배우기 시작한지 보름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나는 이 악기가 그렇게나 대중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도무지. 손목을 꼬고 손 끝을 곤두세워가며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손가락 모션들을 낑낑대며 익히고 보면 이 모든 것들이 고작 (왕)기초에 속할 뿐이라는 선언에 심신이 통채로 허탈해진달까.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순수한 오기로 기타를 치고 있는 것 같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해보자. (라지만 맘먹고 배운지 한달도 안됐잖아)
- 비슷한 기분을 영어 앞에서도 느낀다. 아니, 영어가 아니라 토익이지. 사실 이런 ordinary 한 공부는 거의 십년만에 잡아보는지라 아직까지도 도통 적응이 안되는게 본질적인 문젠데... 어쨌거나 학원 시간 덕택에 아침 기상 시간을 무를 수가 없으니 조금은 짜증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달까. (사실 이런 효과를 노린 거기도 하지만) 역시나 죽어라고 단어와 문법을 외고 보면 이 모든 것이 토익을 위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야속한 선언이 나를 한없이 슬프게 만들곤 한다;; "고득점" 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기본으로 알아야 하는 거라니 이건 뭐 F코드 같은 거잖아... 약삭빠른 세상 사람들은 내가 휘적휘적 허송세월할때 다들 이런 걸 하고 계셨구나, 싶기도 하고... 그보다 남들이 이런걸 할 때 나도 뭔가 하긴 했을텐데 그게 뭘까 싶기도 하고...
- 운동은 한 삼주간 매일 두시간씩 했으니 뭔가 효과가 나타날 때도 됐는데, 딱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나는 어쩌면 "근육이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다-_- 아니 뭐 중량을 서서히 올려가며 어쩌구 하라는데, 몇번만 들락놓을락 하고 나면 사지에 힘이 다 빠져버리는 걸 어쩌란 거냐. 그나마 처음 이주간 나를 죽일 것만 같았던 근육통은 이제 사라졌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 런닝머신 뛰다보니 금연 효과는 확실히 느낌이 오더라. 수능 끝나고 하루 30분씩 뛰던 시절의 아련한 활력이 돌아온 기분이라고나.
- 이외에 요새는 마블 코믹스를 찾아보는 일에 푹 빠져서... 정상적인 루트라면 한국에서 영위하기 힘든 취미생활이지만, 앱스토어에 마블 코믹스 어플이 발매돼서 얘기가 달라졌다.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완전하진 않은 것 같지만 심지어 60년대 issue까지(!!) 구할 수가 있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언어의 장벽인데, 일본 애니 보다가 일어 마스터했다는 사람처럼 나도 마블 코믹스 찾아보다가 영어를 마스터하게 된다면 오죽 좋을까나. 하지만 그러기엔 이슈 하나 가격이 너무 비싸다. 2달러씩 하는 거걸 대여섯권씩 사야 단행본 하나 분량이 되는 식이니... 정발된 한국어판이랑 별 차이도 안나고. 해서 신중하게 이슈를 고르는 것이 문제인데, 미국 코믹북 시장은 완전 개판으로 갖가지 정식 시리즈들이 난무하는지라-_- 이게 또 만만치가 않다. 스파이더맨 하나만 해도 그냥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프렌들리 네이버후드 스파이더맨, 센세이셔널 스파이더맨, 얼티밋 스파이더맨... 이 다 다른 시리즈면서 또 죄다 읽어야 스토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는(=진정한 덕후의 경지에 오르는) 식. 물론 한두개만 읽어도 그냥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잖아! 뭐랄까 성경공부하는데 마태복음만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 그리하여 갖가지 "꾸준한" 것들 사이에서 조금은 어리둥절한 채 비와 태양(둘 다 가수 이름이네;) 으로 점철된 7월이 가고 있다는 것. 어쨌거나 할 일이 없는 건 아닌데 대부분의 일상에 큰 흥미가 없다보니 대체로 좀 많이 심심하다. 음, 사실 나는 남들한테 칭찬받거나 남들에게 잘난척하는 일 말고는 대체로 흥미가 없는 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같잖은' 비교우위가 있는 경쟁시장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누구나 칭찬받으면서 살고 싶겠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 글은 안쓰냐고? 안쓴다, 요새는. 오늘도 글쓰겠다고 나와서 이러고 있는데.
'살다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적인 글 (0) | 2011.12.04 |
---|---|
잠시 (0) | 2011.12.01 |
7월 14일 - 비오는 날 (0) | 2011.07.15 |
해방 1주차 : 하고 있는 것들 (0) | 2011.07.11 |
그냥 (0) | 2011.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