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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치적인 글


내가 인식하는 나꼼수는 정확히 딴지일보의 라디오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뭐 재밌으니 업데이트 될 때마다 듣는 편이긴 하지만 나꼼수가 대안언론이니 세상의 희망이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은 그저 이 사회의 언론과 예능이 얼마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서글프게 증명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UV가 진짜로 뮤지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나꼼수는 심지어 언론상도 받았다!) 보다 쉽게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나꼼수가 정치를 너무 쉽게 예능화하여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과정에서 이 시대의 의미있는 정치적 각성을 "상식있는 자들이 뭉쳐서 가카와 한나라당 및 그 떨거지를 축출하는" 과업 정도로 요약해 버린다는 것이 되겠다. 물론 나꼼수의 애초 의도가 이런 건 아니겠지만, 이들이 만든 정치에 대한 쉬운 접근법이라 함은 결국 니 편과 내 편을 가르고 정치적 투쟁과 의사표현을 일종의 종교행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으니까, 이 귀결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생활 스트레스의 근본이 정치라는 것을 깨달으라" 는 총수의 멘트는 참 기묘하게 종교적으로 들린다. 생활 스트레스의 근본이 왜 죄다 정치냐? 아닐 수도 있는 거지. 근데 그 모든 책임을 정치로 넘겨버리면 불필요한 갈등이 조장되고 싸움이 생긴다. 이게 선거라는 정치적 시기와 겹쳐지게 되면 정말 불필요하게, 멍청할 정도로 과열되어 버린다. 실제로 총선이 다가오는 요즘...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일에서 편을 가르고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상대방을 단죄한다. 방송인의 종편 출연 여부를 놓고 펼쳐지는 일련의 비난질들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좀 발빠른 사람들은 이런 징후를 심각하게 염려한다. 이른바 (너무나 뻔한) 파시즘의 도래를 염려하는 것인데... 글쎄, 난 아직 트위터 너머의 세상에는 상식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게나 쉽게 선동될 만큼 이 시대의 대중이 멍청한 줄 아느냐? 는 반론에 수긍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러고 싶은 것에 가까운 건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나도 나꼼수의 스탠스에 동의하긴 동의한다. 이 나라가 우선 직면한 정치적 과제는 가카와 그 일당의 축출이 될 것이다. 이 나라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둔 적이 없는 나라라면, 일단 거기까지 동의해 주는 걸로 충분할런지도 모른다. 헌데 노통은 헌정 역사상 임기중에 가장 거나하게 욕을 먹은 대통령으로 기록된 바가 있다. 그걸 똑똑히 본 사람들이, 어쩌면 그 때 노통을 함께 욕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노통의 모든 것을 미화하면서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구는 이유가 대체 뭘까? 현 추세로 간다면 차기 야권 대권주자는 "안철수의 지원을 받는 문재인" 이 될 확률이 제일 높고 승리할 확률도 제법 높다. 이 결과가 정말 만족할만 한가?... 어쨌거나 나오면 뽑긴 하겠지만.

노무현 이래로 이 나라의 민심은 항시 "새로운 것" 을 갈망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기존의 정치판과는 정말 관계 없어보이는 사람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2002년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신인이었고 이명박은 2007년 당시 "나는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어쨌건 경제는 살리겠다" 는 말만 꾸준히 반복한 끝에 당선됐다. (이 양반의 당선은 여권에 이렇다할 대항마가 없었던 탓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2007년부터 꾸준히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씨는 지난 5년간 정치권에서 뭘 한건지 도무지 생각나는 게 없으며, 이제는 서울시장 나가볼까? 란 말만 잠깐 남기고 꾸준히 함구하고 있는 안철수씨가 유력한 대권주자라고 한다. 기호 1번과 11번이 맞붙어서 11번이 이긴 10.26 서울시장 보선은 또 어떤가- 2번부터 10번까지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작금의 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일단 기성 정치인은 싫다 이건데, 이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할 것 까지야 없지만 좀 심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간혹 든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안철수 지지층은 박근혜 지지층보다 훨씬 더 비합리적이라고 하겠다. 비합리적으로 모인 민심은 또 비합리적으로 흩어지게 마련이니, 사실 나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지형에는 어떤 정치서적보다 프레이저의 <황금의 가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뭐 이건 딴소리고.

사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자꾸 정치적으로 공격받는다는 사실과 이에 연류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안위를 염려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른바, '정치과잉'. 이 상황 말고 나머지는 대부분 다가올 몇 번의 투표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요컨대, 정치는 웃겨지기에 앞서 좀 더 편안해져야 한다. 정치적 의견을 말하는 것이 '위험한 행위' 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위대한 투쟁' 이라는 생각도 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그러니까 '당연한 것' 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SNS라는 요물인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의사소통 시스템이란 것이 구조적으로 "듣고 싶은 말만" 반복적으로 듣고 자발적으로 퍼트리게끔 짜여져 있는 탓이다. 이게 다양성이 좀 보장된 사회에서는 좀 더 그럴싸하게 짜여져서 이른바 "소통" 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흑백논리가 만연한 곳에서는 그저 이쪽은 이쪽끼리, 저쪽은 저쪽끼리 뭉쳐서 서로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단합을 다지는 역할을 할 뿐이다. (듣기 싫으면 언팔해!... 란 말도 있듯이. 어떤 면에서 트위터는 소통과 화해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편가름과 대결을 위한 도구지.) 정보소통 속도가 어마어마한 만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합"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대중이 고민없이 단합하게 되면 그 결과는 무시무시하기 마련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난 아직 세상에는 상식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쓰는 건, 그냥 조금 답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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