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를 마무리하며, 정말 시간낭비했다는 기분이 강렬하게 드는 한 해이지만... 기분과는 별개로 올해 나는 오래도록 꿈꿔왔던 인생의 小 목표들을 몇가지 이루었다. 금연, 전역, 매일 운동, 기타 배우기, 유럽 여행. 허나 올 한해에 대한 이런 방식의 서술은 MB정권이 세계적 금융위기의 파고를 훌륭히 이겨내고 대한민국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데에 성공했다... 는 서술과 별다를 것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로 근본문제야 어찌됐건 겉보기에 효율적인 인생이 되긴 했다, 정도로 써야 하나. 그 결과 나는 한층 더 허탈해지고 있지만.
- 대외적으로는 올 4월 무렵에 있었던 끔찍한 소동과 9월의 유럽여행이 올 한해를 장식한 거대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외에는, 뭐 락페도 안갔고 야유회도 안갔고 국내여행도 간 적이 없으니 이렇다할 추억이 될 이벤트도 없고... 그러니 연말에 뭔가 후련하지가 못하고 이렇게나 심심한 것도 같다 -.-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이 촌구석에 박혀있는 한 앞으로도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묘연하다는 점... 어찌됐건 사람을 만나야 뭐라도 하겠는데 도대체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놀라운 일이다 진짜...
- 1월부터 6월까지의 무수한 짜증들은 정말 놀랍게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블로그를 뒤져보면 두통을 유발할 정도로 갖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기도 한데, 물론 그 때의 스트레스 목록중에는 가까운 미래에 이 모든 스트레스가 무의미해질 거란 점도 들어가 있었지만서두, 정녕 이렇게나 까맣게 잊어버릴줄이야. 비록 전역 6개월이 지난 지금의 기분은 전역을 한 건지, 안 한건지 별로 달라진 것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살고 있지만... 어쩌면 이런 놀라운 무던함은 정신적 외상에 대한 심리적 방어기제도 진짜 작용을 한 것 같다. 말하자면 진짜 정말 진심으로 잊고, 싶다는 것이지. 정말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를테면 슈퍼에고의 문제인 것이다;
- 나에게 2011년을 마무리하는 기분은 이를테면,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상상력의 한계라는 표현을 했다. 어쩌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지점 이상의 인생을 그려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제도권' 에 속한 모든 교육과 의무복무 및 먼 곳으로의 여행 한 번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는 스물 일곱의 나. 글쎄 이 다음엔 뭐가 와야 하는 거지.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아마 나는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고 더 이상의 이야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도 없고 고로 더 잘 할 자신도 없으니까. 그런데, 세상은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가고만 있다. 나는 앞날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그려놓지 못한 채로 질질 끌려가고, 사실 질질 끌려가기라기라도 하면 다행이련만, 그저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화가 나거나 좌절하게 되는 게 아니라 사실 좀 황당하다. 더 이상 뭘 하라는 건데? 여기서 끝이라니까?... 어쩌면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2012 종말론자인지도 모르겠다.
- 어쨌거나 오늘이 또 얼어붙어서, 어제가 되었다. 나는 보다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할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새해가 밝거들랑 놀랍도록 재미없는 일상이 어떻게든 타파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관계철학 (;) 의 일환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사실 나는 올해 들어서 사람을 더 못믿게 된 것도 같다. 하찮은 공치사에 담긴 허언들을 더는 제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다. 전역만 하면 정말 반갑게 놀아주겠노라고 했던 인간들이 정말 극소수 몇 명을 빼고는 죄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기가 막힌 관계로. 아, 정말 가벼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