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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080712, 새벽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예상보다 훨씬 구린 일인 것 같다.

(꽤, 꽤, 아주,)

몇 살 더 어렸을 때 잘 하지 못했고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접어놨던 일들을 다시 펼쳐보면 의외로 괜찮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를테면 자전거 타기라던가, 제기차기라던가, 족구라던가, 사과깎기라던가, 바느질이라던가. (그러고보니 죄다 섬세한 신체 skill 쪽에 들어가는 편이다) 반면에 그래도 괜찮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꾸준히 펼쳐 두었던 일들을 다시 돌아보면 의외로 수준 이하의 결과가 나오는 수가 있다. 이를테면 글쓰기라던가, 사람 대하기라던가, 생각하기라던가, 노래부르기라던가. 나이먹는다는 건 트라우마를 쌓았다가 어? 하는 사이에 지워버렸다가 다시 쌓는 작업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만 말하자면 대체 내가 뭘 잘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것 정도. 굉장히 경제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인 질문, 이를테면 "넌 뭘 할 수 있는데?" 따위를 심심찮게 접하는 요즘엔 상당한 패닉상태를 유발하는 성찰인 셈이다. 이럴 때면 한번 접었다 펼친 학종이를 앞에 두고 많이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구질구질하게 생겨서. 음- 그래, 적당히 접었다가 펴야 한다. 보톡스도 듣지 않는 주름살에 고달파하기 이전에 말이지.

부러운 사람도 없고 그리운 사람도 없고 심지어 고마운 사람도 없는 前사회적 공백지로 회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무딘 감성이 점점 더 무뎌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인생엔 연필깎기가 필요하다. 그륵그륵그륵. (아, 날카로운 사람이 돼봐야 하긴...)

그래도 세상은 참 재밌다. 그거 하나 덜 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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