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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난 그냥 그렇다

아마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봐야,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단한 고민을 안고 사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특별한 인간의 대단한 고민이라면 적어도 오메가 파이브 행성에서 지구 침략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외계인 그레이grey들에 맞서 대격변과 행성-X의 출몰을 경고하는 인류 최후의 예언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한편 특별 선출된 엘리트 0.001%를 알파센타우리로 이주시켜 지구 이후의 새로운 인류 문명을 준비하는 미 정부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채고 인류의 도덕적의 한계와 본질적 휴머니즘 사이에서 스스로의 실존과 주체적 결단을 고뇌하는 키보드 워리어가 당장 산와머니나 러쉬앤캐시에서 몇백만원을 대출하여 곧 닥쳐올 대재앙에 대비해 식량 몇 박스와 음료 몇 통을 구매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말이다. 그러니 참, 가치있는 고민을 하기란 도통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까뮈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시지프 신화의 첫 단락을 읽고 나서 나는 숨이 막히는 통에 이 책을 6개월이 넘도록 다시 집어들지 못했다. (아니, 단순히 게을렀던 탓인가?)

나는 그냥 내가, 내 밑바닥까지 보여주고 나서도 형편없이 재미없는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악, 그러니까 이건 마지막 호주머니까지 털어봤지만 끝끝내 월급봉투를 발견하지 못한 회사원의 심정과도 같다. 누구처럼 저스트 어 텐미닛은 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 열과 성과 인간성을 다해서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면, 매몰차게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그냥 그렇다. 이것저것 깨지고 무너지고 박살나면서 무의식에 각인된 두려움 같은 거다. 그럼 뭐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이었던, 아주 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으려나?

요즘 같아선 전문상담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건 대인기피 초기 증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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