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난 탓에 기분이 나빴다.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다. 기분이 나빴던 탓에 모든 일이 이따위로 이상하게 풀린 거다. 그러니까 사람은 일찍 일어나고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질 때 침대를 툭툭 털고 일어섰더니,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떠 있고,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하거나 혹은 잡스러운 웬갖 것들이 나만 홀라당 빼놓고 바쁜 하루를 시작해 버렸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먼저 집을 비운 아내가 아침 여덟 시에 보낸 문자나 점심시간에 찍혀 있는 부재중 통화 기록 같은 것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대처하기가 싫어지는 법이니까. 대체로 그런 연락의 목적이란 건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며 국은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으니까 부디 알아서 처먹도록 하세요. 정도로 뻔한 내용인 법이잖아? 한동안 나 볼 생각 하지 마, 라던가 애는 친정에 맡겨둘게, 같은 문자가 와 있을 줄 알았다면, 설령 어떻게 끌고 왔는지도 모를 내 자동차 트렁크에 누군지도 모를 사람 두 명이 널브러져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두 사람 모두 호흡이 정지한 상태였다는 게 확인 되었더라도 일을 이따위로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아내한테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정신이 있었겠지. 3년 남짓한 결혼생활 동안 아무리 개차반직전인 남편이었다지만 적어도 나는 아직 법적으로 그녀의 남편이었고, 이런 상황에 놓인 남편은 보통 아내에게 나한테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이야? 정도 되는 말을 전할 자격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늦게 일어났더라?
어디선가 내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걸 몰라서 물어?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범인은 술이다. 술을 쫌 많이 마셨다. 그것도 아마 모르는 사람이랑 마셨던 것 같다. 술자리가 시작될 때부터 그랬다는 말은 아니고, 아마도 3차나 4차쯤 되는 시기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처음 보는 남자 하나, 여자 하나를 양 옆에 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흔들었고. 그 때 나랑 같이 있던 그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난감한 표정? 뜬금없이 달라붙은 이 혹을 어떻게 떼어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 아니다. 때마침 그 사람들 역시 독한 취기와 그보다 독한 사연들에 휘감긴 채로 세상의 고민은 자기들이 다 짊어진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퍽이나 눈치가 빠른 편이라서, 아무리 만취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에게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거나 함부로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아내의 무수한 제보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이 아직까지 나에 대한 신뢰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그 정체 모를 남녀와 술을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네들이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던 사안이 무엇이었는지도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술 때문에 끊긴 필름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듯, 발작적으로 편집된 점프 컷 같은 영상들만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음성과 영상의 불일치가 돋보이는 이 불확실한 기억들을 인내심 있게 조사하다 보면, 기어코 단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장면 하나가 퍼뜩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나는 양 팔을 벌려 두 남녀를 내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고는, 옆집 부부싸움 내용을 몰래 엿들은 아주머니처럼 속삭이고 있다.
“…사실 그게 우리 마누라에요.”
뭐가 우리 마누라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들은 남녀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 또 한동안 기억이 없다. 남자가 나에게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여자가 말리는 광경이 있는 것도 같다. ‘천국’ 이라던가 ‘약속’ 이라던가 ‘사기꾼’ 같은 단어가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을 이어 붙여 어떤 의미 있는 정보를 생산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숙취에 괴로워하며 침대에 누워 있고 두 남녀는 숨이 끊긴 채 내 차 트렁크에 갇혀 있다. 차 트렁크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무슨 물건을 가지러 나갔는지도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도 없고 애도 없다. 밥통에는 밥이 없으며 가스레인지 위에는 냄비가 없고 냉장고 안에는 썰어둔 김치가 없다. 나는 냉장고에 남아있는 계란 두 개를 꺼냈고, 계란 프라이를 부쳐 식탁 위에 놓으려다가 그 자리에 이미 아내의 도장이 찍힌 서류 한 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 발견한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띵한 건지 이 모든 일들 때문에 머리가 띵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기분이 매우 나쁘다. 차 트렁크를 왜 열어봤더라, 떠올려 보니 집에 오는 길에 길가 편의점에 들려 다섯 개짜리 묶음 라면을 샀던 기억이 난다. 헌데 그걸 좌석이 아니라 트렁크에 집어넣어야만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해장을 할 요량이었다면 하나만 사면 될 일인데 다섯 개나 샀던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 때는 트렁크 안에 시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것들에 지쳐서 나는 도로 침대로 돌아간다. 해가 다시 뜨거나 질 때쯤이면 뭔가 좀 명확해질까, 싶어서 핸드폰으로 날아온 문자나 부재중 통화목록 같은 것도 확인하지 않고 도로 잠들어 버린다. 기분이 나쁜 탓이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내 소원대로, 나는 해가 질 무렵에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는 기분이 나쁘거나 좋지는 않았고 다만 깜짝, 놀랐다. 아침 - 아니다, 점심 때 내가 방치해 버린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 나만큼이나 과음한 천사, 혹은 강력사건 전문 우렁각시가 찾아와 내가 잠든 사이에 모든 일을 말끔하게 처리해 주지 않았다면, 아직 내 차 트렁크 안에는 시체 두 구가 있는 것이고 이 집에는 아내도, 아이도, 밥도 반찬도 국도 없이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인 계란 프라이만 굶주린 파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침대 위에 멍청히 앉은 채 이불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덜덜 떨다가 조심스럽게 아내를 불렀다. “여보오…?”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노을빛이 구석구석 닿아 긴 하품을 내쉬고 있는 집안은 메아리가 울릴 지경으로 적막하기만 했다. 그제야 나는 핸드폰을 열어 아내의 문자를 확인하고, 아내의 전화기가 이미 꺼져 있는 상태란 것도 알아냈다. 나는 답답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장모님한테 전화해야 하나, 경찰에 전화해야 하나, 어젯밤 나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친구들한테 전화해야 하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세 가지 보기 중 마지막에 해당되는 녀석 하나가 때마침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전화를 받았다. 헌데 녀석은 나름대로 다급한 나보다 더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로 먼저 말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너네 마누라 결국 간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가긴 어딜 가?”
“그 에덴인가 뭔가 하는 별나라 말야. 오늘 뉴스 떴던데? 기상 관계로 출발일이 당겨져서 전 승무원들한테 소환 명령 떨어졌다고. 마누라 집에 없구나, 지금? 넌 정말 안가는 거야?”
아아, 에덴.
입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린 나는 부리나케 거실로 튀어나가 TV를 켰다. 아내가 보는 과학채널에 고정되어 있던 TV는 오늘 낮 시간 내내 이어졌던 종교단체 과격집회에 대해서 방영하는 중이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수백명의 인파가 피켓을 들고 사람 사진이며 지구본 모형 따위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들이 불태우는 것들 중에 하얀 색 우주왕복선 모형이 포함되어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구호를 외쳤다. ‘디스커버리-에덴 호 발사 결사반대’ 내가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니라면, 아내는 아마도 저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 집을 나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틀림없다면 내 아내는 유감스럽게도- 적어도 100년 이상 지구를 비우게 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저 우주선의 목적지는 지구로부터 100년 거리에 있는 행성이었으니까. 음, 왕복하는 시간을 고려하자면 200년쯤 되는 건가?
기분이 나쁘다.
“야, 이런 걸 알았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어… 미안하다. 어젯밤에 너무 퍼마셔서 지금 막 정신을 차렸거든. 상황을 보아 하니 너도 지금 일어난 것 같구만 뭐. 그런데 뭐야, 정말 너만 떼어 놓고 가버린 거야? 애는 어쩌고?”
“씨발… 나도 모르겠다. 얘기나 더 해 줘봐. 승무원 등록된 사람들은 죄다 소환한 거야? 그럼 지금 플로리다에 가 있겠네?”
“글쎄다. 나도 지금 뉴스 보고 놀라서 전화한 거라 그렇게 자세한 것 까지야… 야, 그런데 너가 가지 말라고 했다면서. 가고 싶으면 자기랑 장모님이랑 애들까지 다 끌고 가라고.”
“그럼, 가지 말라고 했지. 너 같으면 마누라가 200년 동안 지구를 비운다는데 그래, 잘 가세요, 냉장고에 반찬은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시구요, 하고 말겠냐?”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어젯밤에 봤을 때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전화기를 넘어 날아온 퍼즐 조각 하나가 끊긴 필름 사이에 철컥 소리를 내며 안착한 기분이었다.
“어젯밤에 우리 마누라를 봤다고?"
“그래… 뭐야, 너 기억 안 나냐?”
“아씨… 몰라, 자세히 좀 얘기해 봐. 내가 부른 거야?”
“니가 불렀지, 그럼. 술 많이 먹어서 운전 못할 것 같다고 전화 걸었잖아.”
녀석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3차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대리운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은 아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내가 전화통을 붙들고 무슨 소리를 지껄였을지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마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될 만한 대화가 오고갔을 것이다. 이상한 건, 그런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아내가 별다른 불평 없이 내 곁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매번 그랬듯, 내 아내가 나타나자 더 이상 진상을 부리지 못하고 술자리를 끝냈다. 친구보다 돈도 잘 벌고, 가방끈도 길고, 말도 잘하는데다가 유식하기까지 한 친구의 아내란 대체로 그런 자리를 파괴하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법이다. 나는 전화기 너머 녀석을 다그쳐서 아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샅샅이 알아내려고 했지만, 녀석은 담담하게 증언했다. 내 아내는 아무 말도 않고 내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래서, 너네는 내 마누라한테 나를 맡겨두고 자리를 떴다, 이거지?”
“그래.”
“옆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다른 사람 누구? 술집도 문 닫기 직전이었는데?”
나는 트렁크 속의 시체 두 구에 대해서 고백을 해야 하는 건지, 아주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잠시 뒤 녀석은 자기도 술이 꼭지까지 오른 상태여서 자세히 기억은 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발뺌을 시도하고 있었다. 녀석은, 가정법원 문턱은 몰라도 검찰청 문턱을 오르내리게 하기엔 너무나 믿음직스럽지 못해 보였다. 나는 녀석을 적당히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한참을 멍하니,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TV는 한 달 후 발사대에 오르는 디스커버리-에덴 호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벌이고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남들에겐 새로운 소식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난 3년 동안 저 프로젝트의 가장 세부적인 진행사항까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으니까.
내 아내는 나를 처음 만날 때부터 이미 나보다 충분히 잘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원 ‘에덴’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이었고, 나는 각종 학술 세미나를 기웃거리며 복도에서 마주치는 교수님들에게 인사드리기 바빴던 늦깎이 대학원생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부산까지 내려가 참석한 세미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나는 그저 단 하루가 되어도 좋으니 이 여자랑 사귈 수만 있다면 내 인생에는 여한이 없을 거란 식의 즐거운 상상을 했을 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평생을 함께하리란 다짐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아내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고백이란 걸 했을 때, 그녀는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으니까. “하여튼 인간들이란…” 그것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내 첫 번째 도끼질은 그렇게 실패했다.
하지만 스무 번쯤 찍었을 때 나무는 기어코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루터기가 꺾인 나무는 시간이 흐르자 아예 뿌리가 뽑힌 채 나에게로 쓰러졌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어떻게든 지탱해 보려고 애썼지만, 어쩌면 그것은 처음부터 분수에 넘치는 짐이었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난 3년간 우리의 결혼생활을 지탱해 온 것은 나보다는 내 아내에 가까웠다. 박사과정을 간신히 마치고도 지방 대학 강사 자리 하나 얻지 못해 쩔쩔매는 나에게 쓸 만한 직장을 몇 군데 추천해 준 것도, 알량한 자존심에 그 직장들을 하나하나 때려치우고 나와 기어코 칩거생활에 들어간 나에게 이따금씩 일거리를 제공해 준 것도, 끼니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여 텅 빈 집에서 허탈한 아침을 맞이하는 나를 채워준 것도, 내가 아닌 내 아내였으니까. 나는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해야만 한다고 틈이 날 때마다 되뇌었다. 하지만 이 고고한 다짐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왕자와 평범한 여자는 사랑할 수 있어도 공주와 평범한 남자는 사랑할 수 없다. 그것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가 정말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굳건한 법칙이다.
어쨌든 우리 사이를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만든 것은 그녀가 결혼 전부터 참여하고 있던 디스커버리-에덴 호 발사 프로젝트였다. 내가 알고 있는 프로젝트의 개요는 단순했다. 지구로부터 100년 거리에 있는 푸른 행성에 인간을 보내 탐사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탑승자 전원은 동면상태에 들어간 채로 100년 후 ‘에덴’ 행성에서 깨어나며, 그곳이 제 2의 지구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지 판별하게 된다. 프로젝트의 초기, 그러니까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승무원들은 배우자와 자식을 비롯해 ‘정서적 안정감에 도움이 되는’ 지구인 2명씩을 우주선에 탑승시킬 수 있었다. 나는 오로지 그 약속 하나만을 믿고 그녀와 결혼했다. 어쩌면 내가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은 머지않아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게 되리라는 꿈에 너무나 부풀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아내는, 우울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내 꿈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우리 같이 못가겠다.” 아내는 오늘에야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우리의 이별은 어쩌면 그 날 저녁에 이미 통보된 것이나 다름없을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처가 번호를 누르고는, 그 번호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장모님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이혼서류를 만들어 도장까지 찍고 사라진 마당에, 아이를 맡기면서 아무런 언질도 건네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장모님이 아직까지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론은 명백했다. 오늘 밤이 아니라면, 나는 어쩌면 영원히 내 아이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통화연결음이 먹먹하게 흐르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제발, 장모님이 아닌 내 아이가 전화를 받기만을 바랐다.
“김서방인가?”
젠장.
“아… 네, 장모님. 안녕하셨어요?”
“안녕하기는 개뿔. 괜찮은가 자네?”
워낙 바보 같은 말로 통화를 시작했던 탓일까. 따스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 공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냐는 말 한마디에 그만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릴까봐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내 손이 혹시라도 튀어나올지 모르는 말실수를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그래, 지금은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냥 아이만 바꿔달라고 하는 거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나 같은 아버지는 없는 게 좋을 것 같다거나, 하찮은 남편보다는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을 선택한 아내의 결정에 동감한다는 말 따위는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더 못난 모습 보이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조용히, 그러니까…
“자네한테 할 말이 있는데. 지금 혹시 차 트렁크에 이상한 거 있지 않나?”
정수리에 망치가 떨어진 기분이었다.
“…네?”
“내가 아침에 자네 마누라한테 들은 말이 있어서 하는 소리야… 아직 처리 못했지, 그거?”
그거, 그거라. 아무리 사람이었다지만 지금은 숨이 끊어졌으니 ‘그거’ 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건 없는데. 그래도 보통은 시체를 저렇게 부르지는 않잖아? 나는 아내가 장모님에게 무슨 소릴 한 건지, 그래서 장모님이 알고 싶은 건 뭔지, 아니 그보다 경찰에 신고해 버린 건 아닌지… 너무도 궁금한 탓에 그만 내 아이가 거기 잘 있느냐는 질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고작 한 대답이란 것도,
“라면… 말씀이신가요?”
따위일 수밖에.
“라면 말고. 라면은 해장하려고 샀다면서? 아직 처리 못했구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이걸 먼저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그냥 기다릴까- 고민했는데 기다리길 잘 한 것 같구먼.”
“아, 저, 죄송한데, 지금 말씀하시는 그게 뭔지 제가 잘…”
“시체 말이야, 시체. 두 사람이지? 걱정 말게. 자네가 죽인 거 아니니까.”
이걸 위로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보다 지금 내가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 장모님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장모님은 나와 대판 싸운 아내가 울면서 전화로 하소연 할 때에도 늘 껄껄대며 남자란 다 바깥 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냥 꾹 참으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여장부이긴 했지만, 사람이 둘이나 죽어서 사위 자동차 트렁크에 쑤셔 박혀 있다는데 이딴 식으로 낄낄댈 사람은 아니다. 아니…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아니길 바란다. 내 장모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다.
“겁먹은 꼴을 보니 경찰에도 신고는 못했겠구먼? 자네 마누라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 내가 일 잘못되기 전에 당장 가서 치워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더라구. 일단 술을 그 지경으로 퍼마셨으니까 초저녁까지는 아무것도 못할 테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할 위인은 못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 네. 그렇군요…”
“내가 성격상 재촉하는 걸 싫어하거든. 그래서 굳이 전화도 안 해보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지. 일단 썩기 전에 자동차 끌고 우리 집으로 오게. 저녁도 굶었을 텐데 와서 갈비라도 좀 뜯으라고. 자네 마누라가 자네 먹으라고 사다 놓은 거야.”
“…갈비요?”
“걱정 말어. 자동차에 썩은 냄새 배기 전에는 처리해 줄 테니까. 아, 동현이는 여기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동현아, 아빠 전화다-”
이건 뭐야, 하는 순간 전화기 너머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순간 나는 유괴범들이 왜 흉악범으로 취급되며, 전화로 아이 목소리를 들은 부모들이 왜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장모님과의 통화로 미루어 보건대, 지금 처갓집은 어쩐지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수 없어 보였다. 나는 소파를 박차고 일어서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 질렀다. 동현아. 아빠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오랜만에 고기를 뜯고 있는 탓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을 깔깔대며 더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턱에 받친 채로 침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옷을 꺼내 입었다. 머릿속으로는 그간 아내와 처가의 행적들이 빠른 그림으로 스쳐가고 있었다. 폭력조직인가? 장모님은 보스고? 그래, 그러고 보면 뭔가 이상하긴 했어. 장인어른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고, 장모님이 가진 재산이라곤 시 외곽에 있는 조그만 빌딩 하나가 전분데, 그거 하나로 딸년 유학도 보내고 영재교육도 시키고 결혼하니까 번듯한 집도 마련해 줄 수 있었다고? 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지구를 비우면서, 나에게 살인누명을 씌워 내 인생을 박살낼 계획이었던 거다. 그러다가 막상 아이를 보니까 안쓰러웠겠지. 아이를 장모님에게 맡기면서 아내는 담담하게 말했을 것이다. 어차피 경찰에 신고도 못 할 위인이니까, 정신 차리거든 불러다가 적당히 처리해 주세요. 뭐, 잘 먹고 잘사는 꼴은 백년 거리가 아니라 백 만년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두고 볼 수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먹고 살게만 해 주시고요. 장모님은 킬킬대며 대답했겠지. 애가 볼모로 있으니까 뭔 짓이든 함부로는 못 할 거다. 아아, 치졸한 복수극 같으니라고!
주차장으로 뛰어나가 차 문을 열 무렵 장모님이 다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장모님. 제가 갑니다. 동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 뒤에 일은 책임 질 수 없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자네 그게 무슨… 까지만 듣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온 몸의 분노를 가득 담아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집어던져 버린 핸드폰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처가였다. 무시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려다가, 전화를 받아 냅다 소리 질렀다. “장모님이 무슨 수작 부리는 건지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대로 당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대로 닫아버린 핸드폰을 다시 조수석에 집어던지고,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어두컴컴한 차창 너머로 동현이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일단 동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우선이다. 보통 영화 줄거리가 그렇잖아. 일단은 인질을 구해내고, 그 과정에서 악당의 함정에 빠지지만, 결국 죽을 고비만 몇 번 넘기고 나면 정의는 승리하고 모든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각하고 보니 ‘죽을 고비 몇 번’ 이 좀 걸리긴 했지만, 아이를 구해낼 수만 있다면 그깟 죽을 고비쯤은 얼마든지 넘겨도 좋았다.
하지만 다시 조수석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지막한 엔진소리가 가릉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핸드폰을 들어 한참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전화를 받고 나면 일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일단 이 전화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미쳤어?”
아내였다.
다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해야 할 말을 아주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어디야? 전화는 왜 꺼놨어?”
“여기 미국이야. 비행기 타고 있었어. 이륙할 때만 꺼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진짜로 간 거야? 그 디스커버린가 뭔가 하는 우주선 타러?”
“얘기해 봐야 보내주지도 않았을 거잖아. 그렇게 막 없어져 버린 건 미안한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무슨 사정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남편이랑 자식을 그렇게 내팽개치고 도망간 거야? 지구를 떠난다더니, 아주 지구를 버리려고 작정한 거야?”
“그런 거 아냐! 자기가 어젯밤에 말실수 한 것 땜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기억에 없는 사실로 말싸움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아내가 날 떠났다는 사실보다 몇 배는 중요한 사건이 터진 참이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장모님한테 얘기 듣고 전화한 거야?”
“그래. 자기, 엄마한테 무슨 소릴 한 거야?”
“왜. 정곡을 찔리니까 당황한 모양이지? 어디까지 계획을 세워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착각하지 마. 나 그렇게 쉬운 놈 아냐. 동현이만 구해 내고 나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무슨 계획?”
이런 식이다.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나한테 살인 누명을 씌우려고 했잖아, 이 더러운 년아!”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들려왔다. 태평양 건너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이 그대로 압축돼 전파를 타고 귀에 쑤셔 박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아내를 버텨보려고 노력했던 지난 세월의 아득함이, 그 아찔한 무게감이, 찰나에 불과한 침묵에 고스란히 실린 채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를 온전히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도저히 이 어마어마한 침묵도 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무력하게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녀는 웃었다.
깔깔대고 낄낄대며 한참을 웃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해지는 웃음이었다. 그녀가 지구를 떠나고 지구가 그녀를 잊어버린 지 200년쯤 지나더라도 우주 어딘가의 전화통에서는 반드시 흘러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웃음. 그것은 우리가 오늘 이별했고 그보다 훨씬 전에 이별을 약속했으며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버리는 웃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겪었던 온갖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고작 이 웃음소리 몇 초로 위안 받고 있는 내가 너무나 싫어서,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또 기분이 좋았다.
웃음의 끝에 그녀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하여튼 인간들이란…”
뭐랄까, 그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나는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는 부정할 수 없이 나보다 훨씬 큰 존재였다. 200년 뒤의 지구를 다시 만날 것이며, 200만년 뒤에 새로운 인간들이 머물 새로운 지구를 준비하는 그녀는, 아마도 내가 깨지 못한 술기운에 짐작하거나 죽을 고비 몇 번으로 깨부술 수 있는 계획보다는 훨씬 원대한 무언가를 예비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내는 장모님한테 모든 걸 맡겨뒀으니 아무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간 것을 거듭 사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현이를 사랑하는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는 얌전한 벙어리처럼 그 모든 말을 듣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얼마 있다가 장모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장모님은 내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으며 아내는 무엇을 부탁했는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다만 이전보다 훨씬 침착한 태도로 집이 아닌, 집 근처에 있는 시 외곽 야산의 공원으로 오라고만 말했다.
장모님은 커다란 삽 두 개, 그리고 기름이 담긴 것처럼 보이는 물통 하나와 함께 어둠이 내린 공원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장모님은 아무 말도 없이 손짓으로만 트렁크를 가리켰다. 이윽고 활짝 열린 트렁크에 고개를 파묻은 장모님이 도대체 뭘 살피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열 걸음쯤 바깥에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던 나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눈동자를 부릅뜨며 짧게 물었을 뿐이다.
“어제 봤던 사람들 맞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장모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체 두 구를 들쳐 매고는 야산 깊숙이 들어가 구덩이를 팠다. 허약한 남자와 노인 둘이 해 내기엔 힘에 벅찰 거라고 예상했는데, 장모님은 거의 사람이 낼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혼자서 시체 두 구를 매고 성큼성큼 앞서 간 장모님은 헐떡거리며 뒤쫓아 간 나에게 삽을 받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구덩이를 파 들어갔다. 사지 멀쩡한 사위가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길어야 십 분 남짓한 시간동안 시체 두 구가 가지런히 누울 수 있을 만한 구덩이가 완성되고, 장모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시체를 구덩이에 던지더니 그 위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나에게 말을 건넨 건 탁탁 소리를 내며 손을 털더니 뒷춤에서 담배를 꺼낼 때가 되어서였다. 한대 피겠나? 나는 나도 모르게 손 사레를 쳤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장모님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첫 연기를 내뱉음과 동시에 구덩이로 담배를 던져버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화끈한 열기가 얼굴을 휘감았다.
“아는 사람들인가?”
“아뇨. 어제 처음 만났습…”
“난 아는데.”
기묘한 침묵이 찾아왔다. 아이는 잘 있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참이었다.
“자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거, 잘 듣고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게.”
“예… 예?”
“원래는 나도 얘기해 줄 생각은 없었는데, 자네 마누라가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에는 자네도 뭔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 하지만 계율을 깨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야. 그러니까 세세한 일까지는 기억할 필요는 없어. 그냥 자네 마누라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것만 새겨두면 돼.”
장모님은 뒷춤을 뒤져 다시 담배를 꺼냈다.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늦게 일어난 탓에 기분이 나빴다.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다. 기분이 나빴던 탓에 아침에, 아니 점심에 일어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동현이를 세 번이나 울리고 밥도 제대로 못 먹였던 거다. 아내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한 달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혼자서는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봐야 식탁 위에 남겨진 메모도, 핸드폰에 담긴 문자도 없이 혼자서 밥을 짓고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는 생활이 얼마나 길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장모님과 함께 생활한 며칠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 집에서 계속 살아가기란, 정신이 살짝 이상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모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문 밖까지 나서 배웅하면서도 영 못미더워 하는 눈치였지만 별 수가 없었다. 아내가 합숙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장모님에게 신신당부했던 단 한 가지는 다름 아닌 나의 안전과 행복, 그것뿐이었으니까.
동현이와 나는 어제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우리는 에덴 프로젝트 팀의 배려 덕택에, 승무원의 가족 자격으로 디스커버리-에덴 호의 발사광경을 지켜볼 수 있도록 초대권을 발급받았던 것이다. 우편으로 도착한 초대권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지체 없이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장모님은 호탕하게 동행을 거절했다.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은 윗선의 허락 없이는 살고 있는 땅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내 아내는 뭐냐고 질문하자, 장모님은 그런 건 이미 다 이야기해 줬다며 알아서 짐작하라고 말해버렸다. 짐작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 아내는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영웅이며, 모자란 남편 때문에 도망치듯 지구를 떠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 남편을 배려할 줄 아는 헌신적인 아내인데다가, 지구를 떠나는 최초의 뱀파이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을 정말 사랑한 나머지 결혼하고 애까지 낳아버린 최초의 뱀파이어이기도 할 것이다.
뱀파이어 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데이-워커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이용해 지구를 지배하는 대신, 인간이 각고의 노력 끝에 발견해 낸 제 2의 지구를 완전한 뱀파이어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인간들이 그렇듯 장모님도 자기보다 윗선에 있는 작자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말했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내 아내는 다름 아닌 그 고위 뱀파이어라는 작자들에게 굉장한 특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다만 그녀가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율을 어기고 나에게 이런 비밀들을 누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게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 씁쓸해해야 할 일인지는 아마도 보다 먼 훗날에 확실해 질 것 같다. 나는 장모님의 집에서 탈출했지만 비밀을 알게 된 그 날 이후로 내가 항상 감시받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헌터들로부터 나를 수호하며, 한편으로는 한마디라도 입을 잘못 놀리는 순간 가차 없는 보복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길거리에 몰려나와 우주선 발사를 반대하던 종교단체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위장한 헌터들이라고, 장모님은 설명했다. 그들은 길거리에 몰려나올 때마다 ‘에덴은 신이 인간에게 약속한 낙원이며, 인간들이 그 땅을 밟는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다’ 는 식의 씨알도 먹히지 않을 논리를 내세우곤 했다. 하지만 속내로는 디스커버리-에덴 호의 발사를 어떻게든 지연시키는 한편, 그곳에 탑승할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는 ‘어떤’ 뱀파이어를 색출해서 제거하는 데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어떤’ 뱀파이어에게 접근하기 위해 징검다리로 삼기에 가장 쉬웠던 상대가 다름 아닌 그녀의 모자란 남편이었다는 건 누구나 상상하기 쉬운 일이다. 나는 멋도 모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뒤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한 그네들에게 다름 아닌 내 마누라가 저 우주선에 탄다고, 남편도 버리고 애도 버리고 지구도 버린 채 어딘지도 모를 우주를 향해 떠나가는 천하의 썩을 년이 내 아내라고, 그래서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쁘고 또 나쁘다고 하소연했던 모양이다. 헌터들을 알아보고 몸을 숨겼던 아내는 어디선가 내가 말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지체 없이 그들을 사살했다. 아마 그날 밤 아내가 정체를 드러내고 계율을 어긴 채 인간을 사살하는 모험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나는 다음 날 내 집이 아닌, 이상한 지하실 따위에서 고문을 받으며 눈을 떴을 일이다. 그게 다 내 아내가 날 버릴 수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그러니까 다른 건 다 잊어먹더라도 아내의 진심은 오해하지 말라고, 장모님은 내게 누누이 타일렀다.
동현이와 나는 발사대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마련된 가족석에서도 제일 앞줄을 배당받았다. 손에 잡힐 만큼 가까운 곳에 내 아내가 탄 우주선, 디스커버리-에덴 호가 세워져 있었다. 이미 동면에 들어간 승무원들의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오면서도 내가 눈물을 흘리거나 벅찬 감동에 말을 잇지 못하는 꼴을 보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내 눈앞에 세워진 아내의 마지막 위용을 확인하고 나니, 가슴 한편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먹먹한 감정으로 매몰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야 아내의 본모습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다가설 수도 없고,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늦게 일어난 탓이다. 그래서 아침도 못 먹고 여기까지 오는 차도 거의 놓치기 직전에 잡아 탄 탓에, 그 와중에 울어대던 아이를 제대로 달래지도 못한 탓에, 그래서 기분이 나쁜 것이다. 영원히 지구를 떠나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로 자리할 아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니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내 옆자리에 앉은 채 창밖의 발사대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 저거 로케트야? 나는 멍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대답했다. 응. 저거 지금 쏘는 거야? 응. 지금 들리는 소리가 영어로 숫자 세는 거거든. 0까지 세고 나면 발사할거야. 우와! 저거 진짜 쏘는 거야? 그래. 지금 30까지 셌네. 아빠가 쏠 때 가르쳐 줄까? 응! 그런데 아빠,
“저기 누가 타고 있어?”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아이의 양 어깨를 꼭 잡았다. 장모님은 비밀을 알게 되는 건 오로지 나 까지만 허용이 됐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동현이는, 평생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니 어쩌면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얼핏 잔인한 것 같은 그것 역시 아내의 바람이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길 바란다고,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다시 전화통화를 했을 때 그녀는 내게 직접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갈등했다. 사실을 말해 줘야 하나. 어차피 무슨 말인지도 모를 텐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한국말을 알 것 같지는 않은데.
너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너희 엄마가 저기 타고 있고, 다들 동면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대기권을 벗어나면 혼자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며, 100년간 우주의 온갖 위험들을 피해 다닐 수준은 못되는 자동조정 장치를 보조하는 일을 할 것이고, 결국 새로운 세상에도 홀로 발을 딛게 될 거라고. 다른 승무원들은 죄다 너희 엄마를 위한 먹이일 뿐이고, 인간의 목에 직접 입을 대는 걸 싫어하는 데이-워커인 너희 엄마를 위해 얌전히 온몸의 피를 몸밖에 내어놓고 얼어붙은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니, 결국 저 거대한 우주선은 너희 엄마만을 위해 준비된 식탁, 어쩌면 냉장고, 어쩌면 희망을 대가로 인간을 농락한 것을 기념하는 악취미적인 기념물일 뿐이라고 말하면…
나는 동현이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주선의 첫 번째 단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눈앞의 유리창이 세차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주선에 눈을 맞춘 채로 말했다.
“아무도 없어.”
동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도?”
“응, 아무도.”
우주선이 움직였다. 꽁무니에서 뿜어진 화염이 물결처럼 지상을 휘감고, 어마어마한 연기와 먼지구름이 족히 수십 미터는 치솟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터져버릴 것처럼 떨려오는 유리창에 양 손을 얹고, 얼굴을 가까이 대어 뿌옇게 가려진 시야 너머를 바라보려고 했다. 우주선이 떠오르는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지구의 손아귀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하늘로 치솟는 우주선 자신도 자신의 모습을 믿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저렇게 힘든 거짓말처럼 떠나간 것이, 앞으로 200년간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거란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니, 슬프지 않다. 유리창의 진동이 전해진 탓이다. 그리고 늦게 일어나서 기분이 나쁜 탓이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다. 그녀는 나 없이도 100년 동안의 고독 정도는 가뿐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누군가를 오롯이 배려하면서도 돌아오는 사랑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서. 그러니 내가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내가 울어줄 필요도 없다. 내가 사랑할 필요도 없다. 그냥 소심하더라도 마지막 인사 정도만 건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손을 하늘로 향해 흔들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안녕, 내 사랑.”
(2010. 3. 17)
'잡글들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Hotel California (5) | 2010.04.01 |
---|---|
Ghosts of you (4) | 2010.03.23 |
Eclipse (0) | 2010.03.10 |
Dreaming (2) | 2010.03.09 |
Cliche (0) | 2009.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