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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들/소설

Hotel California

  사막은 넓고 더웠다. 남자는 눈앞에 안개처럼 뿌옇게 번진 모래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오른손으로 눈썹 위에 고인 땀방울을 훔쳐냈다. 오래도록 기어 스틱을 붙들고 있던 오른손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끈적한 느낌이 한결 가셔도 작은 먼지들이 두드러기처럼 들러붙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지독한 열기는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당신 말을 들을 걸 그랬어.

  아내는 사막횡단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는 반드시 자동차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괜한 노파심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총연장 만 오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사막횡단 고속도로에는 상, 하행선을 통틀어 휴게소가 네 개 뿐이고, 잠시 몸을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해 봐야 세 시간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무인 주유소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나마도 낡은 냉커피 자판기와 파라솔 두세 개뿐인 휴게시설에 절망할 때쯤이면, 사막 먼 곳에서 발작처럼 모래폭풍이 일어나곤 한다. 허둥지둥 차 안으로 몸을 숨겨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쉰 목소리로 지껄이는 라디오를 들으며 한껏 시간낭비를 한 뒤에야 모래바람 때문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사전점검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 하더라도 이 고속도로를 타고 사막을 무사히 횡단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자동차 상태를 점검하라는 조언은 사막여행자의 금과옥조로 삼기엔 지나치게 원론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남자가 굳이 아내의 충고를 떠올린 이유는, 그저 그것이 누군가의 유언으로 삼기엔 지나치게 건조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꼬박 팔 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바람막이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보며 짤막하게 물었다. 또 어디 가? 남자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양말을 벗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틀 후에. 사막을 건너야 될 것 같아. 출판기념회가 있어서. 아내는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속옷만 입은 남자가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할 때,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 끌고 갈 거면, 종합점검 받고 가.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때 까지도 아내가 단순히 잠들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팔 개월 만에 집을 찾은 남편을 고작 낮잠으로 반기는 아내의 태도에 적극적으로 분개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냉장고에서 찾아낸 캔 맥주를 홀짝거리며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을 뿐이다.

  해가 지자 남자는 잠들었고, 밤늦게 깨어난 후에야 아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챘다.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은 거의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질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새벽이 깊어갔다. 형광등이 껌뻑이는 침실에서 남자는 덩그러니, 바싹 마른 아내의 입술을 매만졌다. 아직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남자가 울기 시작한 건 숨을 거둔 아내의 품에서 오래된 미라처럼 말라버린 갓난아기를 발견했을 때였다. 아내의 가슴팍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은 아이는 꼭 아내와 한 몸 같아 보였다.

  아이를 아내에게서 떼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갈퀴 모양으로 뻗은 채 말라버린 아이의 손을 꼭 말아주고, 껌뻑이는 불빛에 멍하니 고정된 아내의 눈을 감겨준 뒤, 남자는 침대 곁에 무릎 꿇은 채로 아내의 손을 꼭 쥐고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다. 이윽고 해가 다시 떠오르고 갈래진 햇살이 커튼 너머로 깊이 스며들 때 까지도 남자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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