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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땐/영화보고

바람(Wis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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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깔끔하게 잘 떨어진 영화인 탓에 그다지 말할 건덕지가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약 두달 반쯤 전 이 영화를 나에게 추천한 누군가가 그 두달 반동안 주구장창 확인작업을 해 왔던 탓에... 어쩐지 반쯤 오기로 보게 되었달까. (...) 하지만 정우라는 배우는 <스페어>가 화제가 될 무렵부터 관심을 가졌던 바 있으니, 그간 아주 관심밖에 있던 영화는 또 아니었다. 재밌었으면 됐지 뭐.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편집도 좋고, 줄거리도 그럴싸한데다가 적당히 즐겁기까지 한 이 영화를 해부하는 데에 가장 즐겁지 못한 관점은 역시 PC한 방향이 되겠다. 그냥 그런 고딩 아해들의 좌충우돌 눈물 쪽 성장기로 읽어주기엔, 이 영화엔 맘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뭐 하나만 꼽아보자면, 역시나 폼나게 살고 싶을게 뻔하지만 전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주인공 일파의 같은 반 '쭈그리' 들 말이지. 감독도 그게 걱정이었는지 영화 초반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안내문구까지 뜨더라만. (청소년기의 흡연은 건강에 좋지 않다니 이 무슨...) 내가 뭐 그렇게 PC한 관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말 나온 김에 나름대로 PC하셨던, 비슷한 계열의 영화들을 쫌 예로 들어보자. 이른바 '폼나고만 싶었던 학창시절' 을 그린 정확히 같은 시작점의 영화로는 역시나 <품행제로>와 <말죽거리 잔혹사>가 있겠다. 그리고 <품행제로>의 결말은 피투성이에 반 미치광이가 된 '캡짱' 류승범이며, <말죽거리 잔혹사>의 결말은 참으로 유명한 권상우의 일갈... "대한민국 고등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뭐 둘 다 그다지 화기애애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본 영화의 결말은 그래도 상당히, 화기애애한 편이다.

 <품행제로>나, <말죽거리 잔혹사>나, 뭐 그다지 재밌게 본 영화들은 아닌데, 그건 아마도 이 두 영화가 막바지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에 치중한 나머지 스스로 현실에 접착하는 것을 망각한 탓이 클 것이다. 이 점에선 본 영화가 상당한 강점을 띈다. 주연배우 정우의 실제 경험에 의거한 줄거리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실상 고딩때 구제불능 문제아라고 하는 놈들도 십수년쯤 지나고 보면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뭐 이렇게 현실적인 인생살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아련한 공감을 사기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다 보고 난 뒤에 이 한마디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결국 퍽이나 잘 빠진 이 영화의 문제점도 그거다.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가 단 한가지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았대요, 하고 끝이다. 그러면 물량공세나 간지 폭발하는 액션씬, 혹은 숨넘어가는 개그씬이라도 넣어서 대중성을 확보했어야 할텐데, 이 점에 있어서도 그냥 몇몇 장면에서 아련한 쓴웃음을 짓게 할 뿐이다. 게다가 그 몇몇 장면의 웃음마저 나같은 관객에게는 그다지 오래 작용하지 못한다. 나는 이 영화의 감독, 혹은 시나리오 제작자가 아련한 추억이나 성장통일 뿐이라고 전제해 주길 바라는 그 모든 종류의 폭력들에 절대로 둔감해질 수 없다. <품행제로>는 비웃음밖에 안 나오는 후까시로 흥한 자가 종국엔 후까시로 망하는 장면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누군가에게는 살떨리는 현실일 수 밖에 없는 자잘한 폭력들에게 처절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것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아버지만 죽어버리고, 끝이다. 당신의 성장통은 그렇게나 개인적인 것이었나? 그렇게 그렇게 누구나 잘 살았대요, 라고 이야기하고 끝나버리면 나도 참 좋겠다. 하지만 뭐,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정신 못차리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디 철없는 고딩들 뿐이던가? 오히려 그 철없는 고딩들은 대체 누굴 흉내내던 거였나?

 뭐 아쉬운 점만 얘기하다보니 좀 과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영화 자체는 정말 잘 빠진 편이다. 그럭저럭 흥겹게 봐 주기에 부족함도 없고. 다만 뭐랄까... 브레히트가 봤다간 저주를 퍼부었을 줄거리라고나?




(근데, 정우는 <스페어>때만 해도 훈남수준은 됐는데 왜 머리를 깎아놓으니 저지경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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