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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어쨌든 과분한

1.
도대체 나란 인간은 죽기 전에 육신의 덕을 보긴 할 것인가. "몸" 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일들은 이제껏 나에게 온갖 컴플렉스, 트라우마, 열등감, 실패, 굴욕의 상징이었으며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한 이후로는 무기력, 피곤, 짜증, 나태의 근원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주량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줄담배에도 버텨낼 만큼 폐활량이 남다른 것도 아니고. 운동신경은 중2때 이후로 완전포기한 이래 남들 다하는 그 어떤 스포츠에도 발끝 하나 대 본 적이 없다. (뭐 이건 심리적인 문제가 더 크겠지만; 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둥근 물체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 굳이 회피해서 억지로 당당해질 것 없이, 이건 짜증나는 일이다. 누구는 뭐 그럴싸한 운동신경과 괜찮은 육신을 토대로 멋있게 살고 싶지 않은가? 그러니 나에게 몸이란 그냥 나와는 별 관계없는 객체로 존재할 뿐이었고 나의 의지, 혹은 어떤 약품과 기술의 효능으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암만 생각해도 도무지 와닿질 않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운전에 자신이 없고 라섹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도 광명을 되찾아준 현대 의학에는 그저 심드렁할 뿐이다. 내가 인간 심리의 근본을 모조리 아랫도리로 돌려버리는 프로이트씨와 비근한 진화심리학자들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 역시 이런 성향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자고로 현대의 인간이란 육신과 별 관계가 없는 존재다- 라는 명제를 "믿고 싶어한다" 는 거다. (그럴거면 다른 방향으로 좀 천재적이기라도 하던지) 아무튼 요새는 머지 않은 체력검정도 대비할겸, 그보다는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하야, 운동중이다. 석달쯤 지난 후에 나도, 인간 정신이란 어쨌건 육체 위에 "얹어진" 것이 아니라 "건설된" 것이란 사실을 좀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무슨 행정 절차란 것들을 하나하나 지켜나가는 데에는 진짜 정도 이상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난 애초에 외부에서 주어진 모든 종류의 질서란 것들을 내면화하기 위해서 일정량 이상의 사색이 필요한 사람이다. 왜 지켜야 하는지 며느리도 설명하지 못할 각종 규정들을 묵묵히 익히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한 건지. (...대체로 1년쯤 필요하더라;;;) 이러니 천상 공무원 체질은 아니란 생각이 꾸준히 드는데, 것참 생계를 지탱하기 위한 그럴싸한 조직이란 것은 대체로 공무원의 그것을 그대로 본떠온 경우가 많은 것만 같아서- 미래가 참 밝지 아니하다. 공자님께서는 나이 70이 돼서야 "내 맘대로 해도 세상에 꿀리는 것 하나 없더라" 라고 말씀하셨더만, 어쩌면 그것도 용케도 나이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찝찝하기만 하다. 여담이지만 인생운을 카드로 뽑아봤더니 미래에서 거침없이 DEATH가 나오더라. 젠장. 될대로 돼라. 대한민국 조직생활 다 족구하라 그래.

3.
어쨌거나 과분한 생이고 과분한 사랑들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젠 어리광 정도로 돌려세울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만만하지가 않다. 꽤나 어렸을 적에 레디-메이드 인생이 싫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적당한 나이에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차를 뽑고 집을 장만해서 아들이든 딸이든 알콩달콩 키우면서 살아가는 "본보기" 가 가진 인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벗어나려면 진작에 벗어났어야 했던 걸까. 자신만만하게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살아가기엔 내가 짊어진 온갖 빚더미들이 가혹하기만하다. 순진한 마음만으론 도무지 보상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것들. 그러므로 나는 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아우 야. 도대체 무슨 도리로? 그러니까 삶을 너무 큰 단위에서 바라보면 그만큼 재미없어지는 것만 같다는 깨달음. 달관한 시야는 달관한 후에나 가지도록 하자. 작은 단위로 살자. 냐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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