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미치도록 안써져서 소설을 여덟장쯤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한번 우르르 써놓은 문장과 문단들이 퍽 단단한 건축물이나 벽돌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구름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어느 쪽이건 이 모든 문장들을 지금 바로 고쳐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고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으악, 나는 글이 무섭다. 고민없이 쓰고 고친 단어 몇 개가 이토록이나 명백하고 번복할 수 없는 선언이 되어버린다니. 그렇다고 이걸 다 고민해서 쓰란 말이냐. 아니 다들 그러고 있는 겁니까 진짜? "그녀는 차가운 눈길로 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이딴 시쳇문장에 도무지 무슨 고민을 담으라는 거야?
책을 너무 많이 읽으니까 잡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서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이왕 사 놓은 책을 안 읽을 수도 없고 (아흑) 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무언가를 미친듯이 사 모으는 증상은 전형적인 쇼핑중독 아닌가? 이게 몇 년 전에는 주말마다 티셔츠를 사 모으는 걸로 도지더니 이젠 엉뚱한 쪽으로 터져버린 것 같다; 여하튼 최근 며칠간 읽은 책들은 <몬산토 :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진보집권플랜> <사라진 미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안녕! 인공존재> 그리고 오늘 집어 든 <일의 기쁨과 슬픔> TV강의랑 차근차근 보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번 주 내로 한두권 더 읽고 주말에는 좀 쉬었다가 본격 소설파기 (무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랑 <불멸> 그리고 김연수랑 김영하 김사과... 아 읽다 던진 박민규도 있구나;;) 나 아직 못다읽은 한국현대사산책으로 터닝할듯. 이번달은 그냥 쌓아둔 거나 다 읽는 걸 목표로 삼을까? 아냐 그래도 슬슬 글은 써야 할거 아냐! ... 그나저나 <안녕! 인공존재> 후기를 보고 알아낸 건데 배명훈씨도 공군장교 출신이더라. 그게뭐 엄청난 용기를 준 거란 뜻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