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숙소와 관광지가 있는 시내와는 지하철로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우리는 아침 일곱시 이십분 페리를 타기로 합의했고...
나는 표도 바꿔야 했기 때문에 넉넉잡아 6시에 나서기로 했는데
일어나 보니 5시 55분 (헐)
재밌는 건 내 앞 침대에서 잠든 용군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는 점; 그거 보고 내 시계가 잘못됐나 싶었다
어쨌거나 위층에서 잠든 솜양은 다행히도 늦지 않았고,
이럴 때를 대비하여 시간을 넉넉히 잡아뒀으니 침착하게 길을 나섰건만
지하철이 공사중이다 (헐x2)
정확히 말하면 플랫폼 공사 관계로 바로 환승이 안되니 어딜 가서 반대 방향을 타서 돌아오고 어쩌구 저쩌구.
솔직히 한국 지하철에서 같은 일이 있었어도 지독히 헷갈릴 판국에 하필이면 그리스에서;
거기에 그리스 지하철은 소매치기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결국 당했지만서두)
긴장해야지 길 찾아야지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결국 반대방향으로 두 정거장을 더 가버리는 등... 온갖 뻘짓을 저지른 끝에 항구에 도착했는데
항구가 너무 넓다 (헐x3)
피레우스 항은 내부 셔틀버스가 다닐 정도로(;;) 드넓은 항구였다 ㅜㅜ 하기사 한 나라 수도의 외항이거늘...
뭐 결론적으로 산토리니로 가는 터미널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출항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이 시간 내에 나는 항구 매표소를 찾아서 표를 바꾸고 배를 찾아서 탑승하는 미션을 소화해야 했다
매표소는 또 뭐 이렇게 찾기 어려운지... 간신히 창구로 달려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헐x4)
게다가 표를 바꿔야 하는 건 나 하나였다. 자칫하면 날 기다리다가 동행 둘까지 배를 놓칠 판국.
줄 서는 시간 2분 가량이 이제껏 내 인생에서 가장 긴 2분이었으며
그 2분이 끝난 후에 여직원에게 속사포처럼 쏘아댄 영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유창한 영어였을 것이다
("제가 인터넷으로 출력한 이 예약권을 오늘 아침 배로 바꾸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제껏 내 영어를 한번에 알아들은 유럽인이 드물었는데, 이 여직원은 되묻지도 않고 친절하게 대답한다
"옆 창구로 가세요" (헐...x5)
정말 미춰버릴 것만 같았지만; 어찌됐든 표는 바꿔야 했고... 옆 창구에서 다시 줄을 선 끝에 겟잇.
창구에서 빠져나오니 동행들이 터미널을 찾아놨다면서 빨리 가자고 한다
시계를 보니 출항까지 6분 가량 남았다. 한시름 돌리고 발걸음만 서둘러서 가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영 화물선들만 보이는 것 같구 점점 사람들도 없어지고...
결국 200m 가량 다른 곳으로 걸어간 끝에 깨달았다. 아, 아
여기가 아니다 (...헐x6)
우리는 바퀴달린 캐리어 두 개와 짐가방 두 개를 손에 들고 빛의 속도로 달렸다... 으어
하늘이 도와주신 끝에 무사히 배에 탑승하고 나니 금새 출항.
참 여럿이 하는 여행이 다이나믹하다곤 들었지만 동행을 만나자마자 이리 될 줄이야
배는 곧 출항했다.
바로 옆에 보이던 쾌속선. 우리가 탄 게 무궁화호라면 저건 KTX쯤 된다.
산토리니까지 8시간이 걸리는데 저건 두세시간이면 간다니까... 메리트가 있긴 있지만
그럴 바엔 비행기를 타고 말겠어 (;)
배 위에서의 8시간. 어지간하면 내부로 들어갈 만도 한데 어쩐지 들뜬 우리는 밖에 자리를 잡았다.
만나자마자 공항서 노숙을 하고 이 아침 혼비백산할 일들을 겪은 동행들과도 드디어 통성명을; 마침.
점심은 미리 사 둔 빵과 음료수로 떼웠고...
뭐 사진은 제대로 나온 게 없다. 바람이 미친듯 불어대서...
에게 해의 물빛은 우리네 극동(;)의 그것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특히 거품 흔적에 남는 저 하늘빛은... 너무 상상하던 것 (포카리스웨...트) 과 똑같아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덕택에 처음 네시간 정도는 정말 바닷물만 보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그것도 때가 되니 질리더만
중간에 정박한 섬, 파로스다.
이 날의 여덟시간은 "지중해란 이런 것이다" 를 절실히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음.
이 때가 10월 초였으니 그리스에도 우기가 다가오던 중이라... 나름 구름이 좀 많은 편이었더랬다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여름하늘 아래 지중해를 마주하게 되면
어지간해선 비관적으로 살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국기는 정말... 지중해의 현신같다.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먼 곳의 이름 없는 섬에도 저렇게 교회들이 보인다.
악착같은 인간들 대충 좀 살지... 뭐 저런 바위 꼭대기에다가...-_-;;
으어어. 물빛 보소.
이 섬 이름은 모르겠는데... 정말 물빛만 끝장나게 이뻤던 곳.
형언이 안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정말 유성물감으로 칠해버린 것 같은 색깔...
장장 8시간의 항해 끝에 산토리니 (그리스 이름 Thira) 에 도착.
우리는 내내 갑판에만 있었다. 음. 해가 들면 덥고 바람이 불면 좀 추운 정도였는데...
딱히 바다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닥 추천하진 않는다. 바람이 정말 미칠듯 불기 땜시...
화산섬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생긴 게 좀 의외였다.
배가 정박했던 곳... 파로스 섬 등등에 비해 첫인상은 과격한 편? 저 바위 절벽을 보시랍.
배에서 내리면 섬 안의 각종 호텔에서 나온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우리는 아테네에서 배 표를 끊을 때 함께 추천해 준 호텔 Sky of Thira 를 미리 예약해 뒀던지라
거기서 나온 아저씨가 픽업해줬음. 준비 없이 오면 어찌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산토리니의 항구는 시내 (피라, 이아마을) 랑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대중교통편이 나빠서
어지간하면 미리 예약을 하고 픽업을 받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항구에 삐끼가 항상 있다고는 하지만...
숙소는 싼 맛에 묵었다. 딱 MT온 기분이었는데 1인당 20유로였으니, 뭐 나쁠 건 없었음.
(다만 홈페이지에는 무려 4성 호텔이라고 광고중이라... 기대에는 못미쳐서-0-)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피라마을까지 걸어갔다.
좀 떨어져 있어서 이삼십분은 걸리는 것 같았음...
어딘지 한산한 골목. 이곳도 비수기 티를 풀풀 풍기는 중이었다.
피라마을 골목. 별로 복잡하지 않고
가게도 재미난 게 많으니 시간 내서 구경하면 좋을 듯.
여기 카페가 경치는 갑이었던 듯.
그리스씩 꼬치라 할 수 있는... 수블라키를 파는 노점.
한국사람 어지간히 오는 모양이다. 흐흐
(그러고보니 한국어랑 중국어... 일본어가 없다. 헐)
비수기이긴 했지만 산토리니는 정말 휴양지란 느낌이 물씬 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뭔가 비싼 곳이란 생각은 들지 않고... 솔직한 감상은 안면도쯤?
베네치아가 신혼여행에 어울린다면 여기는 MT에 어울리는 분위기랄까...
근방에서 스파게티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니 해 질 시간이 다 되어갔다 (헐)
드디어 저 유명한 이아 마을의 석양을 볼 시간이었다!
차 렌트는 다음 날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얌전히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이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몸만 타면 승무원이 와서 돈을 걷어간다. 우리처럼 표 끊는 곳 찾다가 괜히 하나 놓치지 말길...;
지도로 살펴보면 산토리니는 오른쪽으로 굽은 초승달처럼 생겼는데,
피라가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면 이아는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 차로 십분쯤 걸리던가...
이아 마을 골목은 제법 복잡한 편이다. 조금 헤매다 보니 이미 석양이 내릴 만큼 내리고 있었음.
먼발치에 보이는 저것이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피라 마을.
처음 봤는데도 눈에 익숙한 풍경이 마구 보여서 신기했음. 이런 종 하며...
이것이 이아의 석양.
골목을 굽이굽이 접어들다가 갑자기 마주친 광경이었다
정말 억. 소리가 절로 난다.
정말 처음 보지만... 어쩐지 눈에 익은 풍경.
해 질 때가 되면 온 산토리니의 인간이란 인간은 다 이 곳으로 몰리다보니
사람이 많긴 정말 많다. 식당이며 카페며 길거리며 벅저글벅저글...
조금 아쉬운 것은 이 곳의 또다른 상징인 "파란 페인트 지붕" 이 보이질 않았다는 거.
성수기에만 덧칠해서 선보인다는 게 진짜였다!
참 몇 평 안되는 절벽에 악착같이 만들어 놨다...
저 건물들은 거의 다 카페, 레스토랑, 호텔... 이다. 집값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이쪽에는 드문드문 파란 지붕.
동행 솜양.
우리는 죄다 사진찍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흐흐)
서서히 지는 해... 일종의 쇼를 관람하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해가 물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면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ㅎㅎ 기묘한 기분이다.
아, 여기도 개는 있다. 여기서도 잔다...
인증ㅅㅅ.
인증ㅅㅅ 2.
해 지면 볼 게 없을 것 같지만... 골목이 나름 이쁜 편이다.
역시나 급히 친해지는 데에는 술자리만한 게 없다 (...) 아 이렇게 뻔한 어른은 되기 싫었는데
맥주와 고기를 사서 숙소로 룰루랄라 돌아가는 길은 참 즐거웠는데, 우리는 한참만에 깨달았으니
숙소가 어디였더라? (...x7)
안면도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산토리니는 기본적으로 깡촌이다. 골목도 비좁고 이정표 될만한 것두 없다.
숙소에서 나올 때에는 들떠서 마구 뛰어나왔건만, 돌아가려고 보니
해는 져서 어둡지, 사람은 없지, 골목은 다 거기가 거기같지...;
게다가 숙소 전화번호도 모르고 꼴랑 이름만 아는 상황인데 별로 유명한 호텔 같지도 않았음 (...)
어둠이 짙게 깔린 길. 인적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언덕길을 네 번쯤 오르락내리락.
혹시 귀신에 홀린 건 아닐까. 어쩐지 하룻밤에 20유로라니 너무 쌌다.
그 호텔과 우리를 픽업한 아저씨 모두 다 실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우리는 사실 그냥 바위절벽에 짐을 부리고 나온 건지도 모른다... 등등의 이야기까지 나올 무렵
드디어 우리의 동행 용군이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으니
제 핸드폰 어디갔죠? (...)
그의 핸드폰은 아이폰4...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군가 훔쳐가기 딱 좋은 바로 그 스마트폰.
잠정적 결론은 아마 이아마을에서 돌아오는 버스에다 흘린 것 같다는 것이었으니...
숙소고 술이고 뭐고 준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용군에게 일단 내 핸드폰을 쥐어주며
숙소는 우리가 찾을 테니깐 일단 터미널로 뛰어가 보라 했다.
...귀신들린 섬 산토리니. 과연 그들의 운명은? 커밍 쑨!
(오늘 여행기는 데스윙 잡은 기념으로 썼으니... 다음은 언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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