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피터 파커(Peter Parker)
혹은 마일즈 모랄레스(Miles Morales)
직업 : 사진기자, 과학자, 그리고 뭐... 프리터족?(...)
활동지역 : 뉴욕. 때에 따라 우주로 가기도...
능력 : 초인적인 힘과 반사신경, 운동능력, 벽에 달라붙는 능력, (버전에 따라) 거미줄 발사,
스파이더 센스(Spider Sense, 닥쳐올 위협을 미리 알 수 있음), 과학자로서의 지식.
숙적 : 그린 고블린(...그 밖에도 여러 고블린), 베놈, 카니지, 닥터 옥토퍼스, 벌쳐, 샌드맨, 크레이븐 더 헌터 등등.
특이사항 : 가족으로 아내 메리 제인과 고모 메이가 있음.
첫 등장 : 1962년, 어메이징 판타지(Amazing Fantasy #15)
- 슈퍼맨과 배트맨이 견인하던 1940년대 미국의 슈퍼히어로 붐은 2차 세계대전과 매카시즘이 횡행하는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식어버렸다. 현실의 엄혹함이 픽션을 압도해버렸던 것이다. DC의 두 고전 영웅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활용되거나 단순하고 유치한 아동용 만화로 재활용되면서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렇게 가장 초인다운 초인인 슈퍼맨을 버린 미국인들이 대신 선택한 것이 불쌍하고 하찮은 (...) 스파이더맨이었다. 마블은 스파이더맨의 인기에 힘입어 판타스틱 포, 엑스맨 등등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는 굵직한 히트작들을 내놓으며 일약 미국 코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으로 떠올랐고, 마블의 성공에 자극받은 DC역시 천재라 불리는 작가들을 기용해 낡은 자사 히어로들을 갈고 닦으며 오늘날 까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은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변화된 세계관을 반영하여 등장한 '현대적' 슈퍼히어로물의 중흥을 이끈 선봉장격인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21세기 들어 스크린으로 확장된 슈퍼히어로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마블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든 것은 아무래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둔 덕이 크다 할 수 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시장개척에는 확실한 파워를 가진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 그렇다면 이 캐릭터는 대체 왜 그리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가? 무엇보다, 피터 파커가 무진장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피터는 나름 공부를 잘하긴 하지만 천재는 아니고, 가난한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첫 등장 당시 무려 15살이었다. 방사능 거미한테 물려서 기껏 얻게 된 힘이란 것도 사실 강도 몇 명 때려잡는 데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진짜 악독한 놈을 상대할 때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들 뿐이다. 거기에 부모도 없고, 유일한 보호자인 고모는 생활보호대상자다. 직업도 못 구해서 신문사에 스파이더맨 사진을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그 신문사 사장은 성격이 무진 괴팍한데다가 스파이더맨을 싫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다. 진짜 정말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가족들이.
-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보통 가족때문에 영웅이 되지 못한다. 이건 평범과 비범, 초능력의 소유 여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이전의 영웅들에겐 가족이 없었다. 슈퍼맨은 외계인이고, 배트맨은 혼자 살며, 원더우먼은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다. 사실 스파이더맨 이후의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세자리수를 헤아리는 DC와 마블코믹스의 히어로 중에서 스파이더맨처럼 가족을 수호하는 히어로 - '가장家長' 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보통사람의 이미지에 근접한 영웅으로 세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지켜줘야 할 가족을 가진, 지극히 보통사람인 스파이디는 어떻게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이 되었는가? 여기에 이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숨어있다. 물론 피터 파커는 기본적으로 착하다. 하지만 그건 슈퍼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가진 영웅의 굳은 기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그의 선의지는 그냥 소시민의 선의지가 강하게 발현된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그의 선의지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스파이더맨이 영웅으로 태어나는 과정에는 두 가지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첫째는 삼촌 벤의 죽음, 둘째는 여자친구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 피터 파커의 삼촌 벤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 는 말이 그것이다. 벤은 스파이더맨이 사적인 변덕 때문에 잠시 모른 척한 강도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스파이더맨을 영웅으로 각성시키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가진 힘에 걸맞은 '책임' 을 다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가족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비극을 직접 목격했고, 그런 일을 막고자 영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악을 모른채 하다간 결국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당신에겐 불의를 막을 힘이 있으며 그걸 행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 : 이 논리구조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최근 유행한 <전쟁책임 고백서>라는 글을 읽어보자 :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중략)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http://j.mp/HcWw2L 맙소사. 스파이디를 선관위로.
- 이렇게, 스파이더맨은 지극히 소시민적인 이유로 영웅이 되었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영웅이나 정의의 수호자라고 칭하지도 않는다. 스파이디가 스스로를 부르는 말은 그저 "Your Freindly Neighborhood." 하나 뿐이다. 그에게 시민들을 수호하는 작업은 스스로가 가진 조그마한 힘으로 가족과 이웃을 수호하는 '책임' 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파이디는 어떤 상황에서도 엄숙하게 굴지 않는다. 아마도 모든 슈퍼히어로를 통틀어 가장 경박하고 말이 많은 것이 스파이더맨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의 영웅행위는 이대로 정의를 수호하고 가족의 안녕을 지켜내는 거룩한 일로 기억될 것인가? 여기에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이 삽입된다. 그의 첫번째 여자친구였던 그웬 스테이시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다리에서 추락하는 걸 거미줄을 쏴서 받아냈다가 반동에 그만 목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당시 코믹스에서 여주인공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두고두고 이슈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스파이더맨의 심리를 분석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되고 있다.
그웬의 죽음 - 문제는 그의 무능이다. 스파이더맨은 15세에 데뷔한 이래 줄곧 '가장' 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피터 파커로서의 그는 가족을 지키는 소시민이고,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그는 우연히 얻은 작은 힘을 발휘해 이웃을 지켜내는 소박한 영웅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정말로 소화해 내기엔 그가 가진 힘이 너무나도 작고 무력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웬 스테이시는 스파이디가 죽였는가? 아니다. 그 책임은 분명 그녀를 물속으로 내던진 그린 고블린에게 있다. 하지만 피터는 분명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결국' 그웬 스테이시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에게 정말 큰 문제는 자신의 힘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쓴다면 어떤 것이 정의인가, 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 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을 소화해내는 것을 힘겨워하고 있다. 짧게 말해, 그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기엔 너무나도 어리다. 피터 파커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아버지다. 책임감있고 유능하고 누군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인물. 심리적으로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여전히 아버지 대신 그를 키워준 벤 파커이듯이. 고로 그의 영웅활동은 일정부분 평범한 소년의 성장기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 스파이더맨이 가진 성장물로서의 가능성은 이후 다른 히어로물과의 융합을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 어벤져스의 수장인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나, 그야말로 굳은 의지의 화신인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 로저스), 혹은 판타스틱 4의 수장 미스터 판타스틱 (리드 리처드) 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이들을 따르다가 실망하거나 배신당한 끝에 불행한 일을 겪는... 에피소드가 폭넓은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사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에서 이 역할은 그의 대표 악당인 그린 고블린 - 노먼 오스본이 수행했다. 그는 대체 아버지 - 그린 고블린 - 을 죽이고 대체 어머니 - 메이 고모 - 를 구해낸다. 오이디푸스 좋아하는 사람들 출동하시라.) 하지만 여전한 소시민이자 소년으로서 스파이디는 여전히 성장중인 캐릭터이고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는 공동체를 수호하는 소박한 소시민 좌파 (...까지는 아닌가) 영웅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생계를 거대 언론사 (데일리 뷰글) 과의 비정규직 계약에 의지하고 있다던지, 이 언론사 사주가 지독하게도 스파이더맨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은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스파이디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도 엇갈린다. 언론은 그를 악당으로 매도하는 기사를 쏟아내지만 스파이더맨의 본질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이게 굉장히 오래된 설정인데도 오늘날까지 트렌디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지 참 놀랍기만 하다. - 스파이더맨은 여러모로 오늘날 히어로물의 원형을 많이 제공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여자친구를 납치하는 악당이나, 그녀를 구할 것인가 시민을 구할것인가?... 같은 고전적인 난제가 그렇고, 마스크 속에 늘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그렇다. 정말로 정체가 밝혀져선 안되는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탄로났을 때에는 피터의 가족들에게 항상 나쁜 일이 발생했다. 이 부분은 명백히 영웅으로 활동해야 하는 스파이더맨의 '약한고리' 라 할만하고, 그러니 작가들도 항상 이 부분을 노려왔다. 실제 슈퍼히어로물에서 가장 폭넓게 알려진 서사가 아마도 "악당이 우연히 슈퍼히어로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의 여자친구를 납치해 영웅을 협박한다!" 일텐데, 엄밀히 말해 이 구조에 집요하고 악독하게 시달려 온 건 오로지 스파이더맨 뿐이라고 생각한다. - 그나저나 언젠가 피터 파커가 자식을 낳게 된다면 정말 이 캐릭터에겐 재앙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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