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끌밋(http://glmeet.com)에서 개인 연재물 형식으로 쓰고 있는 본격 세계관 덕후 (...) 인증 침소봉대 과잉해석 글타래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써서 수요일에 업데이트 중인데, 한동안 여기가 너무 심심하고 해서... 어차피 올리는 거 앞으로는 여기에도 올리려 합니다. 하지만 끌밋 쪽에 올린 포스트가 중간중간 그림도 있고 글도 한번씩 다듬는 거라 아무래도 읽기 편할 거에용. 여하튼 즐감.
세계가 온통 미지와 미답(未踏)의 빈 칸들로 가득했던 시절, 인간들은 상상을 통해 지어낸 이야기로 그 빈칸을 메웠다. 그들에게 상상과 현실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들은 호수에는 용이 살고, 산 위에는 신이 살고, 바다 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통 ‘전설’ 로 인식하는 바로 그 상상의 세계가 그들에게는 강고한 ‘현실’ 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신화, 전설, 민담으로 분류되는 인류의 최초형태 문학들은 사실 개인의 상상을 표현하려는 욕망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는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 인간 중심의 도덕체계와 이데올로기로 세계의 빈칸을 채워 넣었다. 가뭄, 홍수 등 불규칙한 자연재해를 불러오는 것이 인간들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믿었으며, 심지어 모종의 의식을 통해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기원, 인간의 기원, 해와 달의 기원, 사계절의 기원, 언어의 기원 등 세상 기원을 설명하는 거의 모든 신화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이 배워야 할 도덕적 교훈과 세계의 질서가 꼼꼼하게 담겨 있었으며, 마을 뒷산의 오래된 바위나 폭포수, 심지어 자주 마주치는 힘세고 날랜 야생동물과 같이 일상의 친숙한 사물에 얽힌 전설에도 항상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모종의 ‘메시지’ 가 담겨있기 마련이었다. 이 메시지들은 알 수 없는 진실을 규명하며, 인간을 가르치는 한편, 아름다움(혹은 재미)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이른바 진(眞), 선(善), 미(美)가 한 몸이었던 시대. 과학(철학)과 종교(도덕)와 예술의 뿌리는 이렇게 상상으로 세상을 빚는 행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과학과 종교가 제 갈 길을 가면서 상상만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행위는 오롯이 예술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실증적이어야 한다는 책임,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책임에서 해방된 상상력의 주체도 집단적인 것에서 보다 개인적인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예술가들은 거의 아무런 제약도 없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나 생각, 사상적 의제(議題), 혹은 혁신적인 사고실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극한의 재미와 상업적 이익을 위한 요소 따위도 담아낼 수 있다.
이제부터 살펴볼 것들은 그런 식으로 탄생하게 된 ‘이야기 속 세계’ 들의 풍경이다. 어떤 것들은 현실과 백만광년쯤 떨어진 신화와 상상의 세계이지만, 또 어떤 것들은 각종 도시전설과 음모론의 흔적들을 체계화시켜 한껏 비틀어 본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때로 사뭇 진지하고 때로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막나가는 이 상상의 세계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사는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게끔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이 모든 상상들이 우리의 현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며, 여전히 미지와 미답의 영역으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 역시 누군가의 상상에서 태어났기 때문, 아니 여전히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 무한히 쇠락하는 세상 – 중간계(Middle Earth)
기원 : 신화를 만들다
Middle Earth- 중간계, 혹은 ‘가운데 땅’ 이라 번역되는 이 세계는 영국의 언어학자 J.R.R 톨킨의 작품 세 편을 통해 탄생했다. 3부작 영화로 제작되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반지의 제왕>과, 역시 영화로 제작되어 올해 말 개봉할 예정인 <호빗>, 그리고 톨킨의 사후 출간된 중간계의 신화모음집인 <실마릴리온>이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도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반지의 제왕>인데, 이 소설은 1954- 1955년 사이 3부작으로 출간된 이후 세계적인 고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오늘날 판타지 장르의 명실상부한 시원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오늘날 ‘중세 유럽, 검과 마법’ 의 판타지를 표방한 그 어떤 컨텐츠도 이 작품 앞에서 쉽사리 자신의 오리지날리티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계와 <반지의 제왕>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J.R.R 톨킨은 사실 작가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평생토록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고, 전문분야는 언어와 신화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 활동 역시 이 전문분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기에 앞서 이 세계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렸고, 이 세계만의 고유한 신화와 수천 년에 이르는 역사를 창작했으며,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꿰냐’ 와 ‘신다린’ 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신화적 흐름과 역사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이야기로 <반지의 제왕>을 집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반지의 제왕>이 중간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중간계가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소설 <반지의 제왕>은 이 이야기만으로는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온갖 의문들로 가득 차 있다. 혹시 이 작품을 영화로만 접한 분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모리아 광산에서 간달프를 잡아챘던 괴물 발록(Balog)은 뭐길래 거기 있는 거지? 드워프 김리랑 엘프 레골라스는 왜 티격태격하는 거야? 시종일관 프로도를 쫓아다니던 난쟁이 골룸은 대체 정체가 뭐지? 사우론이란 저 눈깔은 정체가 뭐길래 사람들이 저리도 무서워하는 걸까? 곤도르에 왕이 귀환했다는데, 그건 뭔 소리야? 그 골짜기에서 쏟아져 나오던 유령군대는 정체가 뭔데? 아니 그보다 애초에, 대체 반지가 뭐길래 저거 때문에 그 난리가 난 거야?
톨킨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되는 이야기, 말하자면 나름의 신화와 전설들을 이미 갖고 있었다. 중간계의 신화모음집 <실마릴리온>이 바로 그 해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신화학자다운 치밀함과 언어학자다운 문장력으로 빈틈을 꽉곽 채워 만들어진 이 저작은 도저히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의 양과 질을 자랑한다. 결국 톨킨은 신화를 창조하고, 이를 장식하는 서사시를 창작하는 작업 – 북유럽 신화와 ‘베오울프의 노래’ 가 그렇듯이 - 을 민족과 역사적 수준이 아닌 개인의 머릿속에서 성취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 작업의 시작이 단지 학문적인 욕심이었는지, 혹은 예술적인 집념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는 두 가지 모두를 이루게 되었다.
중간계를 읽는 키워드 – 유혹과 상실
한 민족의 신화를 통해 그 민족만의 우주관과 가치관을 살필 수 있듯이, 우리는 중간계를 통해 톨킨 자신의 우주관과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서구 신화와 각종 전승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학문세계와 기독교 문화 특유의 심판적 세계관이 만난 결과, 중간계는 북유럽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기독교 문화의 특징을 한 데 융합한 듯한 모습을 띄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징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받은 ‘유혹’ 과 ‘타락’, ‘선-악의 대결’ 이란 구도, 그리고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은 ‘상실’ 과 ‘쇠락’ 의 정서이다.
<실마릴리온>에 따르면, 중간계는 유일자인 ‘일루바타르’ 혹은 ‘에아’ 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역시 그의 의지에 따라 창조된 ‘발라’ 라 하는 열다섯의 초월적 존재들이 태초부터 다스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중간계의 백성은 ‘먼저 온 자들’ 인 요정(Elf)들인데, <실마릴리온>을 비롯한 중간계의 신화들은 발라들의 통치와 전쟁, 사랑과 질투를 비롯한 온갖 사건들을 처음부터 지켜본 이들 요정의 기록으로 설정된다.
빛과 선(善), 영광, 섭리로 표현되는 발라들과 대립하는 자는 태초에 유일자 일루바타르에게 반기를 들었던 한 명의 발라로, ‘멜코르’ 혹은 ‘모르고스’ 라고 불린다. 모르고스와 그의 세력은 중간계에 악과 혼돈을 불러오고 세계를 타락시키는 유혹의 손길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이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요약하듯 톨킨이 창조한 중간계의 신화 역시도 모르고스가 상징하는 악과 발라가 상징하는 선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결국 유일자에 의한 최후의 심판과 대대적인 정의의 부활로 막을 내리는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달리, 중간계의 신화는 시종일관 상실과 패배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막막한 종말로 접어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실마릴리온>이 기록하고 있는 방대한 역사 전부가 모르고스의 유혹에 굴복한 멸망과 패배의 기록에 불과하다. 물론 누군가의 몰락에 따른 희생이 있을 때마다 악도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며, ‘결국에는’ 하나로 뭉친 선의 의지에 의해 소멸하는 것이 모르고스의 운명으로 기록되긴 하나, 한 번 잃어버린 ‘위대한 존재’ 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그렇게 자꾸만 신과 빛에게서 멀어지면서도 미래의 더 큰 유혹과 악의 준동에 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선과 악의 치열한 대결 후에 남겨진 자들의 운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겨진 자’ 들이란 누구인가? 요정들의 뒤를 이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 이 그들이다. 중간계의 인간은 요정들에 비해 거의 모든 면에서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수명도 짧고, 어리석으며, 유혹에 쉽게 굴하고, 언제나 가르침과 인도가 필요한 이들이 인간이다. 심지어 발라들의 은총을 받아 강대하고 현명한 왕국을 세우고 번성했던 인간들의 왕국 ‘누메노르’ 는 모르고스의 후계자인 ‘사우론’ 의 유혹에 넘어가 발라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그 결과 통째로 바다 속에 가라앉아 멸망해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왕국 – 곤도르와 로한은 이렇게 멸망한 누메노르의 잔존세력이 만든 국가이다. 그나마도 누메노르의 적통(嫡統)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섭정에 의한 통치가 계속되고 있다. 대체 중간계의 인간들은 이 세계의 구원인 ‘절대자’ 일루바타르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일루바타르-발라-요정-누메노르인-그리고 인간. 태초에 위세 당당했던 빛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쇠락하여 이제 폐허 속의 희미한 흔적, 먼 옛날의 영광으로만 남아 있다. 계속되는 상실. 이것이 톨킨의 중간계를 지배하는 지배적인 정서이다.
재밌는 것은 톨킨이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서문에 밝혀 둔 ‘이 작품들의 출처’ 이다. 톨킨은 <호빗>의 주인공이자 <반지의 제왕>의 조역인 작중인물 빌보 배긴스가 자신과 프로도의 모험담을 합쳐 <레드북>이란 자서전을 지었고, 자신은 그 책을 ‘번역했을 뿐’ 이라고 밝힌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죄다 아주 먼 옛날에 있었던 일, ‘진짜’ 라는 거다. 게다가 실제 <반지의 제왕>은 중간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초자연적 존재들이 신성한 발라들의 땅, 서녘(West Land)으로 떠나가고, 오로지 인간만이 이 세계에 남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심지어 <실마릴리온>에는 중간계가 ‘둥글다’ 라는 언급도 있다. 인류의 초고대사에 시침 뚝 떼고 톨킨의 중간계를 가져다 붙이더라도 별 문제는 없는, 뭐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결국 톨킨이 만든 ‘유혹과 상실의 신화’ 역시도 그가 인류사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 톨킨은 기계문명을 혐오하고 거의 모든 기술발전에 반대하는 러다이트(Luddite)로 평생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전원과 전통적 생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작중의 소인족 호빗들의 전원생활을 유독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톨킨의 젊은 시절을 휩쓸었던 광적인 세계대전의 여파 역시도 그의 세계관을 어둡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톨킨은 이 세계가 절대적 악의 유혹 때문에 점점 쇠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혹과 상실이 반복된 중간계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반지의 제왕> 그리고 사소한 선의지의 가능성
톨킨이 기록한 ‘중간계 역사’ 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3부작 소설 <반지의 제왕>이다. 톨킨은 이 작품을 통해 이미 저울추가 기울 대로 기울어 버린 선과 악의 마지막 대결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악의 제왕으로 그려지는 사우론은 ‘태초의 악’ 이라 할 수 있는 모르고스의 뒤를 이은 존재로, 그는 이미 강대한 인간들의 왕국인 누메노르를 무너트리고 모르고스의 세력을 규합해 누메노르 잔존세력 및 요정들과 전쟁을 벌인 바가 있었다. 이 전쟁 중에 그에게 대항하는 모든 종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다름 아닌 ‘절대반지(The One Ring)’ 이다. 사우론의 의도는 절반쯤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빗나갔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전쟁에 진 그는 반지를 빼앗기고 다시 한 번 어둠속으로 돌아가 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리고 빛의 세력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너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수없이 많은 도시와 왕국이 자연스럽게 몰락하고, 요정들의 세력도 걷잡을 수 없이 약화된다. 게다가 사우론의 손가락을 잘라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누메노르인의 왕 이실두르는 반지의 유혹에 이끌려 먼 곳으로 도망치다가 그만 살해당하고 반지는 강물 속으로 사라져 그 행방이 묘연해지고 만다. 절대반지가 남아있는 한 사우론은 얼마든지 예전의 힘을 찾아 부활할 수 있는데, 그를 몰락시켰던 빛의 세력은 이제 옛날의 위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와중에 ‘아무도 주목한 적 없는’ 호빗이란 종족이 우연히 반지를 찾아내면서 <반지의 제왕>은 그 서막을 올린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절대반지’ 는 이제껏 톨킨의 신화를 이끌어 온 ‘유혹’ 이란 키워드를 완전히 함축하고 있는 상징물이자, 어쩌면 유혹이란 단어 그 자체와도 같다. 절대반지 안에는 사우론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는 반지의 주인에게 끝없이 속삭인다. ‘나를 가지라’ 고. 반지의 주인이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사우론은 힘을 찾을 것이고, 세계는 끝장난다. 반지의 주인이 된 순박한 호빗 프로도 배긴스는 이제, 이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악의 심장부까지 홀로 걸어가 자신의 의지로 절대반지를 파괴해야만 한다.
결국 <반지의 제왕>은 영웅도, 신도, 영웅의 후손도 아닌, 중간계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종족에게 이 세계를 파멸시키고 있는 에너지 그 자체를 던져주고 그를 가혹한 시험에 들게 함으로써, 과연 중간계에 남게 될 자들에게 악의 유혹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갈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과정이었다. 심지어 이 시험을 이겨내는 것만이 세상을 악의 손아귀에서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애초에 정면대결은 불가능했다. 다시 뭉친 곤도르와 로한도, ‘귀환한 왕’ 아라곤의 용맹도,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의 지혜도, 레골라스나 김리의 활약도, 프로도가 반지의 유혹에 굴하는 순간 죄다 헛짓거리가 되어버릴 뿐이다.
그 결과는?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반지는 파괴되었고, 사우론의 세력은 영원히 궤멸되었다. 한 때 세상을 지켜낸 뒤 사분오열됐던 빛의 세력도 세상의 위기 앞에 다시금 하나로 뭉쳤다. 세상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결말이 있을까? <반지의 제왕>을 마무리 짓는 사우론의 패망은 일루바타르의 천지창조 이래로 중간계에 늘 준동해 온 ‘악의 세력’ 이 마침내 최후를 맞는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역사의 한 장이 막을 내린 셈이다. 대단원과 함께 중간계의 마지막 요정들과 이른바 ‘반지전쟁’ 을 주도했던 모든 영웅들도 자취를 감추고, 중간계에는 이전의 역사에서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역사가 개막된다. 우리들의 주인공인 빌보, 프로도, 간달프와 엘론드도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신성한 땅, 서녘으로 떠나간다.
근데 뭔가 찜찜하다. 악에 맞서 세상을 지켜온 모든 수호자들이 세상을 등져버리는 <반지의 제왕>의 결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과연 사우론의 악은 완전한 최후를 맞은 것인가? ‘남겨진 자’ 들은 다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악에 맞서 세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프로도에게 주어졌던 ‘최후의 시험’ 이 결국 실패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지가 파괴되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최후의 순간에, 홀로 ‘운명의 산’ 의 불길 앞에 선 프로도는 자기 손으로 반지를 집어던지지 못한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유혹에 굴하여 반지를 손에 끼우고 모습을 감춘다. 세계를 지키기 위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그를 지켜보고 있던 골룸이 달려든다. 반지를 두고 육탄전을 벌인 끝에 프로도의 손가락을 깨물어 손가락 째로 반지를 빼앗은 골룸은, 기쁨에 취하여 춤을 추다가 그만 반지와 함께 불길 속으로 떨어진다. 저 유명한 한마디 “내 보물(My precious)!” 을 외치며. 결국 절대반지는 나약한 자의 사소한 선의지가 아니라, 반지의 유혹에 이성을 잃은 ‘노예’ 들의 육탄전 끝에 ‘우연히’ 파괴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톨킨은 ‘남겨진 자’ 들의 의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의 운명은 우연의 손에 맡겨졌다. 톨킨은 그 기막힌 우연이라도 만들어냈던 모든 수호자들마저 세상에서 떠나간 후에, 마침내 남겨진 자들이 우리들,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악은 사우론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는가? 그 점은 아마도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무한한 쇠락의 신화
세상은 점점 나아지는가? 인류사 전체를 통째로 되돌아 볼 때, 끊이지 않는 진보에 대한 굳은 믿음이 인간 정신을 지배했던 시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특히 서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은 수백 년의 ‘암흑기’ 를 거쳐야 했다. 재생의 시대[Renaissance]를 맞이하여 계몽주의의 뿌리를 만든 유럽의 지식인들은 화려했던 과거의 로마, 그리스, 이집트의 지식에 매료되었다. 인간은 화려했던 영광의 끝자락, 쇠락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가운데땅 - 중간계는 이런 역사관을 본격적으로 투영하여 만들어 낸 세상이다. 학자다운 디테일로 촘촘히 엮인 이 땅의 역사는 치밀한 문학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며, 한편으로는 인간 역사에 오래도록 존재했던 ‘쇠락의 신화’ 를 구체화하기 위한 학술적 관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땅에서 환상적 모험담만을 읽어내든, 인간 의지의 가능성과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읽어내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에 시선을 두던 간에 이 모든 것들이 오직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에는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두에 밝혔지만 올 12월에는 <반지의 제왕>의 서막 격인 빌보의 모험담 <호빗>이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피터 잭슨 감독, 일라이저 우드, 올랜도 블롬 등 <반지의 제왕>을 이끌었던 드림팀이 고스란히 다시 모여서 만들어 낸 작품이다. 영화의 재미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게 될 일이지만, 미리 기대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을 것 같다.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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