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함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좋지 않다.
- 존엄한 것들의 아웃소싱 문제에 부쳐 : 얼마 전 TV에서 본 센델 교수의 강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얻게 된 아이디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인간 삶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단연 분업과 그에 따른 전문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산성 고취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굉장히 고전적 의미의 분업과 시장경제의 정의, 즉 물고기만 잡는 아랫마을 돌이와 과일만 따는 윗마을 순이가 서로의 재화를 교환함으로서 얻게 되는 사회적 이점을 돌이켜 보자면 그렇다는 뜻인데... '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교환의 매개체라는 점을 되짚어본다면, 결국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은 '교환 가능한 것' 을 의미하게 될 터이고, 나아가 교환은 분업의 당연한 결과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란 '분업화해선 안되는 것들' 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존엄한 것들의 아웃소싱 문제란 워딩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 분업은 마술을 부린다. 적어도 생산성 향상이란 부분에서 분업의 마술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생산성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선 접어두고... 고로 일차적으로 '분업화해선 안되는 것들' 은 우리가 분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 즉 생산성 향상이란 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없는 분야에 있을 것이다. 나는 '전문성' 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늘 하나 만드는 공정도 미세하게 나누면 '생활의 달인' 이 탄생하는 것이 공장의 마술이지만, 세상에는 분업을 통해서도 전문성을 획득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예컨대 '실험대상' 같은 건 어떨까. 거액의 돈을 받고 직업적으로 신약 임상실험만 참가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과연 어떤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그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기술' 에 지불하는 돈이 아니라 그의 '생명' 에 지불하는 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윤리문제를 지워놓고 시장경제의 논리만으로 살펴보더라도, 생명에 지불하는 돈은 전문성을 고취시키지 못하므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고로, 이 경우는 허용돼서는 안된다.
- 나는 올바른 과학이란 큰 원칙을 통해 개별 사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다른 사례도 생각해 보자. 예컨대 투표권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참정권이 전문화될수 있는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직업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느냐, 라는 것인데,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프로 정치인들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국회에 모인 이들은 수시로 국민들을 대행해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금에서 꽤 많은 월급을 받아간다. 그러니까 투표권은 이미 아웃소싱되어 있다는 것인데... 사실 이 경우의 아웃소싱은 전문성의 문제보다는 효율성의 문제에서 생산성을 고취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참정권은 어떤 방법으로도 '대행'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누군가가 전문성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은 현실의 척도이며, 수치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표자' 를 뽑는 행위가 어느 단계에서 직접투표로 전환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합의에 따를 일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경계를 긋자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고로, 투표권은 전문화될 수 없으며 사고 팔아선 안된다.
- 또 다른 문제. 돈을 내고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질문하자면 : 군대는 전문화 될수 있는가? 답은, 물론이다. 사실 군대만큼 전문화가 절실한 곳도 드물다. 나는 모병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인지라 이 문제에는 상당히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게 왜 민감한 질문인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군대무용론이라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는데... 흠. 사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의 밑도끝도없이 뿌리깊은 피해의식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만, 사실 피해의식을 전이시켜서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한다니 이건 뭐 번식하는 좀비떼도 아니고; 미국은 실제로 '항상' 전쟁을 수행중인 국가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동감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라면 우리는 항상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사는 소방관, 경찰관도, 심지어 스턴트맨도 고용할 수가 없다... 국민개병제가 효율적이었던 시기는 예전에 지나갔고, 실제로 이런 식의 '국방의 의무' 가 전 국민에게 씌워진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신성한 의무는 개뿔, 군역은 거의 항상 늘 거래의 대상이었다. 솔직히 난 이 문제에 있어서 영조시대 균역법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 또 다른 문제. 기여입학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 좀 미묘한 문제일 수 있는데, 여하튼 나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아니라고 보고. 이건 대학을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일 수 있는데, 하나는 교육의 전당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의 전당이다. '전문적 피교육자' 는 있을 수 없지만 (나 이런거 하고 싶긴 한데...) '전문적 학자' 는 존재한다. 고로 전자는 허용되지 않고 후자는 허용된다. 끝... 이 아니라; 나는 대학이 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들만 가서 순수한 마음으로 지식을 주고 받는 곳이었으면 더더욱 좋겠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것이지만, 역시 오늘날 대학은 교육의 전당이자 사회적 계급의 재생산지이자 심지어, 영리기업이기까지 하니 기여입학제 따위를 할 순 없겠지...
- 이상은 한 '아이디어' 를 통해 센델교수가 제시했던 개별사례에 대답하고자 한 시도가 되겠다. 되도록 윤리적 문제를 제거한 시장논리만으로 설명해 보려는 아이디어였는데 나중에 얼마나 공감할런지는 모르겠다. 쩝... 굳이 윤리적 문제를 제거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 작은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념이란 제아무리 잔인하고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나름의 내재적 윤리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그걸 무시하고 '윤리기준의 아웃소싱' 을 할 때가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 글쎄 이것도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 '아이디어' 란 단어에 대해서도 나름의 변명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요새 내 생각들이 두피를 둥둥 떠다니는 구름같아서, 어쨌거나 이래저래 풀어보기는 하는데, 어째 '나으 생각' 이란 느낌이 들지 않고 이질감이 심해서 붙여 본 이름이다. 솔직히 요사이 내 것이라고 느껴지는 생각이라곤 우울, 좌절, 무기력, 비관 따위인데... 이런걸 자세히 들여보기 싫어서 자꾸 뜬구름만 보는 모양.
-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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